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광기 휩쓸려 살인 기계 된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3.1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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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되고 싶나”에 ‘우르르’…IS 가담 젊은이들 증언

지난 1월 중순 터키 여행 도중 시리아 국경 근처에서 실종된 김 아무개군(18)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해 훈련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월24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정원을 통해 흘러나온 말이었다. 한때 정보위 내부에서 ‘오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훈련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군의 훈련 장소는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과거 터키 일간지 ‘휴리예트’는 터키 남부와 맞대고 있는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 코바니의 훈련소에서 주로 외국인 조직원이 훈련을 받는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미군의 공습을 업고 쿠르드 반군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IS 대원들이 물러난 곳인 만큼 지금은 운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는 시리아 전역으로 흩어져 훈련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의 ‘민주국방재단’이 운영하는 롱워저널은 지난해 11월 IS의 훈련소가 26곳(시리아 15곳, 이라크 11곳)이라고 밝힌 바 있다.

Liveleak이 공개한 IS 훈련 캠프 사진.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이들이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무슬림이 아니라 살인하러 온 것 같았다”

훈련소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김군이 어떤 훈련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IS 캠프에서 훈련받은 경험자들의 증언을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은 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뉴욕타임스에는 칸이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소개됐다. 그는 20대 초반으로 시리아의 알라카(ar-Raqqa)에서 15일간 훈련을 받은 뒤 IS의 눈에 들어 곧장 전투에 투입됐고, 총으로 2명을 살해했다. 그러나 IS의 진정한 일원이 되려면 이 정도로는 모자랐다. 칸은 이후 정식으로 IS 대원으로 대우받게 되었는데, 그 조건은 한 사람을 생매장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투를 할 때도 사람을 매장할 때도 일종의 트랜스 상태(최면·약물 등으로 만들어지는 무의식 상태)에서 저지르기 때문에 당시에는 죄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훈련을 통과한 대원들은 서로 고함을 지르고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전투에 나서곤 했다. 당시에는 경제적인 수입도 나쁘지 않았다. 칸은 정식 대원이 된 뒤 하루 150달러의 일당을 받았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지난해 11월 쿠르드족이 점령하고 있는 시리아-터키 국경지역에서 생포된 두 명의 IS 대원과 인터뷰를 했다. 그들은 “우리가 잔인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는 신앙과 약물 덕분”이라고 말했다. 두 대원의 신앙심은 매우 확고했고, 살인에 대한 죄의식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당연히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말하는 등 종교적 확신에 차 있었다. 당시 이들은 눈을 가리고 손을 뒤로 결박한 상태로 의자에 앉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결박의 필요성은 바로 증명됐다. 대원 중 한 명이 “지금 내 손에 칼이 있다면 크리스트 교인들의 목을 벨 것”이라고 말하자, ARD의 관계자 중 누군가가 “내가 크리스트 교인”이라고 대꾸했다. 묶여 있던 둘은 갑자기 몹시 흥분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고, 그렇게 인터뷰는 중단돼버렸다.

ARD는 지난 2월26일 정치 르포 프로그램 <모니터>를 통해 김군처럼 시리아로 들어가 IS 대원으로 활동했던 독일 헤센 주 출신의 메멧(가명)이라는 청소년을 만났다. 그는 아직 미성년자로 새로 사귄 친구를 통해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들었다. 메멧의 새 친구가 하루는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왔다. 영상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폭격으로 이슬람 교인들이 사망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친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느냐”며 메멧을 부추겼다. 이후 시리아로 들어가는 길은 일사천리로 열렸다. 터키의 가지안텝(Gaziantep)으로 날아가자 독일 출신 지하디스트들이 시리아 밀입국을 알선해줬다. 가지안텝은 킬리스로 가기 위해 김군이 들렀던 국경 도시다. 불과 며칠 만에 메멧은 유럽의 한복판 독일에서 중동의 전장 한가운데인 시리아로 이동했다. 완벽하게 조직된 밀입국이었다.

메멧은 이후 세계 각국에서 온 1000여 명의 청년과 함께 한 강당에 모여 매일 종교 지도자의 연설을 들어야 했다. 연설은 아라비아어와 영어, 터키어로 번역돼 강당에 울렸다. 못 알아들으면 눈치껏 옆 사람이 되풀이하는 말을 따라 했다. 낮에는 종교 관련 교육을 받고 저녁에는 공습을 피해 지하실에 숨어 지냈다. 얼마 지나 한 남자가 이들 앞에 섰다. 그가 소리 높여 “순교자가 되고 싶나”라고 묻자 많은 청년이 손을 들었다. 어림잡아 600~700명이나 됐다. 이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는 보지 못했다. 메멧은 “다른 청년들은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슬람을 믿어서가 아니라 살인을 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IS의 훈련 과정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시리아 땅에 도착한 지원자는 그의 개인적 가치나 종교적 충성도에 따라 2주·1개월·45일·6개월 과정의 훈련을 받는다. IS는 대원들의 종교적 열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래야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훈련 기간의 차이는 이런 종교적 열정을 만드는 과정의 차이다. 

“제2, 제3의 김군 포섭용으로 활용할 수도”

캠프 안에서는 보통 5명 정도의 교관이 교육하며 군사·정치·종교 훈련을 혼합해 실시한다. 훈련 기간 동안 신병은 검문소 등으로 파견될 뿐 최전선으로는 가지 않는다. 훈련소를 졸업한 후 대원이 되어도 삼엄한 감시·감독 아래 머무르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만약 IS의 전쟁에 의구심을 갖게 되면 이내 추방당하거나 처벌을 받거나, 심지어는 처형당한다. 일부의 경우 새 대원의 믿음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폭력 행위를 강조하는 교육을 다시 실시한다.

국정원의 발표가 나온 뒤 국내외 중동 전문가들은 김군 활용 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전망을 내놓았다. “체격이 건장하기 때문에 ‘전사’로 활용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 같다”(장지향 아산정책연구소 중동연구센터장), “동양인 대원을 홍보에 등장시킨 적이 없기 때문에 IS가 김군을 제2, 제3의 김군 포섭 용도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졌다”(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관측이 각각 제기됐다. 국정원은 “5월에 끝나는 훈련에서 김군이 낙오할 경우, 세계 각지의 IS 포로와 교환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그건 정말 최악의 가능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진해서 IS를 찾아온 외국인 지원자를 포로 교환용으로 쓴다면? 향후 다른 지원자들이 시리아행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탈출을 꾀하다 처형된 경우는 있어도 인질로 사용한 전례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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