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진-김정주 우정과 배신, 그 사이에 돈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2.0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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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 넥슨의 급습…3월 엔씨소프트 주총에서 경영권 결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정주 넥슨 창업주(현 NXC 회장)는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김택진 대표가 서울대 공대 85학번이고, 김정주 회장이 86학번이다. 사석에서는 말을 놓을 정도로 관계 또한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2012년 6월 처음 손을 잡았다. 김정주 회장은 8045억원을 투자해 엔씨소프트 지분 14.68%(현 15.08%)를 매입했다. 김택진 대표는 이 돈으로 글로벌 게임업체를 인수할 예정이었다. 2013년 1월에는 합작 사업인 마비노기2 프로젝트를 위해 엔씨소프트 판교 사옥 주변에 스튜디오도 차렸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시작한 글로벌 게임업체 인수는 실패로 끝났다. EA와 밸브 등 세계적인 게임업체와 접촉했지만 ‘불가’ 입장만 들어야 했다. 마비노기2 프로젝트 역시 두 조직의 불협화음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후 두 조직 간에 갈등이 본격화됐다. 업계에서는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회장의 경영권 다툼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3년 가까이 유지됐던 ‘한 지붕 두 가족’ 체제 역시 깨질 위기에 처했다.

김정주 NXC 회장 ⓒ 뉴스뱅크 이미지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 승진 때문 아니다”

지난 1월23일 엔씨소프트가 김택진 대표의 부인이자 글로벌최고전략책임자(Global CSO)인 윤송이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킨 것이 표면적인 분쟁 이유로 꼽힌다. 최대주주인 넥슨은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넥슨은 1월27일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가’로 변경했다. 넥슨 측은 “기존의 협업 구도로 급변하는 IT 환경을 따라잡을 수 없는 만큼 적극적으로 주주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2012년 6월 넥슨이 엔씨소프트 주식을 매입할 때까지만 해도 이 회사 주가는 주당 25만원을 오르내렸다. 하지만 넥슨이 주주로 참여한 이후 엔씨소프트 주가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해 11월 20만원대가 붕괴됐고, 2014년 10월에는 12만원대까지 추락했다. 엔씨소프트 소액주주들은 ‘김택진 물러나라’는 제목의 안티 카페까지 개설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최근 3개월 동안 엔씨소프트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기 직전인 1월27일에는 18만3500원을 기록했고, 다음 날에는 상한가를 치면서 20만원대를 회복했다. 하지만 고점에 비해 여전히 20% 이상 하락한 상태다. 김정주 회장 역시 2000억원 안팎의 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대주주인 넥슨의 고민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업계 관계자는 “김정주 회장은 여러 차례 이사 파견을 엔씨소프트 측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에 넥슨이 주주 역할 강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넥슨은 지분 보유 목적을 변경하면서 1월22일 엔씨소프트 측에도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 공시 날짜만 1월27일이고, 윤 사장의 승진이 확정되기 이전에 이미 경영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이다. 엔씨소프트 측도 “윤송이 사장의 승진을 이유로 넥슨이 투자 목적을 변경했다는 주장은 넥슨의 물 타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윤 사장의 승진은 경영권 분쟁의 단초가 될 수 있지만,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얘기다.

여의도 증권가 일각에서는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회장이 주가 부양을 위해 ‘이심전심’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인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주가 부양책은 엔씨소프트 내부 사정이나 김정주 회장이 투자할 때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못을 박는다. 엔씨소프트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2012년 넥슨이 주식을 매입하면서 대금을 엔화로 결제했다”며 “당시 엔화 대비 원화 가치는 1482원32전에서 925원60전으로 45% 이상 상승했다. 김정주 회장은 최소 100억 엔 이상의 차익을 봤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넥슨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넥슨이 엔씨소프트를 상대로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나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넥슨이 그동안 성장해온 배경만 봐도 그렇다. 김택진 대표는 리니지 시리즈와 아이온 등 자체 개발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를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넥슨은 네오플·게임하이 등 인기 게임 개발사를 인수하면서 덩치를 불려왔다. 이참에 엔씨소프트까지 인수하면서 게임 개발 노하우를 축적하려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3월 주총이 경영권 분쟁 분기점 될 듯

업계에서는 향후 두 사람이 엔씨소프트 경영권을 놓고 지분 매입 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넥슨은 지난해 10월 0.4% 지분을 추가 인수하면서 공정위로부터 기업 결합을 승인받았다”며 “언제든 엔씨소프트를 인수할 바탕을 마련한 만큼 적대적 M&A도 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당장 3월 초로 예정된 엔씨소프트의 주주총회가 주목된다. 현재 엔씨소프트의 등기임원 7명은 모두 김택진 대표 쪽 인물이다. 넥슨은 이번 주총에서 김정주 회장 측의 이사 파견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택진 대표의 해임을 건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이 경우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와 외국인 투자자들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엔씨소프트의 단일 최대주주는 넥슨(15.08%)이다. 우리사주를 포함한 김택진 대표의 우호 지분(20%)보다 조금 낮은 상태다. 결국 30%에 이르는 지분을 가진 기관투자가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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