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으로 만든 마약 팔리고 있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3.05 16: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페드린으로 필로폰 제조·유통…인터넷에 제조법 등 상세히 나와

서울 종로에는 ‘약국 거리’가 있다. 보령제약의 모체인 보령약국을 비롯해 20여 곳의 도매 약국이 이곳에 모여 있다. 현금으로 거래할 경우 제약회사의 출고가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량 구매도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인뿐 아니라 전국 소매상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이 약국 거리뿐 아니라 대다수 약국에서 필로폰 원료가 포함된 감기약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판되는 감기약 중 상당수는 30~60mg의 슈도에페드린염산염(에페드린)을 포함하고 있다. 에페드린은 코 막힘 증상을 완화해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몇 단계의 화학 처리를 거치면 필로폰 원료가 된다. 간단한 화학 지식만 있다면 일반인도 순도 95% 이상의 마약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제조법이 간단하다. 이와 관련해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보면 감기약을 필로폰으로 바꾸는 방법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며 “제조 도구 역시 인터넷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검찰, 시중에 감기약 마약 유통한 조직 수사

기자는 2월26일 약국 거리 일대를 돌며 에페드린 성분이 포함된 감기약을 구입했다. 10만원 상당의 감기약을 모으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정도에 불과했다. 한 약국에서 여러 회사 제품을 다량 구입했음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구입한 감기약을 4시간 정도 화학 처리를 하면 수천만 원 상당의 필로폰으로 둔갑한다. 10개 들이 감기약 한 통(2000원)에서 추출할 수 있는 에페드린 양은 0.3~0.6g이다. 10만원어치 감기약으로 15~30g의 필로폰을 제조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꺼번에 수백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인천지방검찰청 강력부(이형관 부장검사)는 지난 1월 말 필로폰을 투여한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 수사 초기만 해도 검찰은 단순한 마약 투여 사건으로 파악했다. A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필로폰 제조 및 판매책 B씨도 검거했다. B씨는 검찰에서 “인터넷을 통해 제조법을 배웠고, 제조기 역시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구입했다”고 말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감기약으로 필로폰을 제조하다 적발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10년간 7건이나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2년 12월 국내에서 제조한 감기약 필로폰을 청국장으로 위장해 멕시코로 밀수출하려던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감기약 1950만 알(30억원 상당)을 시중에서 구입해 필로폰을 제조했음에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2013년 4월에는 10kg(330억원 상당)의 필로폰을 호주로 밀수출하던 국제 마약 조직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는 에페드린 성분이 든 감기약의 판매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감기약을 구입할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제재가 덜한 한국이 국제 마약 조직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게 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한국을 단순 제조기지 정도로 여겼다. 국내에서 만든 감기약 필로폰이 시중에 유통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일부 개인이 해외 인터넷 사이트와 화학 책만 보고 감기약 필로폰을 제조하다 적발됐지만 외부에 판매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B씨가 얼마나 필로폰을 제조해 시중에 유통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한수 인천지검 2차장검사는 “수사 중인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분명한 사실은 정부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유사 범죄가 재발했다는 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2013년 12월 에페드린 120mg이 함유된 감기약 50여 종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했다. 감기약이 필로폰 제조에 악용되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후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에페드린 성분이 포함된 감기약을 구입할 수 없게 했다. 의사의 처방을 받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하루 사용량이 엄격하게 제한되기 때문에 마약 성분을 추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감기약을 통해 필로폰을 제조하는 사건 역시 줄어들 것으로 식약처는 기대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30mg이나 60mg의 에페드린이 포함된 감기약이 아직까지도 일반의약품으로 묶여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마약 성분이 포함된 감기약을 구입할 수 있다. 최근 기자가 약국을 돌며 감기약을 다량 구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제도적 허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번에 검찰에 적발된 B씨 역시 약국을 통해 처방전이 필요 없는 감기약을 대량 조달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약국에서 마약 성분 감기약 쉽게 구입

특히 시중에 판매되는 시럽 형태의 어린이 감기약에는 알약보다 10배 많은 600mg의 에페드린이 포함돼 있다.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된 종합감기약보다도 5배나 에페드린 함유량이 많다. 시럽 형태의 감기약을 이용해 필로폰을 제조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될 수 있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 회장은 “현재 경찰이나 검찰에 적발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정부 스스로 ‘한국=마약 청정국’ 생각을 버리고 마약류 관리 정책을 다시 한번 세심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식약처 조치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감기약으로 필로폰을 제조한 사례가 처음 알려진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당시 국회나 시민단체는 판매 제한을 주장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국민 편의를 이유로 전문의약품 전환을 미뤘다. 약국이 자체적으로 판매를 제한하도록 방치했다. 그러는 사이 유사 범죄가 계속됐다. 감기약을 구입해 마약으로 제조하는 방식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난 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식약처는 2013년 말 여론에 떠밀려 120mg의 에페드린이 포함된 감기약 판매를 제한했으나 늑장 대응으로 문제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마약운동본부 관계자는 “치료 및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교육생 중 일부는 감기약 필로폰에 중독된 경우”라며 “지금도 어디에서는 감기약으로 제조한 필로폰이 나돌고 있을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 관계자는 “전문가 조언을 통해 에페드린 성분이 포함된 감기약 일부를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했다”며 “알약과 달리 시럽 제품은 마약 성분을 추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에페드린을 포함한 감기약 역시 원료 단계에서부터 관리를 하고 있다”며 “사후 관리를 통해 대량 유통을 차단하고 있는 만큼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조성남 강남을지병원 원장이 2월27일 마약 관련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과거 대형 병원에서는 진통제의 일종인 날부민이 도난당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날부민은 응급 환자에게 사용하는 강력 진통제다. 하지만 환각성도 강해 필로폰 대용으로 유흥업소 종사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았다. 처방전 없이 외부로 유출된 날부민이 음성적으로 유통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이다. 경찰이 불시에 대형 병원 약제과에 들이닥쳐 날부민의 관리 실태를 점검했을 정도다.

감기약도 다르지 않다. 전문의약품이라도 의사가 비급여 방식으로 처방전을 발행하면 얼마든지 추가 구입이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유출된 마약 성분의 감기약이 수천 정씩 불법 유통되는 것이다. 조성남 강남을지병원 원장은 “무허가 유통업자를 통해 감기약을 대량 공급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암거래되는 감기약을 막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5년 전부터 DUR(의약품 사용 평가)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 전산에 뜨게 해서 중복 수령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일례로 다이어트 약이나 각성제(식욕 억제제), 수면제는 현재 한 달 이상을 처방받을 수 없다. 한 달에 수령할 수 있는 개수도 엄격히 제한된다. 하지만 환자는 보험 청구를 하지 않는 비급여 방식으로 해당 약품을 50알이나 100알씩 추가로 구입할 수 있다. 이 약품이 시중에 다시 유통되고 있다. 조 원장은 “일부 병원은 이런 사실을 은연중에 홍보해 환자를 끌어들이고 있다”며 “유사 마약이 중복 처방되지 않도록 시급히 관련 제도를 다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도 최근 법 개정에 팔을 걷어붙였다.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은 “식욕 억제제 등 비급여 의약품을 처방할 때 DUR 점검을 하지 않는 기관이 다수”라며 “자율적 참여 방식으로는 문제를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DUR 의무화를 담은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현행 제도가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루에 처방할 수 있는 수면제 개수가 정해져 있지만 증상에 따라 추가 처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의사가 비급여로 처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상식이 통한다. 한 병원에서 비급여로 수백 알을 처방하기도 한다. 특히 퓨린 성분의 각성제는 식욕 억제제로 사용되고 있다. 현행법상 각성제는 다른 비만 치료제와 같이 처방할 수 없다. 현실은 달랐다. 무차별 처방으로 각성제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조 원장은 “각성제를 끊으면 금단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며 “관련 제도 개선뿐 아니라 의사 윤리 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