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국’의 골든타임
  • 김재태 | 편집위원 ()
  • 승인 2015.01.2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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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을 내려놓고도 시장기가 가시지 않으면 밥을 더 먹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적 욕구입니다. 그런데도 밥을 그만 먹으라며 상을 치워버린다면 무척 서운합니다. 두 달 가까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그 찌라시, 이른바 ‘정윤회 문건’ 처리 과정을 바라보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수사 결과가 나왔는데도 민심은 찜찜하고 뭐 하나 달라진 것이 없으니 답답하기가 체증 걸린 배 속 못지않습니다.

딱 하나 달라진 게 있긴 합니다. 주인공이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연관된  인물들 뒤에 배경처럼 서 있던 청와대가 앞자리로 불쑥 튀어나온 것입니다. 청와대는 ‘몇 사람이 사심으로 인해 나라를 뒤흔든 일’을 했다고 못 박았으나, 그 몇 사람이 청와대 사람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지만, 애초 그 부끄러운 일이 시작된 곳이 청와대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습니다. 청와대에서 만들어진 문건에 의해 그야말로 청와대가 북 치고 장구까지 친 사건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을 기소한 검찰이 그들에게 적용한 혐의도 허위문서작성죄가 아닌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입니다. 검찰도 정부 공식 문서로 인정한 것입니다. 몇 사람이 아무리 흉측한 사심을 품고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잘못은 결국 그들을 품었던 조직의 잘못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이런 데 휘둘리는 우리 사회가 건전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흔들리고, 의심을 품는 언론과 국민 다수가 잘못하고 있고, 그런 국민들이 있는 사회도 불건전한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항명 파동과 함께 사퇴한 민정수석부터 여당 대표를 문건 파동의 배후라고 발설한 것으로 알려져 면직당한 행정관 사건까지, 스스로 그렇게 목청 높여 외치던 공직 기강이 권부의 중추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형국입니다. 이러니 청와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에 불안감이 차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도 마찬가집니다. 뭔가 새롭게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은커녕 국민들의 인식과는 거리감이 크다는 실망감만 키워줬다는 평가가 여기저기서 쏟아집니다. ‘찌라시’는 여전히 찌라시로 남아 있고, 의혹의 대상이 됐던 ‘문고리 권력 3인방’은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은 완벽체로 바뀌어 되레 입지만 더 단단해졌습니다.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를 무시한 민정수석의 행동도 항명 파동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결국 또 언론과 국민만 괜한 걱정을 한, 싱거운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청와대가 지금은 국민들의 걱정거리가 되어 있지만 반전의 기회가 없는 건 아닙니다. 진정한 쇄신을 보여주면 얼마든지 털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왕들은 국면 전환이 필요할 때 인적 쇄신이라는 신의 한 수를 택했습니다. 그렇게 조성된 국면을 ‘환국(換局)’이라고 부르는데, 대표적인 것이 탕평책으로 유명한 영조의 ‘정미환국’입니다. 현재의 박근혜 정부에 절실히 필요한 것도 바로 이 탕평의 환국입니다. 위기가 곧 기회이듯, 지금 이때야말로 대대적 쇄신을 위해 놓쳐서는 안 될 환국의 ‘골든타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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