비겁한 여당, 대통령 정치적 경호대 자처
  • 유창선 | 시사평론가 ()
  • 승인 2015.01.0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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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소통’ 부족은 집권당 무능 탓…새해엔 정치 복원해야

집권 3년 차를 맞는 박근혜정부의 앞길이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에 불거진 비선 실세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적인 단계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으로 촉발되었던 비선 실세 의혹은 야당이나 반대자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박 대통령 주변에 있거나 아래에서 일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진 폭로와 충돌의 과정이었다. 문건의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그 같은 사태의 예방은 물론이고 관리와 수습조차 하지 못했던 청와대의 총체적 무능은 엄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 아래서 비서관을 지냈거나 장관을 지냈던 사람들이 연이어 대통령에게 타격을 가하는 폭로를 했던 것은 이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장면이다. 그런 것을 가리켜 우리는 레임덕이라 부른다.

국민과 대통령 사이 가교 역할이 여당 책무

급기야 박 대통령 지지율도 30%대로 하락했고, 특히 보수층이나 장년층의 이탈이 눈에 띄면서 ‘콘크리트 지지층’이 옛말이 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10년, 아니 5년 가는 권력이 없다는 말에 박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겸허히 위기의 현실을 인정하고 민심 앞에 몸을 낮춰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대다수 사안에 대해 그랬듯이, 박 대통령은 이번 파문에 대해서도 성찰적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어디 ‘찌라시’만 문제이고, 박관천·조응천이라는 사람에게만 책임을 지우면 되는 일이겠는가. 그러한 문제를 낳은 근원은 박 대통령의 폐쇄적이고 비밀주의적인 국정 운영에 있다고 세상 사람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다. 이쯤 되면 대통령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제 지칠 법도 하다. 박 대통령을 엄호해왔던 보수 성향 신문들이 근래 들어 ‘불통’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는 것도, 보수·진보를 불문한 우려의 공감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박근혜정부가 집권한 지 2년이 다 지나가고 있지만, 그동안 이룬 국정의 성과가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면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다. 국민대통합이나 경제민주화야 이미 취임 전에 파기했다 치더라도 경제 살리기, 남북 관계, 국가 혁신과 적폐 척결,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대통령의 추상적인 약속들은 언제나 화려했지만, 달라진 것을 볼 수 없는 국민들에게는 공허한 얘기일 뿐이다. 더 이상 가다가는 대통령이 ‘양치기 소년’ 소리를 들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 마당에 민심을 껴안는 포용의 정치는 없고, 검찰과 경찰의 힘에 의존해 나라를 다스리려는 모습이 등장한다. 당연히 반발이 터져 나오고 갈등은 격화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자신을 왜 비판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생각할 줄 모른다. 공감 능력과 성찰 능력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일관되게 드러내왔다. 그러기에 박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2015년의 한국이 달라지기 어렵다는 절박한 상황에 우리는 직면해 있다.

2014년 9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지도부를 만나 이완구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과 야당 싸움 구경만 해선 안 돼

대통령의 손에 2015년의 열쇠가 쥐어져 있다면, 그런데도 대통령 스스로가 그 열쇠로 문을 여는 법을 모른다면, 누군가는 문을 여는 방법을 말해줘야 한다. 남의 참견을 불편해하는 대통령에게서 싫은 소리를 듣는다 해도 말이다. 그것을 하라고 여당이 존재하는 것이다. 민심을 제대로 읽어가며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라는 것이 여당에 주어진 정치적 책무다. 그러나 지금의 새누리당이 과연 그 같은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지에 대해 묻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여당은 비겁했고 무능했다. 언제 한 번이라도 민심을 대변해서 대통령에게 ‘아닙니다!’라는 직언을 하며 정치를 정치답게 해본 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청와대의 의중에 안테나를 세우고, 청와대의 뜻대로 움직이는, 그래서 자신의 머리로 사유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새누리당의 모습이다.

지난해 7월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청와대와 여당의 수직적 관계가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 대표가 “국정 동반자로서 할 말은 하는 집권 여당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대표 경선에 나섰고, 당내 ‘친박’과는 달리 대통령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적인 위치에 있어왔던 것도 그러한 기대의 배경이었다. 하지만 막상 김 대표는 ‘종이 호랑이’였다. 정국의 고비 때마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감히 대통령의 뜻과 배치되는 언행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 최대 현안이었던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도 야당의 요구를 가급적 수용하자던 그의 목소리는 당내 친박 목소리에 파묻혔고, 협상의 주역은 이완구 원내대표를 비롯한 친박 실세들이었다.

비선 실세 논란이 정국을 강타하고 청와대 주변 인사들 사이에서 폭로와 충돌이 이어지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김 대표는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이미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기 목소리를 냈던 개헌 발언은 어처구니없게도 청와대 홍보수석의 경고를 받은 이후에 ‘나의 불찰’로 정리되고 말았다. 정국의 모든 현안이 청와대 가이드라인에 의해 관리되는 현실에서 여당 대표의 설 자리는 없었다.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집권 여당 대표였음에도 청와대는 고사하고 당내 친박들의 벽조차 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 내 친박들은 마땅치가 않다. 친박 측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김 대표가 걱정된다” “전횡을 일삼는다”는 성토를 하며 본격적인 견제에 나서고 있다. 아예 식물 대표로 만들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김 대표의 새누리당도 청와대와의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무성한데, 대표가 청와대를 따르지 않는다는 식의 이런 비판은 갈수록 태산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대가 목소리를 키울 때 정작 민심은 정권으로부터 떠나가게 되었음을 이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제 2015년의 정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새해의 정치에 새로운 기대를 걸 만한 현실이 아니다. 그 1차적 책임은 야당보다는 청와대와 여당에 묻는 것이 순서다. 새해 우리 정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은 무엇보다 대통령이 스스로 변화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에 근거한다. 그럴수록 여당의 책임은 커지는 법이고, 여당이 해야만 할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여당이 대통령을 설득하든 아니면 싸우든, 어떤 식으로든 정치를 복원시키는 길을 가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야당의 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다가 선거 때나 돼서야 국민 앞에 나타나는 여당이라면, 어떻게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염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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