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총기, 거리를 활보한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3.0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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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 취소 총기 4272정 미수거…해외 직구로 손쉽게 구입해 개조

“현실성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최근 총기 사망 사고가 잇따르자 당·정이 3월2일 총기 안전관리 강화 대책을 논의했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총기 소지 허가와 총기·실탄 관리, 그리고 총기사고 현장 위기 대응 능력 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급조해 마련한 대책으로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당·정은 우선 허가제도를 좀 더 엄격하게 강화하기 위해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총단법)의 결격 사유에 해당할 경우 총기 소지를 영구히 제한할 수 있도록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결격 사유도 폭력이나 음주 등으로 인한 충동성 범죄 등을 포함해 더 엄격히 강화하도록 했다.

2월25일 세종시에서 50대 남성이 엽총을 쏴서 3명을 숨지게 하고 자살했다. 사진은 범인 차량에서 발견된 총기. ⓒ 연합뉴스
“인력 보강 없는 대책은 탁상공론”

총기·실탄 관리의 경우 총기와 실탄을 분산해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수렵 기간 중의 총기 입출고를 ‘수렵장을 관할하는 경찰관서’로 제한하는 한편, 실탄 구매 장소도 수렵장 인근 등으로 제한하고 남은 실탄은 ‘수렵장을 관할하는 경찰관서’에 모두 반납해 보관하도록 했다.

또 총기에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부착하고, 개인 소지가 가능했던 공기총도 경찰관서에 영치하도록 하는 한편, 400발 이하 실탄은 개인이 소지할 수 있던 것을 어떤 경우에도 실탄을 개인이 보관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총기 관리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은 총기 사고의 안전지대라며 큰소리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런 측면에서 늦었지만 총기 관리 대책을 내놓은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반응이 많다. 그런데 총기 사고에 대한 국민 불안이 커지자 나온 관련 대책이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 정도로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2월 말 현재 경찰청에 등록된 총기는 16만3000여 정이다. 이 가운데 엽총은 3만7424정으로 수렵 기간이 아니면 경찰서에 보관하도록 돼 있다. 이번 대책은 이 수렵용 엽총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발생한 세종시와 화성시 사건에서 이 엽총이 사용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총기 보관 장소를 제한한다고 사고가 예방될까. 반나절이면 전국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단순히 보관 장소를 제한한다고 해서 총기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실탄 반납도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군대처럼 사용한 실탄의 탄피를 수거해야 하는데 일일이 확인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총기에 GPS를 부착하겠다는 방안은 더 실현 가능성이 떨어져 보인다. 모든 총에 GPS를 부착할 수 있을지부터 불투명하고, 부착한 이후에는 관리를 누가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 만약 GPS상에 해당 총기가 수렵지를 이탈한 것으로 나올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총기 관리 담당 경찰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국을 통틀어 309명으로 1인당 관리해야 하는 총기가 평균 523자루에 이른다. 파출소·지구대에서 총포류를 관리하는 경찰 인력은 1~2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놓는 총기 관리 대책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총기 소지 면허 기간을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줄이겠다는 것도 인력이 확보된 이후에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총기 허가 업무가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업무량이 늘어나면 제대로 된 심사를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총기 허가 업무의 경우 총포상에서 대행해주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총기 사용자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방안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찰관서에 보관돼 있는 엽총이 아니라 누가 어디서 얼마나 갖고 있을지 모를 불법 총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두 가지 자료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먼저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된 2010년부터 2014년 8월까지 총기 소지 관련 현황에 따르면 자진 신고 기간에 회수된 불법 총기는 2만2200자루에 이른다. 회수된 불법 총기 종류는 공기총 7664자루, 엽총 776자루, 권총 110자루, 소총 46자루 등이다.

2월27일 공기총 난사로 4명이 숨진 경기도 화성시 사건 현장. ⓒ 연합뉴스
누가 무슨 일 저지를지 모를 ‘불안 사회’

다음으로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된 전국 총기 관리 현황에 따르면 2014년 허가가 취소된 총기 1만4279정 가운데 1만7정만 수거되고 30%에 해당하는 4272정은 수거되지 않았다. 수거되지 않은 총기 중에서 90%에 해당하는 3813정은 도난·포기·분실에 따른 미수거로 이 총기가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사건의 경우 등록된 엽총에 의한 살인이라는 점에서 사건의 전말을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할 수 있었다. 만약 미등록된 총기가 사용됐다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미등록 총기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는 점이다. 총기 사고는 그 파괴력으로 인해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지금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불안 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시중에서 총기를 구입하는 게 더 이상 비밀이 아닌 세상이 됐다. 공식적으로 총기는 지방경찰청장의 허가를 받은 총포상에서 구입해야 한다. 이에 앞서 주소지 관할 경찰서장으로부터 소지 허가를 받아야만 구입이 가능하다. 이렇게 구입한 총기는 경찰에 등록해 관리를 받는다.

하지만 불법 유통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공식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 개인 간 거래라 단속하기도 쉽지 않다. 해외에서 밀반입됐거나 분실 신고가 들어간 총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양쪽 다 등록 번호를 알 수 없도록 만들어 사고가 날 경우 범인을 추적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엽총에 비해 위력이 약한 공기총도 개조를 통해 위력을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군용 소총과 비슷한 위력을 발휘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개조된 총이 시중에 나돌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총기류에 대한 정보가 차고 넘친다. 해외 직구(직접 구매)를 통해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가 하면, 구매한 총기의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한다. 서바이벌 게임 등 레저용 총기의 경우 위력에 제한을 두고 있어 문제 될 게 없다고들 말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탄환의 위력이 0.2J(줄)을 초과하면 모의 총기로 규정돼 제조 및 판매 그리고 소지가 금지된다. 1J은 0.1kg의 물체를 1m 이동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말한다.

그런데 서바이벌 게임 마니아들은 최대 0.2J 규정에 묶여 있는 국내 제품은 외면한다. 물론 해외 제품도 국내에 들어오려면 같은 기준을 적용받는다. 여기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일이 벌어진다. 수입 과정에서 0.2J로 제품의 위력을 낮췄다가 통관 이후 원래 위력으로 되돌리면 그만이다. 다른 방법으로도 살상용 총으로 개조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총기 관리 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실태 파악 자체가 안 된다. 처음 수입할 때 검사필증을 받고 나면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놓이는 셈이다. 총을 들고 시장통이든 어디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

해외 직구 후 살상용으로 개조 쉬워

사격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김영환 대한서바이벌스포츠협회 회장은 “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마음먹고 살인하려 들면 사실상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그런 만큼 사각지대까지 놓치지 않는 좀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김 회장은 “현재 관리 주체가 없다. 누가 무슨 총을 몇 정이나 갖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된다. 그래서 총기 등록을 받고 추후 관리를 할 기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회도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올해 1월6일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단속법’이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개정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인터넷 총기 판매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전자상거래·통신판매·방문판매의 방법으로 총포·도검·화약류·분사기·전자충격기·석궁을 판매·임대 또는 광고할 수 없도록 하고, 총포 및 사제 폭발물의 제조 방법 또는 설계도면 등을 인터넷에 게시·유포하는 행위 금지’ 부문을 추가했다. 또 ‘총포에 관해 상습적으로 제조·판매·수출입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경우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 규정도 포함시켰다. 이 개정안은 국회 통과 1년 후인 2016년 1월7일부터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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