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임원 금품 비리 왜 후다닥 덮었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3.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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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수리 선에서 봉합…고재호 사장 연임 관련 추측도

대우조선해양은 2013년 중순 홍역을 치렀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임직원 20여 명이 협력업체로부터 30억원 상당의 상납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가족의 해외여행 경비를 지원받거나 주택 구입 자금 일부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었다. 한 차장급 직원은 차명 계좌를 통해 12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기도 했다. 울산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는 같은 해 10월15일 대우조선해양 임직원과 협력업체 관계자 30명을 기소했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대우조선 임원 59명은 일괄적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고재호 사장은 고강도의 반부패 대책안을 내놓았다. 임직원들의 금융 거래 내역을 제출받아 감사에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1년5개월이 지난 현재 이 같은 노력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지난 1월 말 회사 감사부가 주요 영업 임원의 계좌를 뒤지는 과정에서 한 임원이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대우조선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내부 감사 과정에서 A임원이 K협력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며 “A임원은 권고사직 형태로 퇴직금을 받고 물러나고, K협력업체에는 거래 중단을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발표된 강도 높은 윤리경영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의 협력업체 납품 비리가 불거져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경남 거제에 위치한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 연합뉴스
대우조선 측 “회사에 금전적 손실 없었다”

문제는 대우조선이 비리 임원을 퇴임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덮었다는 점이다. 전경련 중소기업센터는 올 초 ‘한국형 동반성장 모델’ 5개를 선정해 발표했다. 대우조선과 K협력업체는 해양 플랜트 변압기 기술을 국산화해 30%의 원가를 절감한 점을 인정받아 동반성장 모델로 선정됐다. 대우조선과의 유착 가능성이 다른 협력업체보다 큰데도 동반성장 모델로 선정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대우조선 측은 “A임원이 먼저 사직서를 제출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2013년 검찰 조사 이후 내부 규정이 크게 강화됐다”며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A임원이 수수한 금액이 적고 회사에 금전적 손실을 끼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직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감사부에서 그동안 상납 관련 조사도 병행해왔다”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내부 절차에 따라 처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일종의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의 한 관계자는 “내부 자정 노력에도 협력업체 납품 비리가 재발됐다. 사정기관에 수사를 의뢰해 상납 관계나 추가 비리를 밝혀야 정상”이라며 “비리 당사자를 조용히 퇴직시킨 것은 꼬리 자르기 목적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이 고재호 사장(사진)의 연임 여부를 3월 말 주총 직전까지도 결정하지 않으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 뉴스뱅크 이미지
실제로 대우조선 임원 59명은 2013년 10월 협력업체 납품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냈다. 하지만 실제 퇴직한 임원은 10명(12월31일 기준)에 불과했다. 그나마 상당수는 신한기계나 삼우중공업, 디섹 등 대우조선 자회사 대표이사나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임원은 사실상 이 아무개씨 한 명뿐이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임원 59명의 사직서 제출은 여론을 의식한 이벤트였을 뿐”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회사 일각에서는 대우조선이 연임을 앞둔 고재호 사장을 의식해 납품 비리를 서둘러 덮은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고 사장은 1980년 대우조선에 입사해 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고 사장이 대우조선 사장으로 있는 동안 대우조선의 매출은 매년 성장세를 이어왔다. 세계 경제 침체로 국내 조선업계도 침체의 늪에 빠졌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 ‘빅3’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냈다. 누적 영업이익은 4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수주 목표액 달성률도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3월 말 임기가 끝나는 고 사장의 연임 가능성이 커진 이유다.

2013년 터진 협력업체 납품 비리는 고 사장에겐 불명예이자 약점이다. 고 사장은 그동안 윤리경영 실천을 최우선 경영 목표로 삼았다. 이 같은 노력에도 또다시 협력업체 납품 비리가 터질 경우 연임에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대우조선이 이 같은 점을 의식해 내부 비리를 서둘러 봉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대우조선 ‘낙하산 사장’ 내려올까 우려 


대우조선과 고재호 사장을 둘러싼 이슈는 이뿐만이 아니다. 고 사장의 임기는 올해 3월 말로 종료된다. 평상시라면 2월 안에 임시이사회를 열어 고 사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연임이 불가하다고 판단될 경우 사장추천위원회를 열어 차기 사장을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대우조선의 차기 사장은 정기주총을 2주 조금 넘게 남긴 지금까지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대우조선 최대주주(31.26%)인 산업은행은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홍기택 회장이 수행하면서 인선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산은은 지난 2월26일로 예정된 임시이사회를 3월5일과 9일로 두 차례나 연기했다. 지난 9일 우여곡절 끝에 임시이사회가 개최됐지만, 사장 인선 안건은 논의되지 않았다. 이런 추세라면 3월 주총에서 사장을 선임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대우조선의 고객 회사 경영진이 최근 잇달아 서울 중구의 대우조선 본사를 찾아 경영 공백 사태를 우려할 정도다.

대우조선 내부에서는 외부 인사가 사장으로 선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이 낙하산 인사를 후임 사장으로 결정하고, 청와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시한 대우조선 노조위원장은 3월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장 인선이 늦어지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며 “정치권에서 공기업 사장 식으로 낙하산 인사가 내려올 경우 크나큰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 위원장은 이날 구체적인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회사 안팎에서는 김연신 전 성동조선해양 사장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고 있다. 김 전 사장은 홍기택 회장의 경기고 동창으로 대우조선의 전신인 대우조선공업에서 선박영업 담당 임원을 지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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