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vs 이란’ 중동 패권 전쟁 불붙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04.0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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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연합군 예멘 공습…미국 배신에 독자적 안보 강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해 9월21일 예멘 후티 반군이 예멘의 수도 사나를 지배하자 고민에 빠졌다. 애초 미국과 사우디는 이들 반군 세력을 달래려고 했다. 9월20일 유엔의 자말 베노마르 예멘 특사는 전날 예멘의 모든 정파와 논의를 벌여 예멘 정부와 후티 반군 간 교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합의가 효과를 발휘하기도 전에 반군은 빈틈을 이용해 정부 청사를 점령했고 예멘 총리를 끌어내렸다.

후티 반군은 수도를 점령한 후 친서방 성향의 하디 대통령을 압박했다. 그들은 개헌과 친시아파 총리 임명 등을 요구했다. 하디 정부는 수니파, 후티 반군은 시아파로 종파가 갈린다. 그러나 하디 대통령은 오히려 예멘을 6개 자치주로 구성된 연방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다른 개헌안을 추진했다. 만약 이 연방제가 실시된다면 후티 반군의 세력은 약해질 게 뻔했다. 후티 반군의 지도자인 아델 마리크 알 후티는 6개가 아닌 남북 2개로 나누는 연방제로 개헌할 것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그의 복안은 북쪽은 후티 반군이, 남쪽은 하디 정부가 통치하자는 것이었다. 

3월30일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연합군의 야간 공중 폭격으로 예멘의 수도 사나에 화염이 치솟고 있다. ⓒ EPA연합
남북으로 분단돼 있던 인구 2400만명의 예멘은 1990년 통일을 이뤘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사회주의 남예멘과 세속주의 북예멘으로 20여 년간 분단 상태를 유지했지만, 1990년 통일을 이루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그러나 민족·종파 갈등은 계속됐고 석유 생산량 역시 적어 아랍 지역에서 불안하고 가난한 나라로 인식됐다.

이란 견제 위해 사우디-이스라엘 협력

그런 예멘에 3월26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아랍 10개국이 공습을 시작했다. 사우디 위성방송 ‘알 아랍’은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 등 걸프 5개국 외에 모로코·요르단·수단도 공습에 참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3월29일 아랍연맹은 예멘 내전을 위해 아랍연합군을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유례없이 발 빠른 아랍 국가들의 움직임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중심이 돼 만들어낸 결과다. 예멘에 개입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예멘 정국 안정을 위해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란의 존재가 있다.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의 수니파 국가들은 같은 수니파인 IS(이슬람국가)의 진격보다 시아파 반군의 기세가 거센 예멘의 내전이 더 위험하다고 결론 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던 1991년 걸프 전쟁 이후 가장 강한 연대가 이번에 이뤄진 셈인데, 세계의 골칫거리인 IS 문제에는 미적지근하게 대응하면서 시아파 후티 반군에 연합군까지 구성해버린 모양새는 아랍 종파 문제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수니파 국가들은 왜 뭉쳤을까. 일단 믿었던 미국이 이란과 핵협상을 하며 화해 무드를 타고 있다. IS 소탕 작전에서 이란의 역할이 커졌고 핵협상 타결 분위기마저 강해졌다. 미국과 이란의 해빙, 그리고 이란의 영향력 강화를 수니파 국가들은 중동 전역의 ‘이란화’로 인식하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란은 이라크와 시리아 정권,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잇는 시아파 벨트를 공고히 다져왔다. 뉴욕타임스는 “핵협상을 워싱턴의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아랍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안보 강화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수니파 대 시아파.’ 매번 중동 분쟁에는 이런 단순 도식이 등장한다. 하지만 예멘 공습은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일단 하디 대통령 대신 후티 반군이 대두된 것은 미국 외교정책의 패배를 뜻한다. 미국은 정보요원을 예멘에서 퇴거시켜야 했고, 미국 CIA(중앙정보국)와 국방부도 이곳에서 거점을 철수해야 했다. 3월25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미국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후티 반군이 예멘의 정보기관을 점거해 수많은 비밀문서를 입수했고, 그것은 예멘에서 벌이는 워싱턴의 활동이 손상됐음을 뜻한다”고 보도했다. 비밀문서에는 정보 제공자 신원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대테러 공작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예멘은 예전만 못하다고 평가받지만 여전히 미국의 위험 요소 중 하나인 알카에다 아라비아 지부(AQAP)의 주요 거점이다. 예멘에 파견된 미군은 하디 정부의 협조 아래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추적해 살해하는 작전을 벌여왔는데 이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 상황인 만큼 빠른 회복을 하려면 하디 정부의 재집권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에 이란이 중동의 안보 및 안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중동의 전략적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사우디 왕실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공공연히 “베이루트(레바논의 수도)·다마스쿠스(시리아의 수도)·바그다드(이라크의 수도)·사나(예멘의 수도)를 이란이 지배하고 있다”고 불만스러워했다. 이란의 확장을 멈추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급박함에 이스라엘과 사우디 왕실은 전략적으로 완벽하게 협력하게 됐다. 3월5일 폭스TV에 출연한 론 더머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이스라엘이 아랍인과 합의할 경우라면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니파 부족 일부, 같은 수니파인 IS와 제휴

사우디의 국내 정치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지만 예멘 북부와 1800㎞에 이를 정도로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부 지역에는 시아파 주민이 살고 있다. 예멘 북부는 후티파의 터전으로 이곳 역시 시아파가 득세한다. 후티 반군에 의해 하디 대통령은 수도인 사나에서 제2 도시인 예멘 남부 아덴으로 피신했는데 이후부터 사우디 왕실의 불안감은 증폭했다. 후티 반군에 영향을 받은 사우디 남부 주민들의 반정부 운동을 염려해서다. 사우디 왕실은 시아파 종교 지도자들을 사형에 처하는 등 탄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예멘을 공격하는 연합국들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봉건 국가라는 한계가 있는 반면, 국제사회에서 악의 축으로 평가받는 이란은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를 이루는 등 민주주의 기본 틀을 갖춘 곳이다. 이란이 주변 수니파 국가들에 공화국의 정서를 전파하는 것이 사우디로서는 두렵다. 

예멘의 지정학적 위치도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의 개입, 미국의 묵인을 낳은 소재다. 예멘은 수에즈 운하로 연결되는 홍해 입구를 끼고 있다. 미국은 바브 엘만데브 해협과 아덴 만, 그리고 예멘령 소코트라 섬 등 하루 380만 배럴의 원유가 통과하는 이곳의 지배를 확고히 하고 싶어 한다. 바브 엘만데브 해협은 국제 운송 및 에너지 수출에서 페르시아 만과 홍해를 통해 지중해와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다. 아랍 국가들에도 원유의 주요 수송로로 중요한 곳이다. 예멘 내전이 계속되는 틈을 이용해 IS나 AQAP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홍해 입구와 아덴 만 일대가 혼란스러워지는 상황을 용납하기란 쉽지 않다.

예멘을 정리하게 될 경우 군사적으로 이란을 견제하기도 용이해진다. 이미 사우디와 해빙 모드에 돌입한 이스라엘의 잠수함이 페르시아 만에 배치되면 이란의 인도양 진출을 견제할 수 있어서다. 이란이나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 예멘을 전략적 발판으로 삼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미국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예멘의 수니파들 “IS 함께하자”

테러 조직의 거점이 되기 전에 정리하려는 것도 예멘 공습의 이유 중 하나다. 예멘 지도부의 통치 능력이 떨어지면서 테러 조직과 무기가 유입됐고 시아파인 후티 반군에 대항하기 위해 수니파 부족의 일부가 같은 수니파인 IS 등과 제휴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수니파인 AQAP는 드러내놓고 시리아와 이라크의 IS에 공동 투쟁을 호소하기도 했다.

실제로 IS는 예멘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지난 3월20일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시아파 모스크를 겨냥한 자살 폭탄 테러가 벌어졌다. 허리에 폭탄을 두른 5명의 자폭으로 인해 기도를 하고 있던 신도들 중 142명이 숨지고 357명이 다치는 초대형 참사가 빚어졌다. 곧이어 IS의 예멘 지부를 자처하는 조직이 인터넷을 통해 범행 인정 성명을 냈다. 테러 조직이 방치된 상황에서 올해 1월에는 미국 대사관이 폐쇄됐고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던 미군 특수부대도 치안상의 이유로 예멘에서 철수했다.

이처럼 예멘을 향한 10개국의 공습 이유는 복잡다단하다. 그리고 자국의 이익에 따라 각국이 이웃 나라로 군대를 돌리고 있는 게 지금 중동의 모습이다. ‘테러’나 ‘내전’의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동시다발 ‘전쟁’ 시대에 중동이 돌입한 것은 아닐까.


3월28일 아랍 정상회담에서 조우한 셰이크 사바 알 아흐마드 알 사바 쿠웨이트 국왕(왼쪽)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 AP연합
예멘의 상황이 정리된다고 가정했을 때 아랍연합군은 그대로 무기를 내려놓을까? 여기에 힌트가 있다. 미국 외교의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의 리처드 하스 회장은 2월23일 전문가들의 기고 사이트인 ‘Project Syndicate’에 한 편의 칼럼을 썼다. 하스 회장은 이 글에서 IS를 상대하는 전략을 제시하면서 “수니파 중심 아랍국의 다국적 지상군 결성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하스 회장이 제안한 IS 고사 작전은 이렇다. 첫째, 정부와 금융기관은 IS의 자금 흐름을 동결시켜야 한다. 둘째, IS에 가입하는 사람들의 유입을 막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터키가 유입 파이프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 외국인이 테러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유엔 안보리 결의 2178호를 집행해 세계적으로 큰 임팩트를 줘야 한다. 셋째, IS의 호소와 선전에 대항하기 위해  IS 지배가 얼마나 불행한지 외부에 알리고 IS의 행위가 이슬람의 관점에서 맞지 않다는 점을 이슬람 지도자들에게 논의하라고 해야 한다.  

하스 회장은 IS에 대한 공습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IS의 기반을 지상군을 통해 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니파 국가로 이뤄진 다국적군을 만들어 이들에게 전투를 담당시키는 게 최선책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IS가 이 싸움을 ‘문명 간의 분쟁’이라고 평가하는 것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같은 무슬림인 수니파를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CFR은 미국 대외 정책에 영향력이 큰 조직이다. 하스 회장의 그림대로 갑작스레 조직된 수니파 연합군이 IS를 향해 총구를 돌리지 않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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