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 확실히 얻었고, 나머지는 확실히 잃었다”
  • 서상현│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01.1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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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신년회견에 새누리당 ‘부글부글’…“이럴 거면 왜 했나” 성토

“세 비서관은 교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에 검찰은 물론이고 언론 또 야당 이런 데서 비리가 있나, 이권이 뭐가 있나 샅샅이 정말 오랜 기간 찾았지만 그런 게 하나도 없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세 비서관이 묵묵히 고생하면서 그저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또 그런 비리가 없을 거라고 믿었지만 이번에 대대적으로 다 뒤집고 그러는 바람에 ‘진짜 없구나’ 하는 것을 저도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 비서관을 의혹을 받았다는 이유로 내치거나 그만두게 한다면 누가 제 옆에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아무도 그런 상황이라면 저를 도와서 일을 할 수 없겠죠.

넣고 빼고 하지 않은 발언 그대로다. 기자는 1월12일 국회 기자실에서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타이핑했다. 지난해 말, 정국을 강타한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 사건에 등장한 청와대 비서관 3인(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박 대통령은 껴안았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3명을 확실히 얻었고, 나머지는 확실히 잃었다”고 촌평(寸評)했다. 짧았지만 울림은 컸다. 오전에 있었던 기자회견이 끝나고 오후에 국회 의원회관을 돌았다. 자연스레 기자회견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지도부가 1월12일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 회견이 좀 쪽팔린다”

“전반적으로 모든 분야를 아울러서 이야기하셨다. 경제 살리기가 핵심인데 당에서 잘 뒷받침해야 한다. 그런데 좀 세세하달까…. 부처 대변인 정도가 말하는 정책명이 등장하고, 수치가 하나하나 나오니까 가벼워졌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무게감이 떨어졌다. 연설할 때와 일문일답할 때 톤이 다르고 즉문즉답이 자연스럽지 못한 답답함이 있었다.”(당직 맡은 친박계 초선 ㄱ의원)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반대되는 방향으로 그것도 확신에 찬 이야기를 하니…. 좀 허무했다. 희망이나 비전을 주는 것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컸다. 동료 의원들도 회견 직후 ‘분위기가 왜 이렇게 돌아가느냐’는 이야기를 하더라. 이렇게 할 거면 왜 했느냐는 성토도 있다. 지금 총선이 1년 남은 상황인데…. 청와대가 당을 좀 도와줘야 하는데…. (대통령이) 당 생각이나 당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느낌이어서….”(중립 성향의 중진 ㄴ의원)

“점심때 나온 이야기는 ‘(대통령 회견이) 좀 쪽팔린다’는 쪽으로…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많이 흘러갔다. 아, 더는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 (3인방과 관련해선) 너무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니 이제 말을 말아야겠다. 이런 분위기라면 당에서 누가 청와대 인적 쇄신을 거론할 수 있겠나 하는 낭패감이 있다.” (원내 지도부 고위 관계자)

대통령의 신년회견에 대한 새누리당 내의 평가는 굳이 계파를 구분하지 않고도 대동소이했다. 대부분 말을 아꼈다. 일부는 “내일 이야기하자”고 했다. 언론 보도를 보고 판단을 하겠다는 유보였다. 대구를 지역구로 둔 ㄷ의원은 대통령 신년연설 이틀 후인 14일 이런 말을 들려줬다. “지역구 행사가 있어 갔는데 분위기가 영 좋지 않더라. 그래도 박 대통령에게 가장 우호적인 지역인데도 ‘청와대 직원들이 대통령 잘못 모신다는데 왜 처리를 못하느냐’ ‘만날 경제 살린다더니 말만 그렇다’ ‘수도권 규제를 풀면 우리는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 등 성토가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성난 민심을 처음 접해 대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일부 의원은 김영한 민정수석이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해 국회 출석을 거부하고 물러난 것을 두고 “박 대통령이 항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화가 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회를 너무 얕보는 것 아니냐는 의미였다. “3인방에 대한 신뢰가 ‘친박(근혜)’에 대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고 느꼈다”는 친박계 의원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이걸(친박을) 언제 떼어내버려야 될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친박을 짐으로 느끼시는구나 하는 게 느껴져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여권의 분위기는 기자회견 당일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1월1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신년기자회견이 박 대통령의 회견과 비교되며 이야기들이 나왔다. 앞서 언급한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를 받아 크게 할애하고 강조하면서 일부 언론에서 ‘당·청 관계 이상무’를 보도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박 대통령은 재정 확대를 통해 경제를 살리자고 했지만, 김 대표는 일본의 예를 들어 재정 관리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가부채나 가계부채 증가를 걱정하면서 결국 박 대통령과 상반되는 견해를 피력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당 대표 중 누가 진짜 국민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는가를 물어보면, 나는 대표 쪽에 손을 들겠다”고 했다.

1월14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신년기자회견을 새누리당 당직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김 대표 수첩 파동에 “청와대가 심하다”

그렇다면 이번 신년회견을 계기로 비서관 3인방은 예전과 다른 실세로 등급이 올랐을까. 정치권의 한 인사는 “3인방에 대한 강력한 옹호로 3인방이 더욱 실세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제는 3인방이나 ‘십상시’와 잘못 엮여서는 큰일 날 수 있다는 인식이 더 커졌을 것”이라며 “여론의 향배를 보고 대통령이 3인방의 역할 조정이라든가,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 등 결단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일부지만 당심(黨心)을 잡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에서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힌 박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총평을 한번 들어보라고 기자에게 권한 의원이 있었다. “1년에 겨우 한 번 모든 현안에 대해 몰아서 얘기하고 1년 동안 아무런 대화도 없는 이런 대통령은 민주국가에서 보기 어렵다. 크게 기대할 게 없을 것이라는 예상 그대로였다”는 것이 이 교수의 인터뷰 내용 골자였다.

김무성 대표의 기자회견 날 불거진 ‘K, Y’ 수첩 파동을 두고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선 “청와대가 좀 심하다”는 쪽으로 기류가 흐르는 모습이다. 음종환 전 행정관의 개인 견해가 아니라 김 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생각이 단적으로 드러났다는 쪽으로 해석되고 있다.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의 배후가 김 대표라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한마디라도 언급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2·8 전당대회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 진용이 갖춰지고서도 당·청 관계가 이런 식으로 계속 경색되면 4월 보궐 선거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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