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 담배와 국수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5.03.0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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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명절 때 고향에서 친지를 만났습니다. 내년이면 환갑인 그는 골초입니다. 하루 한 갑 반을 피우는데 담뱃값이 오르기 전에는 두 갑을 피웠다고 합니다. 담배를 끊을 수는 없고, 하루 한 갑 정도로 줄일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는 “정부가 담뱃값을 올려도 너무 올려 농민들 피를 빨아먹고 있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저가 담배(봉초)가 나오면 그걸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연휴 동안 뉴스의 홍수에서 벗어나 있던 터라 무슨 얘기인지 궁금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노인들을 위해 저가 담배를 내놓기로 여야가 합의했다는 겁니다. 곧바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지역구민 하소연을 듣고 봉초담배 시판 검토 발언을 했고,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이 맞장구를 쳤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친지의 말이 정확하진 않지만 없는 걸 지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도 봉초담배 시판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친 건지 모르겠습니다. 2500원짜리가 갑자기 4500원이 됐으니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 때마다 얼마나 울화통이 터지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봉초담배 얘기를 꺼낸 게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그는 정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애당초 정부는 담뱃값을 올릴 때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꼼수 증세라고 하는데도 정부만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이제 와서 노인들 위한다며 값싼 봉초담배라니, 꼼수 증세를 자인한 꼴입니다. 

#. 연말정산 세금 폭탄이 현실화됐습니다. 직장마다 난리입니다. 인터넷은 “100만원을 토해내게 됐다” “완전 봉 됐다”며 들끓고 있습니다. 정부는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토해내는 돈이 10만원을 넘을 경우 3개월에 걸쳐 나눠 내도록 했습니다. 흉흉한 민심을 달래보려 고육책을 낸 겁니다. 유리지갑들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기껏 내놓은 대책이란 게 조삼모사라는 겁니다. 세금을 안 내겠다는 게 아니라 재벌 감세로 펑크 난 세수를 서민들에게서 털어가는 불공평을 고쳐달라는 게 월급쟁이들의 요구입니다.

# ‘퉁퉁 불어터진 국수’ 논쟁이 한창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참 불쌍하다”며 부동산 3법을 국회에서 늦게 통과시켜준 것을 비유해 그 말을 쓴 데서 촉발됐습니다. 박 대통령은 “그것을 먹고도 경제가 활성화되고 집 거래도 많이 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겉만 본 것입니다. 늘

어난 거래라는 게 전세가가 치솟자 빚을 내 집을 산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로 인해 서민들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경제를 불쌍하게 만든 장본인은 정부·여당인 셈이지요. 경제를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해서 정권을 맡겼는데, 국수 불었다고 남 탓을 하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박근혜정부 앞은 우울한 풍경들로 가득합니다. 민심 이반에 따른 동력 상실로 국정을 어떻게 끌고 갈지 걱정입니다. 특히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 세금 폭탄 등 꼼수 증세에 대한 국민 분노가 극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 창조경제 같은 공허한 구호를 되뇌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웅장한 치적’에 매달리기보다는 미친 전세부터 잡는 게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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