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야당 의원 몇몇을 함께 기소할 것”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04.2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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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선자금 수사 관계자들이 밝히는 ‘성완종 게이트’ 수사 전망

검찰이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을 구성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정부패에 책임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에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검찰총장의 명예를 걸어라”며 특검 도입까지 불사할 뜻을 내비쳤다. 여권이 정면 돌파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상황은 만만치 않다. 검찰의 칼끝이 2012년 대선 자금으로 향할 경우, 박 대통령과 김 대표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기 직전 통화에서 직접 거론한 홍문종 의원을 비롯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유정복 인천시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은 18대 대선 당시 각각 조직총괄본부장, 직능총괄본부장, 당무조정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성 전 회장은 대선 직전인 2011~12년 이들에게 모두 8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공소시효가 넉넉하다. 정치자금법 공소시효는 7년이어서 3년 넘게 수사할 시간이 남아 있다.  대가성 있는 뇌물로 본다면 공소시효는 10년(1억원 이상 수뢰죄)으로 늘어난다. 박근혜 정부가 퇴진한 후에도 수사가 계속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검찰로서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셈이다. 성 전 회장이 거론한 인물들 중 누구 하나라도 돈을 받은 사실이 입증되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만다.

2004년 5월21일 안대희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대선 자금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4월15일 검찰 특별수사팀 관계자들이 경남기업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물이 든 상자를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성역 없이 하라는 건 야당도 수사하라는 것”

야당으로서는 더없는 호재를 만났다. 당장 다가오는 4·29 재보선에서 여당의 텃밭이었던 인천(서·강화 을)까지 탈환하며 4곳 전승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이라고 검찰의 사정권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4월13일 “대선 자금은 여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야당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화답하듯 문무일 특별수사팀 팀장은 “수사 대상과 범위에 대해 한정을 짓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실제로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여야 유력 정치인 14명에게 불법 자금을 제공한 내역을 담은 로비 장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중진인 K 의원과 C 의원 등 야당 정치인 7~8명에 대한 로비 자료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번 수사는 지난 200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16대 대선 자금 수사의 궤적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검찰 안팎의 분석이다. 2003년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검찰 관계자 A씨는 “대선 자금 수사가 시작된다면 수사 확대는 불가피하고, 당연히 야당 쪽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또한 성완종 리스트에는 ‘친박 실세’들의 이름만 거론돼 있다. 목적성을 가지고 써놓은 것이다. 2003년 수사에서 보듯 대선 불법 자금은 여야에 공통적으로 전달되는 게 일반적이다. 액수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야당 쪽에 자금을 전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역시 2003년 대선 자금 검찰 수사에 참여했던 B 변호사는 “검찰로서는 정치적 부담감 때문에 여당 쪽만 수사를 진행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했는데, 이 말의 행간을 읽어야 한다. 결국 야당까지 수사를 하라는 말 아니겠는가. 수사가 시작됐기 때문에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반드시 야당 의원 몇몇을 함께 기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문제는 이 수사가 재계로까지 확대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경남기업 외 다른 기업들에 대한 수사도 가능할까. 2003년 대선 자금 수사와 이번 수사에는 한 가지 공통적인 의문이 있다. ‘돈을 준 기업이 경남기업 한 곳뿐이었을까’ 하는 점이다. 2003년 대선 자금 수사의 단초는 SK그룹의 분식회계 수사였다. 당시 이를 수사하던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11억원,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측근인 최돈웅 의원에게 100억원의 돈이 흘러들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돈을 준 기업이 SK만이 아닐 것이다’라는 국민적 여론이 형성됐고, 검찰은 대선 자금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그 결과 삼성·LG·현대자동차·롯데·대한항공·한화·두산 등 대기업들이 이회창 캠프에 823억여 원, 노무현 캠프에 113억여 원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성 전 회장이 줬다는 금액은 대선 자금으로 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2003년의 경우처럼 다른 기업들도 돈을 전달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번 수사가 대선 자금 전반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검찰 관계자 A씨는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증거도 명확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기업들에까지 수사를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포스코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박근혜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는 마당에 재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3년 수사 때와 지금은 검찰 위세 달라”

수사 자체가 유야무야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검찰의 위세가 2003년과 지금은 천지차이라는 것이다. B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는 검찰과 가장 거리를 둔 정부였다. 당시에도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검찰과 거리두기를 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약속은 대체적으로 지켜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다르다. 지금까지 정권의 위기가 올 때마다 검찰을 홍위병처럼 활용하지 않았나.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그야말로 친박 핵심들이다. 야당 쪽에서 설령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국민적 비판은 여당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기소를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12년 만에 다시 ‘대선 자금’ 수사라는 뇌관을 떠맡은 문무일 팀장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에 참여해 당시 최도술 총무비서관을 구속 기소했다. 그가 호남 출신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검찰은 지난해 말 터진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하명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에도 청와대는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했었다. 실질적 증거 확보 여부 이전에 문 팀장의 수사 의지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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