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는 김영란법 ‘재논의’에서 빠져라
  • 오경식 | 국립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 ()
  • 승인 2015.03.10 11: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서 다뤄야…대통령 거부권도 고려를

‘스폰서 검사’ ‘벤츠 여검사’ 등 비리 사건으로 전 국민을 분노케 한 적이 있다. 문제는 이런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도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이었고, 많은 국민은 허탈해하며 법의 공백을 원망했다. 이때 등장한 대안이 일명 ‘김영란법’이다.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없어도 부패한 공직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한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법으로 탄생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윤리헌장 같다는 비아냥거림에 1000일 가까운 기간 동안 국회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가 갑자기 대통령이 지난해 ‘세월호 사건’ 재발 방지 대책으로 김영란법을 들고나와 기한을 정해 법 제정을 독촉했다. 마치 김영란법이 제정되지 못해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자, 국회의원들은 허겁지겁 내용과 문제점도 잘 모르고 여론에 떠밀려, 여야 압도적 찬성으로 지난 3월3일 법안을 통과시켰다. 부패 공직자가 없어지고 대한민국이 이제는 깨끗해질 것이라며 환호를 질러야 하는데, 오히려 법안 통과 하루 만에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버렸다.

17~18세기 경찰국가 시대로 회귀 가능성

이유는 공직자의 부패 척결이라는 원래 ‘김영란법’의 취지는 어디에도 없고, 정작 포함돼야 할 처벌 대상자는 빠진 채 엉뚱한 대상자가 포함되는 등 법이 누더기가 돼 오히려 사회의 혼란과 부작용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명확한 개념, 위헌 가능성, 자의적 수사 가능성, 사생활 침해, 교원과 언론인 등 공직자 범위 확대, 법의 유예 기간 등 문제투성이의 거대한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국민은 당초 기대와 달리, 자신도 적용 당사자가 돼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지도 못한 폭탄을 맞은 격이 됐다. 필자는 지난 2월23일 국회 법사위 공청회에 참가해 이 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고, 대다수 의원도 이에 공감했다. 그럼에도 의원들은 이 법을 반대하면 반개혁 세력으로 매도돼 총선에서 불리해질 것을 의식한 나머지 여론에 떠밀려 법안을 졸속 처리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김영란법의 문제는 무엇일까. 먼저 그 대상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형평성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언론계와 사립학교까지 범위를 넓혔는데, 공익성이 있는 시민사회단체나 변호사·의사·회계사 등 전문직은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다. 대상 범위의 확대는 오히려 법의 규범력과 실효성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으며, 정치적 반대 세력 등에 의한 자의적 법 집행과 표적 수사 우려가 있다. 자칫 17~18세기의 경찰국가 시대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이 법의 시행으로 국가가 합법적으로 국민의 생활을 감시·통제할 수 있어 위헌 가능성도 있다.

법의 시행으로 감시가 일상화돼 국민 개개인의 상호 불신이 커질 수 있으며, 부정 청탁으로 처벌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공직자들은 철저한 복지부동을 해야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수동적 의식에 젖어들 수 있다. 승진 등의 경쟁자들을 음해하기 위한 무차별적 신고로 공직사회에 혼탁과 불안이 가중될 수도 있다. 부정 청탁 처벌의 주된 담당 부서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인원과 조직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져야 하기 때문에 반길지 몰라도 국민의 비용 부담은 더 늘어날 것이다.

부정 청탁의 개념 또한 모호하며, 납득할 수 없는 예외 규정이 많아 법의 취지가 달성되기 어렵다.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 제안·건의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도대체 공익적 목적이란 규정이 뭔가. 제3자의 범위는 또 어디까지인가.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불평등 법 규정이다.

‘1회 100만원, 회계연도 300만원’도 너무나 비(非)법률적인 규정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청렴도가 높은 외국의 많은 나라에서도 금액의 확정이나 기간 중 금액을 정해서 입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법대로라면 직무 관련으로 99만원을 받으면 과태료에 그치고, 직무 관련이 없는 101만원은 형사 처벌 대상인데, 죄질은 전자가 훨씬 더 중한데도 오히려 처벌은 후자가 더 무겁게 받게 돼 있어 처벌의 형평성도 문제시된다.

서민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나 맥줏집에 정보원이 상주해야 처벌 가능하며, 이를 피하기 위해 현금 사용이 늘어날 것이다. 신용카드업계, 고급 식당이나 골프장과 호텔 등은 영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시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법률비용은 늘어날 것이다. 결국 이 법이 추구하는 깨끗한 공직사회와 국가청렴도를 높이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서민 경제를 죽이고, 시민들 부담을 가중시키고, 자의적 공권력 집행으로 억울한 사람이 생겨 사회 불만 세력 증가로 사회 혼란이 가속화될 수 있다. 그나마도 깨끗한 공직사회가 이뤄진다면 다행이지만, 이런 법안으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한민국의 경제와 미래는 장밋빛이 아니라 잿빛이 될 우려가 있다.

3월3일 ‘김영란법’ 표결을 앞두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각각 원내 지도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제도적 악용을 방지하는 장치 마련해야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 이 사태를 초래한 정부와 여야 국회의원들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만약 부패가 사라지는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법의 탄생을 진정 원한다면, 정부와 여야 의원들은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고, 자신들은 이 논의에서 빠져야 한다. 그 위원회에서 개정 법안을 만들어 공청회와 학계 세미나 등을 거쳐 보완·수정하고 부작용이 해소된 완결편 개정법을 만들어 통과시켜야 한다. 1년 6개월이란 유예 기간이 긴 시간이 아니다. 

둘째, 정치권력의 언론과 정적 제거용 수단 등 제도적 악용을 방지하는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표적 수사, 자의적 법집행과 권익위의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대상자 확대를 수정해야 한다. 셋째, 1년 6개월의 유예 기간 동안 언론은 본 법안에 대한 지속적이고 꾸준한 토론과 수정 과정을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정확하게 알고 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누구나 납득하는 개정법을 만들 수 있도록 그 사명을 다해야 한다.

마지막 방안으로 본 법안이 가진 많은 문제점과 부작용을 이유로 대통령이 본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거부권을 행사해 다시 국회로 보내 재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본래 취지의 완결된 법안 제정을 위한, 그리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또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