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돈 드나드는 터널, ‘불안’이 뻥 뚫렸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2.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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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터널 시스템업체 선정 비리로 삼성물산·풍림산업 직원 구속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3부는 지난해 익명의 제보를 받았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고속도로 터널 안전에 필요한 자재를 빼돌려 부당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2010년 이후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121개 터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절반이 넘는 78개 터널에서 설계보다 ‘락볼트’가 적게 시공된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현장에서는 설계도보다 70%나 적게 락볼트가 사용되기도 했다. 락볼트는 터널 굴착 과정에서 금이 가고 손상된 암반을 고정시키는 자재다. 터널 붕괴를 막는 역할을 한다. 검찰은 락볼트를 설계보다 적게 시공하고 187억원의 공사비를 편취한 11개 건설사 현장소장과 협력업체 직원 16명을 기소했다.

검찰이 터널 부실 시공에 이어 안전 시스템 공사 비리에 대해 수사에 나서면서 건설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주요 언론은 검찰 조사 결과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비리가 드러난 건설사의 입찰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안전성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한국도로공사는 “부실 시공이 드러난 터널을 대상으로 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문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검찰 조사가 시작될 때까지도 비리 사실을 알지 못했다. 도로공사와 감리 용역업체는 반입된 락볼트의 수량과 품질을 검수조차 하지 않았다.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관행적인 시공사 비리와 발주처의 부실한 관리·감독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도로공사 조사 결과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터널 공사 비리가 발생한 지 3개월가량 흘렀다. 이번에는 터널 시설물의 안전 시스템을 설치·관리하는 업체의 비리 의혹이 검찰에 포착됐다. 통상적으로 터널 공사를 할 때 환기와 전력 자동 제어, 자동 화재 탐지 시스템을 설치하게 된다. 이 공사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뒷돈이 오간 사실을 검찰이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2013년 5월 검찰이 4대강 비리와 관련해 한 건설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수사 건설업계 전반 확대 가능성

삼성물산은 2004년 경주~감포 간 국도에 위치한 양주터널 공사를 수주했다. 이 터널은 4㎞가 넘는 장대 터널이다. 2007년 12월 공사가 시작돼 2013년 말 완공됐다. 터널 안전 시스템 공사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ㄹ사가 하청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ㄹ사는 수주 청탁과 함께 삼성물산 직원 김 아무개씨에게 1억원의 뒷돈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수원지방검찰청 특수부는 1월25일 김씨를 구속했다.

김씨가 구속되고 일주일 정도 흘렀다. 검찰 수사의 칼날이 이번에는 풍림산업으로 옮겨졌다. 풍림산업은 현재 성남~장호원 도로공사를 진행 중이다. 마찬가지로 ㄹ사가 터널 시설물 안전관리 시스템 공사를 맡았다. 공사 수주 대가로 ㄹ사는 현장소장 박 아무개씨에게 1억5000만원의 뇌물을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2월 초 박씨도 구속 기소했다.

내부 직원 비리가 드러난 건설업체는 말을 아끼고 있다. 풍림산업 관계자는 “현재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향후 법원 판결에 따라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측은 “개인 비리로 회사와 무관하다”며 “(김씨가) 1월 말 사표를 냈기 때문에 우리도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오랜 기간 수사를 준비하면서 증거 자료 또한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수주 청탁 비리가 드러난 건설사의 상납 고리에 주목하고 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구속된 삼성물산 직원은 과장급”이라며 “업무 특성상 혼자 돈을 받고 수주 청탁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윗선에 대한 청탁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추가 수사를 벌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ㄹ사는 1~5㎞인 장대 터널 시스템 공사를 여러 차례 수행해왔다. 검찰은 ㄹ사가 다른 대형 시공사에도 뒷돈을 주고 일감을 수주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나머지 건설사 직원들도 소환해 청탁 여부를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에서는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긴장하고 있다.



건설업계 “녹초 됐는데 검찰 수사까지…” 


터널 비리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에 주요 건설업체는 바짝 몸을 움츠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건설 경기 침체로 힘든 상황에서 검찰 수사 악재까지 겹칠 경우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극동건설·벽산건설·성원건설·쌍용건설·LIG건설 등 중견 건설사 20여 곳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지난해 말에는 동부그룹의 모태 회사인 동부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쌍용건설 등 일부는 매각이나 그룹 지원을 통해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사저널은 최근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에 의뢰해 30대 그룹 건설 계열사 17곳의 부채비율을 조사했다. 2013년 말 기준으로 평균 부채비율은 392.3%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건설과 금호산업의 부채비율은 각각 1871.5%와 1483%에 달했다. 두산건설과 한라(옛 한라건설), 코오롱글로벌(옛 코오롱건설)의 회사채 금리는 평균 9.954%로 사실상 투기등급(정크)으로 취급되고 있다. 재벌 계열 건설사 중에서도 제2, 제3의 동부건설이 나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공정위 조사도 회생에 안간힘을 쓰는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인천도시철도 2호선과 경인운하 사업, 김포한강신도시 클린센터 시설공사,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등에서 건설업체가 담합한 사실이 잇따라 공정위에 적발됐다. 그동안 부과된 과징금만 4000억원에 이른다. 공정위 조사는 대외 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졌다. 해외 공사에서 입찰이 제한됐거나, 제한될 위기에 처한 건설업체도 한두 곳이 아니다.

검찰 조사는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 조사로 직원이 이미 구속된 삼성물산이나 풍림산업의 고민은 더하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지하철 9호선 공사 과정에서 부실 시공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하철 9호선 입찰 과정에서 담합한 의혹이 제기돼 공정위 조사도 받고 있다. 풍림산업 역시 성남~장호원 도로 건설공사 과정에서 부정하게 폐기물을 처리하고, 곤지암 4터널에서 발생한 터널 폐수를 무단 배출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여서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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