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기의 3분의 2는 마쳐야 풀려나는 게 불문율”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2.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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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의 대기업 총수 가석방 움직임에 제동 걸고 나선 서기호 의원

발단은 법무부장관의 한마디였다. 지난해 9월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잘못한 기업인도 국민 여론이 형성된다면 다시 (경제 활동의) 기회를 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황 장관의 발언은 기업인 특히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면과 가석방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혔다. 황 장관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현 정부의 경제 수장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그의 발언에 동조하고 나섰다. 이렇듯 ‘친박(근혜)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부에서 잇단 기업인 사면 및 가석방 추진 움직임이 있었지만, 여야 정치권 안팎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황교안 장관 발언은 청와대 의중 반영된 것”

황 장관의 발언이 나온 후 4개월여 동안 대기업 오너 사면 및 가석방 논란은 정치권의 시빗거리가 됐다. 결국 법무부는 지난 1월 중순 “대기업 총수들을 가석방 대상으로 올릴 계획조차 갖지 않고 있다”며 꼬리를 내렸다. 이로써 대기업 총수 가석방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황 장관의 발언 이후 법무부의 기업인 사면 및 가석방 추진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왔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2월2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법무부의 기업인 가석방 움직임이 일단 여론에 밀려 수그러들었지만, 분위기만 바뀌면 언제든 다시 꺼내들 수 있는 카드”라면서 경계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법무부의 기업인 사면 추진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중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 의원은 “황 장관의 발언이 나왔을 당시 단순한 돌출 발언이 아니란 점에서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그는 황 장관이 기업인 가석방 가능성을 언급한 것을 두고 이중적인 태도라고 비판했다. 서 의원은 “황 장관의 언론 인터뷰가 있기 1년 전쯤인 2013년 8월 가석방심사위원회가 황 장관에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가석방을 건의했지만 황 장관이 이를 거부했고, 더 나아가 사회 지도층에 대한 법집행 공정성 강화 계획을 수립해 박 대통령으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기업인의 가석방은 고사하고 오히려 법집행의 공정성을 소신으로 내세워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한 황 장관이 1년여 만에 돌연 기업인의 가석방 가능성을 언급한 데는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 분명하다”며 “황 장관의 발언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나오자마자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해 집중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비리 기업인의 사면과 가석방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재벌 총수들에 대한 형사처벌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재벌범죄백서’를 발간하는 등 대기업 총수 일가 가석방 움직임에 대한 반대 여론을 조성했다. 그는 “재벌범죄백서를 발간하는 과정에서 10대 그룹 총수의 50%가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그런데 이들은 이미 대부분 집행유예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고, 그나마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으로 대부분 사면 복권됐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대기업 총수 일가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법무부와 사법부 등의 엄정한 법집행 의지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선고가 이뤄진 재벌총수 일가의 형사 사건에 대해서는 모두 집행유예 결정이 내려졌고, 이 때문에 실제 복역을 한 사례는 전혀 없었다”며 “특히 법무부장관은 재벌 총수 일가의 취업 제한 위반 사항이 있음에도 이를 제재하지 않고 직무를 방기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서 의원이 법무부의 2007년 이후 가석방 통계를 분석한 것은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가석방을 추진해오던 법무부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비리 기업인의 가석방 추진 근거로 형법 조항을 들며 ‘형기의 3분의 1을 마치면 가석방 대상자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인들이 자격을 갖췄음에도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하지만 서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가석방자의 형 집행률 현황’을 보면 형기의 50% 미만을 마친 사람에 대해서는 가석방이 실시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대부분이 70% 이상의 형기를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현행법상에는 형기의 3분의 1을 마친 사람에게 가석방 대상 자격을 부여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70~80% 이상의 형기를 마친 사람들만이 가석방된 것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그동안 가석방 대상자로 거론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은 3·1절 특사가 예상되는 오는 3월1일까지 형기의 52%, 58%만 채운 셈이 된다.

ⓒ 시사저널 이종현
“법무부 가석방 지침 만들고도 공개 안 해”

서 의원은 “법조계에서는 형법 조항(형기의 3분의 1)과는 상관없이 형기의 3분의 2는 마쳐야 가석방이 된다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는데, 법무부의 공식 통계로도 이것이 확인된 것”이라며 “비리 기업인 일부에 대해 형기의 3분의 1을 마쳤다는 이유로 가석방시키는 게 특혜가 아니라는 주장은 사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특히 법무부가 자체적으로 가석방 지침을 만들어두고도 해당 상임위인 법사위원회에 열람조차 시켜주지 않는 점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비리 기업인에 대한 가석방 논란은 법무부가 만들고 시행하고 있는 ‘가석방 업무지침(법무부예규 제1029호)’의 별표1을 공개하면 논란이 종식된다. 별표1은 ‘가석방심사 유형별 신청기준’으로 죄목에 따라 가석방시킬 수 있는 조건을 상세하게 구분하고 있는 표”라면서 “제가 법사위에서 해당 표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고, 법사위원장도 제출을 요구했으나 ‘보여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비리 기업인 가석방 논란은 법무부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의 수형자나 비리 기업인들에 대한 가석방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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