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을 짓 해서 맞았다는 아들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1.2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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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생 송두리째 할퀴는 아동학대 성인 된 후 폭력 행사하는 ‘학대 대물림’

올해 열 살이 된 성조(가명·남) 엄마는 7년 전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직장에 다니던 엄마는 성조를 낳고 2년 동안 휴직하며 아이를 키웠다. 남의 손에 맡기는 게 불안했다. 성조가 세 살 되던 무렵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다. 인근에 규모가 큰 어린이집이 있었지만 같은 아파트 1층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이 더 아이를 잘 돌봐줄 것 같아 그곳에 아이를 맡겼다. 그 원장은 평소 안면이 있는 이웃 주민이고,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여서 더 안심할 수 있었다. 성조 엄마는 “어느 날 보육교사가 우리 아이를 때렸다는 얘기를 다른 엄마한테서 들었다. 그 집 아이가 어린이집이 무서워 가기 싫다고 해서 추궁해보니 그 전날 성조가 보육교사한테 맞는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그 집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서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보육교사가 살짝 건드린 것을 부풀려서 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성조를 목욕시키던 엄마는 깜짝 놀랐다. 엉덩이와 팔에서 멍든 자국을 발견한 것이다. 아들에게 물었지만 성조는 엉뚱한 소리만 할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음 날 어린이집을 찾았다. 알고 보니 성조가 시금치를 먹지 않아서 보육교사가 억지로 먹게 했는데 아이가 시금치를 뱉어내자 보육교사가 아이 엉덩이를 발가벗기고 슬리퍼로 때린 것이다. 이때 아이 팔을 세게 잡아 팔에도 멍이 났던 것이다. 성조 엄마는 “이런 식으로 여러 차례 신체적 학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멍이 날 정도는 심하지 않으냐고 했더니 어린이집 원장은 되레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아이가 시금치도 먹지 못하느냐고 해서 기가 막혔다. 가정교육 운운하는 어린이집 원장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신체적 학대로 자기비판적 성향 생겨

성조 엄마는 그 어린이집을 해당 구청에 신고했다. 원장의 친정엄마가 자격증도 없으면서 신생아에게 젖을 먹이는 등 보육교사 노릇을 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규정 인원을 초과해 아이를 받은 사실도 밝혀졌다. 그 어린이집은 나중에 시정명령을 받았지만 그 후 오랫동안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운영했다. 성조 엄마는 “원장의 자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린이집을 생업의 목적으로 운영하면 안 된다. 돈에 따라 변질되기 때문”이라며 “학부모도 문제다. 우리 아이가 맞았다고 알려준 그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그 어린이집에 계속 보냈다. 그런 어린이집이라면 학부모들이 함께 거부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그 이후 나타났다. 본래 내성적인 아이였지만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성조는 말수가 확연하게 줄었다. 좋다거나 싫다는 표현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릴 때 동화책을 읽으면 누가 불러도 모를 정도로 집중력이 좋았던 아이가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부를 해도 집중이 되지 않으니 성적은 늘 하위권에 머물렀다. 성조 엄마는 “어느 날 아이가 친구들에게 맞고 들어와서 물었더니 자기가 맞을 짓을 해서 맞은 것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친구들이 뭘 사먹기로 했는데 아이는 돈이 없어 그냥 가려고 하다가 맞았던 것이다. 그 후 우연히 옛날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에게 맞은 얘기를 했는데, 성조가 시금치를 먹지 않은 잘못 때문에 당연히 맞은 것이라고 말해서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학대는 크게 신체적 학대, 정신적인 학대 그리고 방임으로 나눌 수 있다. 그 가운데 방임은 증거가 없고 애매해서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방임은 다른 학대보다 흔한 학대다.

올해 여섯 살이 된 민지(가명·여)는 4년 전 약 11개월 동안 방임된 후 지금까지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천 어린이집 폭행 장면. KBS 화면 캡처. ⓒ 시사저널 포토
“이혼으로 아이 방치한 게 치명적 상처”

민지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유독 잘 웃어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예뻐하던 아이였다. 민지의 인생이 뿌리째 흔들린 것은 첫돌 무렵이었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양육권 소송이 진행됐다. 엄마는 집을 나와 혼자 살았고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아이는 아빠가 보살피기로 했다. 아무래도 경제력이 있는 아빠와 지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빠는 바쁜 직장 생활로 아이를 보살필 겨를이 없었다. 결국 보모를 고용해 아이의 양육을 맡겼다. 지루한 소송 끝에 양육권을 찾은 엄마는 거의 1년 만에 어린 딸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됐다.

ⓒ 시사저널 이종현
그러나 민지는 엄마 품에 안기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를 따르던 어린 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은 늘 무표정했다. 처음에는 아이를 남겨두고 떠난 엄마에 대한 반항이라고 생각했다. 민지 엄마는 “보모가 아이를 잘 돌봐주리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민지에게 하루 3~4번 우유를 먹이는 게 전부였고, 나머지 시간에 보모는 잠을 자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아이 혼자 놔두고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며 “결국 아이가 거의 1년 동안 혼자 집에 갇혀 있다시피 했고, 밤에도 불 꺼진 집에서 혼자 지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민지를 엄마가 사는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살게 됐지만 아이는 이상하게 변해갔다. 엄마가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것을 싫어했다. 밤에 자려고 불을 끄면 괴물이 있다며 한사코 불을 켜둔 채 겨우 잠을 청했다. 어렵사리 잠이 들어도 서너 번씩 깨기 일쑤였다. 예전과 달리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는 경우도 잦았다. 어릴 때는 낯선 사람에게도 잘 안기고 웃었는데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낯가림이 심해졌다.

엄마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또래와 어울리면 상태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상담요청이 들어왔다. 민지 엄마는 “민지가 친구들과 놀지 않고 혼자 있기를 좋아해서 처음에는 달랬지만 그럴수록 칭얼대거나 짜증을 부려서 교육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집에서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고, 혼자 우유를 마실 수 있던 아이가 꼭 먹여달라고 떼를 썼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서도 민지를 사실상 내버려두다시피 했다. 또래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민지는 다른 행동을 했고,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도록 유도할수록 아이를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불고 추운 어느 날, 다른 아이들은 실내에서 노는데 민지만 밖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어린이집을 찾은 동네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민지 엄마에게 알렸다. 민지 엄마는 딸을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새로운 어린이집에서 민지는 조금씩 또래와 어울리기 시작했고 표정도 밝아졌다. 그러나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민 반응을 보인다. 민지 엄마는 “아이를 아빠 집에서 데려온 직후부터 병원 치료를 받았고 어린이집도 바꿔 아이를 정상으로 되돌리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보인다. 아이가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장소나 비슷한 곳에만 가면 짜증을 내거나 운다. 이제 유치원에 보내야 할 나이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한때 아이를 돌보지 않았던 것이 이토록 오랜 고통으로 이어질지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반복된 정신적 학대가 틱 장애로 발전

정신적 학대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는 일곱 살 빈우(가명·여)의 사례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빈우는 4~5세 때 부모의 다툼을 여러 차례 목격한 후 틱 장애를 앓고 있다. 틱 장애란 아이가 특별한 이유 없이 신체 일부분을 빠르게 움직이는 이상 행동이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빈우 엄마는 “아이가 비정상적으로 눈을 깜빡이는 행동을 해서 병원에 갔더니 틱 장애라는 진단이 나왔다”며 “심리적 충격 등으로 이런 이상행동이 나타난다는데, 엄마와 아빠가 심하게 다툰 일이 많았던 것이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딸아이가 네 살 되던 무렵, 부모는 이혼했다. 양육권 소송 끝에 아이는 엄마와 지내게 됐고 아빠는 한 달에 한 번 빈우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빠는 이를 무시하고 수시로 딸을 찾았다. 빈우 엄마는 “이혼했지만 그래도 친아빠여서 수시로 찾아와도 빈우와 지내도록 했는데 그때마다 나하고 크고 작은 싸움이 생겼다”며 “아이 교육상 좋지 않을 것 같아 되도록 아빠를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 달에 한 번만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빈우 아빠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와 빈우를 찾았다. 한번은 빈우 아빠가 엄마 집 초인종을 눌렀으나 빈우와 엄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옥신각신 끝에 아빠는 결국 문을 부수고 집에 들어와 엄마를 폭행했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안 살림을 집어던졌다. 빈우는 울면서 이 모습을 목격했다. 빈우 엄마는 “그때부터 아이가 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초인종 소리만 나도 바지에 오줌을 쌌고, 자면서 오줌을 누는 경우도 어릴 때보다 더 잦아졌다”고 말했다.

말수가 줄어들었고 멍하게 있는 경우가 늘어났다. 초인종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고 숨이 거칠어지는 증세를 보였다. 계속 문을 바라보며 누가 오지 않는지 살피는 버릇도 생겼다. 다섯 살 때는 아빠가 빈우를 만난 후 무작정 자신이 키우겠다며 딸을 엄마에게 보내지 않았다. 빈우 엄마는 혹시 아이에게 큰일이 생길까 두려워 경찰에 신고한 후에야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도 빈우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엄마를 따라 경찰서를 드나들어야 했고 거리에서까지 부모가 심하게 다투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후 지금까지 빈우는 엄마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가 곁에 없으면 불안한 증세를 보인다.

한번은 어린이집에서 또래와 놀던 빈우가 흥분한 나머지 친구를 밀어 넘어뜨려 팔과 다리에 상처를 입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뒤늦게 어린이집 원장으로부터 빈우가 수시로 친구를 꼬집고 괴롭힌다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어린이집에서 퇴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엄마는 아이를 거칠게 대했다.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벌을 줬다. 빈우 엄마는 “일곱 살이 되면서부터 틱 장애 행동이 나타났다. 병원에서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벌을 주면 더 증상이 심해지거나 다른 틱 장애 증상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며 “그 후부터 아이를 달래며 키우고 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이런 일이 계속될 것 같아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신고조차 못하는 나라 


아동학대 신고 전화번호가 지난해 9월부터 1577-1391에서 112로 통합됐다. 교사·의료인·아동 관련 시설 종사자는 물론 일반인도 아동학대를 신고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벽이 높다. 여섯 살 된 딸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는 “지금은 좀 나아졌겠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찰에 신고하면 아동보호센터에 알리라고 하고, 아동보호센터에 신고하면 경찰에 신고 접수가 돼야 출동해 아동학대 여부를 파악한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아동학대로 판명 나려면 물증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신고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다. 동영상이나 녹취물이 없으면 아동학대를 증명할 길이 없다. 예컨대 아이의 몸에 멍 자국이 있어도 학대가 아니라 넘어진 흔적이라고 우기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괜히 신고했다가 무고죄나 명예훼손으로 오히려 당할 수 있다. 초등학생 딸이 있다는 한 택시 운전기사는 “스마트폰이 없거나 있어도 녹화·녹음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아동학대를 보고도 신고할 수 없는 나라”라고 꼬집었다.

추후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경찰서까지 오라 가라 해서 생활을 할 수 없는 데다 이후 신고를 당한 사람으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보복을 당할 수 있다. 아동학대를 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 않으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모른 척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 파주에 사는 한 주부는 “어린이집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아서 맘에 들지 않는다고 덜컥 나올 수도 없는 실정”이라며 “오히려 보육교사에게 화장품을 사주며 아이를 잘 봐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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