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탈당 밉지만 야당에 좋은 회초리감”
  • 광주=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5.04.0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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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운명 가늠할 4·29 재·보선 광주 서구 을 민심 르포

“좀 도와줘. 우리 지금 아주 비상이야. 여기(광주 서구 을)는 정말 꼭 이겨야 돼.” 4월1일 문재인 대표와 함께 광주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한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의원은 누군가와 급히 통화하며 통사정했다. 이번 4·29 재·보선에서 광주 지역을 바라보는 새정치연합의 내부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번 재·보선은 사실상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선거다. 특히 조영택 새정치연합 후보가 출마하는 광주 서구 을은 더욱 그렇다. 단순한 야당 대표가 아니라 유력 대권 후보라는 사실이 문 대표에게 부담을 더한다. 새정치연합 대권 후보가 갖춰야 할 제1 조건은 당의 최대주주이자 텃밭인 호남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호남 정치 복원을 외치는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이 전격적으로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광주는 더 이상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곳’이 아니게 됐다. 이번 선거에서 천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는 호남의 새로운 맹주를 자처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표로서는 대형 악재가 터지는 셈이다. 비상이 걸린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4월1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부랴부랴 광주로 향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그보다 하루 전인 3월31일부터 광주로 내려가 여러 사람들을 접촉하며 민심을 살폈다. 다음 날엔 문 대표를 동행 취재했다.

4월1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광주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해 4·29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지원에 나섰다. ⓒ 시사저널 임준선
“당만 믿고 뽑는 건 옛날 이야기”

4월1일 오전 10시, 광주 서구 조영택 후보 사무실에서 가진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문 대표의 표정은 비장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이날 최고위원회의는 서울 관악 을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후보와 광주 서구 을에 출마한 천정배 후보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오영식 최고위원은 “서울 송파구에 출마했던 분이 광주에 내려와 출마를 하신다는데, 호남 정치 복원인지 개인 정치 복원인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추미애 최고위원 역시 “당을 이끌었던 분들이 분열에 앞장서고 있는데 이는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없게 하는 자살골”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표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한 것은 회의장을 나와 광주시민들과 접촉하면서부터였다. 문 대표에 대한 광주 시민의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애증이다. 2012년 대선 때 광주는 최고 투표율을 보이며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92% 몰표를 몰아줬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가 정권 교체에 실패하고 이후 당내에서 호남 인사들의 비중이나 입지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광주 민심은 실망, 그러다 분노로 바뀌어갔다. 이는 시사저널이 그동안 수차례 광주 지역을 방문하며 확인한 밑바닥 정서다. 광주 서구에 거주하는 50대 공무원 이 아무개씨는 “이제 당만 믿고 뽑는 건 옛날이야기가 되고 있다. 천정배 (후보) 경우를 봐도 그렇고, (야당이) 호남 껴안기의 모습을 안 보이니까…”라고 말했다. 문 대표가 그동안 ‘탕평’을 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광주의 소외감은 여전했다.

무소속이지만 천정배 후보는 현재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정치연합 조영택 후보를 앞서고 있다. 조 후보는 3월31일 오후 2시 기자와 만나 “천 후보가 지난해에는 광산구 재·보선에 출마하겠다고 하면서 그땐 경선하자고 했지 않은가. 지난해 지도부는 공정하고, 이번 지도부는 아니란 말인가. 누가 봐도 명분 없는 탈당”이라고 천 후보를 꼬집었다. 지난해 재·보선에는 권은희 후보의 전략 공천을 비판하며 경선을 주장했던 천 후보가 정작 이번에는 경선을 결정한 당의 방침에 대한 반감으로 탈당하는 게 명분이 있느냐는 비난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광주 시민들도 대부분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선거 경쟁 상대가 아닌 유권자의 입장에서 천 후보를 바라보는 시각은 좀 달랐다.

기자가 현지에서 접촉한 상당수의 광주 인사들은 천 후보의 탈당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부적절하지만, 그래도 차라리 (천 후보가) 이겨서 당을 정신 차리게 했으면 좋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많이 했다. 광주 지역 정치권 인사들과 교류하고 민심에 밝은 광주 소재 한 대학교수는 “광주는 천정배의 탈당을 곱게 보지 않지만, 그래도 당을 정신 차리게 해줄 ‘회초리’로 쓰기엔 또 그만한 인물도 없다는 분위기다. 적극적 표 동원력은 당의 지원을 받을 조 후보가 유리하니 결국 천 후보가 얼마나 선거 분위기를 달구고 이와 같은 심리를 가진 유권자들을 불러들이느냐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조 후보의 과거 역시 새정치연합으로선 찜찜한 부분이다. 광주 시민들은 조 후보 역시 지난 2012년 총선 때 공천에 실패하자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선거에서 조 후보는 광주 서구 갑 지역에 출마했으나 3위를 기록했고, 결국 민주통합당(새정치연합의 전신)의 박혜자 후보가 당선됐다.

4·29 재·보선 광주 서구 을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천정배 후보가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천정배 캠프 제공
“생각 이상으로 좋은데요, 이길 것 같은데요”

광주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문재인 대표와 조영택 후보는 시장을 돌기 전 상인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때 상인들은 문 대표에게 “부디 다음 정권 때는 꼭 정권 교체를 이뤄주길 부탁드린다. 우리가 바라는 건 딱 그것이다”라고 재차 당부했다. 문 대표에 대한 상인들의 기대는 이미 재·보선을 넘어 대선을 향하고 있었다. 문 대표는 멋쩍은 듯 웃으며 옆에 앉은 조 후보를 치켜세웠다.

문 대표가 대권 후보 지지율 1위로서의 진면목을 드러낸 것은 본격적으로 시장을 돌면서부터다. 상인들은 그와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었고, 그를 따라가 먼발치에서 연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여대생도 있었다. “꼭 한 번 보고 싶었다”는 상인도 있었다. 채소를 판매하는 한 60대 상인은 “실제로 문 대표를 보니 어떠냐”는 질문에 “TV보다 훨씬 인물이 이쁘구마잉. 진작 좀 왔으면 얼마나 좋았겄소”라고 뼈 있는 말을 했다. 기자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는 문 대표와 동행하며 틈틈이 대화를 나눴다.

 

지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천 후보가 조 후보보다 앞서는 것으로 나오던데 어떻게 보는가.

“앞으로 시간이 있고, 일단 우리 후보가 워낙 좋으니까 뭐….”

광주의 정서는 문 대표가 선거 때에만 맞춰 내려온다며 많이 서운해한다.

“허허허.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웃음)

오늘 일정 돌면서 광주 시민을 직접 만나보니 어떤 느낌인가.

“생각 이상으로 좋은데요. 이길 것 같은데요.”(웃음)

 

지난 10년간 소외돼왔다는 인식 때문에 광주 민심은 늘 정권 교체를 이뤄줄 후보를 아낌없이 밀어줬다. 2012년 대선 때 광주가 안철수 의원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것도 ‘정권 교체를 이뤄줄 인물’이라는 기대가 주된 이유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최근 문 대표가 각종 대권 후보 지지도·적합도 조사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 광주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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