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잃은 ‘비노’, 박지원을 바라보다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1.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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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마다 표 계산 분주…손학규·정세균계 향배 주목

새정치민주연합의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2·8 전당대회 예비경선(컷오프)이 마무리되면서 당권을 향한 계파들의 경쟁과 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새정치연합은 1월7일 당 대표 후보로 문재인·박지원·이인영 등 3명을 선출했다. 이에 따라 ‘친노(무현)계’ 좌장인 문 후보와 비주류와 호남을 대표하는 박 후보, 486그룹과 민평련(민주평화국민연대)계의 지원을 업은 이 후보가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당 대표 경선이 3파전으로 좁혀지면서 여러 계파 간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일단 전대 불출마를 선언한 ‘정세균계’와 컷오프에서 후보들이 모두 탈락한 ‘비노(무현)계’의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들 계파의 합종연횡에 따라 전대 판도 자체가 변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월7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에서 컷오프를 통과한 전병헌·박지원· 문재인·이인영·주승용(왼쪽부터) 후보가 인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민집모, 박지원 지원 쪽으로 가닥 잡을 듯

우선 정세균 전 대표는 전대 불출마 선언 이후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선 전대 불출마 선언 당시 ‘전대 혁명’을 강조했던 만큼 ‘전면적 리더십 교체’를 주장하고 있는 이 후보를 후방 지원하지 않겠느냐는 관측과 ‘범친노’로 분류되고 있는 만큼 결국 문 후보를 도울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정세균계가 단일대오를 형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정 전 대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정 전 대표와 가까운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성향과 가까운 쪽이나 이해관계가 맞물린 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전 대표 불출마로 공백이 생긴 대표 경선과 달리 전병헌·오영식 등 정세균계 의원들이 출마한 최고위원 경선에선 조직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 전 대표 측 인사들도 “전병헌·오영식 후보가 모두 당선될 수 있도록 정 전 대표가 노력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친노의 계파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박주선·조경태 등 2명의 후보가 나섰던 비노 진영은 컷오프 전원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향후 행보에 대해 고심하는 모습이다. 컷오프 결과와 관련해 비노 진영에선 “친노·486의 힘을 재확인한 것도 있지만, 모래알 같은 비노의 한계와 현실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일단 비노 진영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중도·온건파 모임인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은 대체로 현재 남은 후보 가운데 유일한 비노로 분류되는 박지원 후보를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민집모의 한 관계자는 “민집모 소속 의원들이 문 후보나 이 후보를 지원하긴 어렵지 않겠느냐. 대부분은 박 후보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노 진영이 박 후보를 전폭 지원할 것이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 전당대회 당시 ‘이-박(이해찬-박지원) 담합’에 대한 기억이 있는 만큼 박 후보에 대한 비노 진영의 신뢰가 아직까지 완전하게 회복됐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박 후보에 대한 신뢰를 이유로 적지 않은 이가 당 대표 경선에선 관망을 하다 전대 이후까지 사보타주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비노 진영의 주축인 김한길·안철수계는 전대와는 거리 두기를 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한길 전 공동대표는 8일 일부 기자들과 만나 “전대 원인 제공자인 내가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 극도로 절제하고 있다”며 언급 자체를 꺼리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가전전시회(CES) 참석을 이유로 컷오프에도 불참했다. 이에 대해 안 전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전대에서) 어떤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으냐. 안 전 대표가 누군가를 밀어서 이 판을 뒤집을 수 있다거나 그런 것을 하기 위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당내 김한길계 등 비노 진영을 중심으로 ‘빅3(문재인·박지원·정세균) 불출마’ 성명 발표를 주도했던 의원 30명도 1월8일 회동을 갖고 향후 진로와 관련한 논의를 했다. 이날 회동엔 10여 명의 의원이 참석했으며, 지역위원장을 중심으로 당원 줄 세우기나 동원을 금지하는 등 현 수준에서 할 수 있는 혁신안을 관철시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에 참석한 한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로선 우리가 내놓은 후보가 없는 만큼 누구를 지지하느냐보다 당 혁신안을 관철시키고 전대의 감시자 역할을 하자는 데 공감대를 모았다”고 전했다.

비노 “문재인 대표 땐, 최고위원 1위라도…”

손학규 전 대표의 정계 은퇴로 구심점을 잃은 당내 ‘손학규계’ 역시 ‘관망 모드’다. 집단적 움직임을 갖기보다는 개인 소신에 의해 움직일 것으로 예측된다. 손학규계의 한 핵심 인사는 “누가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입장이 안 되기 때문에 뭔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거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의원들의 개별적인 소신과 친소 관계에 따라 지지 후보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노 진영의 다크호스로 지목됐지만 끝내 불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전 의원과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당내에선 김 전 의원이나 박 전 원내대표가 어느 후보를 지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김 전 의원은 친노 진영, 박 전 원내대표는 박지원 후보와 일정하게 교감이 있는 만큼 개별적 지원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에 대해 김 전 의원 측은 “전대 불출마의 이유가 그러했듯 지금은 총선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고, 박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박지원 후보나 이인영 후보를 돕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프리보트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노 진영은 뚜렷한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는 대표 경선과 달리 최고위원 경선에선 비노 주자인 주승용·문병호 후보의 당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문재인 후보가 대표에 선출된다면, 이를 견제할 수 있도록 ‘1등 최고위원’을 배출해야 한다는 견제 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민집모 관계자는 “최고위원 경선에 나온 두 사람을 모두 당선시키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당 대표를 친노가 가져간다면 1등 최고위원을 비노가 해야 견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유일한 비수도권 후보이자 김한길 전 대표의 측근인 주승용 후보가 유력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친노 진영은 문 후보의 ‘무난한 컷오프 통과’ 여세를 몰아 대세론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인영 후보와 486그룹 및 민평련 등 일부 지지층이 겹치긴 하지만, “대세엔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번 전대 결과가 차기 총선과 직결된 만큼 당심도 결국 민심을 따라올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문 후보 측은 ‘최고위원 경선 불개입’ 방침을 세우고 있지만, 향후 지도부로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만큼 전혀 무관심할 순 없어 보인다. 친노 진영 안팎에선 친노 그룹과 가까운 정청래·이목희 후보가 거론되고 있다. 실제 두 사람은 각종 행사에서 문 후보와 가까이 서거나 동행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문 후보 측은 “계파 패권주의라는 오해를 받을까 봐 최고위원 경선에 친노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사람들 자체를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최고위원 경선과 관련한 물밑 교감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친노 진영의 또 다른 축인 안희정 충남도지사나 비노 진영으로 분류되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관망하는 쪽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김철근 동국대 교수는 “안 지사와 박 시장은 광역단체장이기 때문에 굳이 정치적 행위를 하거나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신의 체력과 실력을 쌓으면서 아웃복서처럼 전대를 관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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