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학부모들 “교복을 어떡하라고”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02.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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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주관구매제’ 시행…개별 구매 여부로 논란

1983년 교복 자율화 이후 학생들의 사복 경쟁에 불이 붙었다. 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갈 수 없다는 자식들 때문에 학부모도 등골이 휘었다. 결국 2년 만에 교복은 다시 부활했다. 지금은 대다수 학교에서 교복을 착용한다. 그러나 교복에 ‘브랜드’가 생겨나면서 교복 가격은 계속 올랐다. 30만원을 호가하는 교복 값은 다시 가계에 새로운 부담이 됐다. 교복 가격을 내리기 위해 ‘공동 구매’를 시행했지만, 참여율이 저조하거나 교복 질에 만족하지 못해 번번이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번에는 ‘공동 구매’와 다른 ‘주관 구매’다. 교육부는 ‘교육비 부담 경감을 위해 교복 가격을 안정화시키겠다’며 2015년 학교주관구매제도(주관구매제도)를 시행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그러나 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주관구매제도는 ‘중·고등학교 교복을 학교에서 입찰을 통해 구입해 일괄 공급하는 제도’다. 학교는 입찰한 업체 중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를 선정해 가장 저렴한 가격에 교복을 살 수 있게끔 한다. 그러나 이 제도를 성공시키려면 소비자와 교복업계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는 입찰에 참여한 중소업체와 일명 메이저 업체라 불리는 교복 4사(아이비·엘리트·스마트·스쿨룩스), 학부모·학생 모두에게서 불만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별로 ‘주관 구매’ 시행 방법 달라

“학교 주관 구매는 강제 사항이 아닙니다. 엑소와 함께하는 아이비클럽에서 직접 입어보고 결정하세요.”

주관구매제도가 시작된 올해. 새 학기 예비소집에 모인 학생들에게 나눠준 한 교복 브랜드 전단지 내용이다. 학교의 교복 구매 신청서 ‘물려 입기’란에 체크한 후 브랜드 교복을 사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학부모와 학생이 사고 싶은 브랜드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메이저 업체와 주관구매제도 참여 업체 간에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2월1일 교복 중소업체 모임인 학생복사업자협의회 김동석 대표는 “주관구매제도를 방해하는 메이저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교육부가 지정한 주관 구매 입찰 참여 최저가(20만3084원)에 맞춰 메이저 업체들도 가격을 내렸다. 본래 27만원 정도에 판매하던 교복 가격이 21만원이 됐다. 그 가격에 블라우스(4만원) 한 장을 덤으로 주거나 체육복(4만~6만원)을 제공하는 등 혜택도 내걸었다. 메이저 업체에서 구매하는 학생이 늘어나면서 주관 구매에 참가하는 학생 수는 예상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중소업체들은 “교육부를 믿고 박리다매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관 구매 입찰에 참여했는데 학생 수가 적어 도저히 마진이 남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고, 메이저 업체들은 “교육부 제도로 인해 영업이 안 돼 문을 닫게 생겼다”고 하소연한다. 양쪽 모두가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에서 브랜드 교복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50)는 “교육부는 개별 구매를 하면 안 된다고 발표한 적이 없다”며 “일부 학교에서 100% 주관 구매를 해야 한다고 안내해 교복을 구매한 학생들이 기장까지 줄인 교복을 환불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 매출이 지난해의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메이저 교복업체들의 홍보 전단
교복 가격 내렸지만 시장은 대혼란

업체뿐만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도 주관구매제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딸을 둔 김 아무개씨(가명·43)는 “브랜드 교복을 직접 입혀보고 구매하고 싶은데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망설이고 있다”며 “주관 구매가 권유 사항인지, 개별 구매 자체가 불가능한 것인지 확실히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경기도의 한 교복 대리점을 방문한 이진희씨(45)와 딸(16)은 “교복 실물을 보려고 대리점에 왔는데 (주관 구매와)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이왕 가격이 비슷하다면 입어보고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교복 주관 구매를 한다고 하는데 따로 사 입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주관 구매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엄마와 교복을 맞추고 왔는데 환불을 해야 되는 것이냐”는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주관구매제도는 학교에서 선정한 업체에서 교복을 구매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 ‘원칙’을 왜 학생과 학부모가 헷갈려 하는 것일까.

교육부가 각 학교에 전달한 신청서 양식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학교 주관 교복 구매에 참여’하거나 ‘교복 물려 입기 등을 통해 교복을 구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마다 이 양식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경남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에는 ‘주관 구매 참여를 희망하지 않는 학생도 교복 구매 신청서를 제출하고 교복을 개별 구매하라’고 적시돼 있다. ‘교복 물려 입기’란에 체크한 후 개별적으로 구매하라는 것이다. 반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는 ‘주관 구매 참여를 원칙으로 한다’며 ‘일괄 구입 납부고지서를 발부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학교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경기도의 다른 고등학교 역시 ‘교복 물려 입기’를 제외한 모든 신입생은 주관 구매에 ‘반드시’ 참여하고 구입해야 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한 제도가 시행됐지만 학교장에 따라 어떤 학교는 개별 구매를 인정하고, 어떤 학교는 주관 구매에 꼭 참여해야 한다는 식으로 어정쩡한 상황이다.

주관구매제도와 관련해 혼란이 야기되는 주된 요인으로 ‘제도의 미비’를 꼽는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주관 구매를 추진해 시장에서 교복 가격이 하락했고, 개별 구매 대비 최고 34%에 이르는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났다’는 등 실적 홍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정희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대표는 “제도의 취지는 좋으나, 보완돼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며 “전체적으로 교복 가격이 내려갔다고 해서 성공적인 제도는 아니다. 교육부가 이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개별 구매를 제한하거나, 등록금 고지서와 함께 ‘교복 고지서’를 보내는 등 주관 구매를 일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관 구매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교복업체 모임인 경남교복협의회가 창원 시내 초·중·고등학교에 보낸 문서에는 ‘교복업체가 하는 홍보와 판촉 행위도 제한할 수 없으며, 교복을 개별 구매한 학생들에게 교환과 환불을 종용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들은 현행법상 학교 주관 구매 참가를 강제할 근거 규정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교육부 측은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주관 구매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각 학교에 공문으로 발송했고, 개별 구매 선택지를 준 학교에는 학생들이 혼선을 빚을 수 있다고 판단해 주의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개별 구매를 하지 말라고 제한할 방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따로 법령이 마련되지 않는 한 제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메이저 업체들도 가격을 낮추면서 현재 시장이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피해를 본다면 교육부가 즉각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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