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신’이 중국에 간 까닭은?
  • 정덕현│문화평론가 ()
  • 승인 2015.04.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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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가>의 김영희 PD, MBC 사표 내고 대륙 시장 도전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MBC에 사표를 던지고 중국 진출을 공식화했다. 사실 김 PD의 이런 행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이미 중국에서 그는 ‘예능의 신’으로 불리며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아오던 터였다. 이는 MBC 예능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가>의 엄청난 성공 때문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중국 예능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아빠 어디가> 중국판은 방송용 시즌1·2는 물론이고 극장판 1·2도 편당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방송 광고와 극장 매출 총액이 5000억원을 넘어섰다는 얘기도 나왔다. 중국판 <아빠 어디가>의 열풍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건 천정부지로 치솟은 타이틀 스폰서 금액이다. 타이틀 스폰서란 프로그램 전반에 제품 광고를 전면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인데, <아빠 어디가> 시즌1의 스폰서 금액이 50억원 정도에서 시작한 반면, 시즌2는 551억원, 시즌3는 무려 883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이 프로그램이 중국에서 만들어낸 열풍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말해준다.

2013년 5월14일 김영희 MBC PD가 대전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인간관계론을 주제로 열린 ‘열정樂서’에서 강연하고 있다. ⓒ 뉴스1
후난TV 부총재, 김 PD와 삼시세끼 같이 할 정도

<나는 가수다> 중국판도 마찬가지다. 총 광고 매출이 3000억원에 달한다는 이 프로그램은 시즌2·3의 타이틀 스폰서 금액만 총 940억원이라고 한다. <아빠 어디가>와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한류 러시로 수혜를 본 건 SBS <런닝맨>이다. 이 프로그램은 중국판으로 제작되면서 방송과 영화의 총 수익이 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1 때 229억원이던 타이틀 스폰서 가격은 예정된 시즌2에서는 381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가>가 중국 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지만, 막상 MBC가 중국 진출을 통해 초반에 거둔 수익은 소소했다. 그만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즌1을 통해 어느 정도 수익성이 검증된 후로 시즌2부터는 MBC도 쏠쏠한 리메이크 판권 수익을 올리고 있다. 물론 5000억원에 달하는 중국의 매출에 비해 100억원 수준의 판권 수익은 약하다고 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 한류 콘텐츠의 수익 규모로 보면 결코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빠 어디가>와 <나는 가수다>의 성공으로 형성된 중국 내 예능 한류 시장이다. 시장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게 확인되면서 단순 리메이크 판권에만 그치지 않고 계약 조건이나 수출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런닝맨>은 단지 리메이크 판권 계약을 하는 차원을 넘어 현지 업체와 공동 제작을 했기 때문에 수익을 더 가져올 수 있었다.

김영희 PD는 이 예능 한류의 첨병으로서 중국 내에 자신만의 입지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사실 <나는 가수다>를 기획하고 론칭했지만 김 PD는 그리 오랫동안 이 프로그램을 만들지는 못했다. 김건모의 탈락을 번복한 일로 논란이 벌어져 일찍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은 어찌 보면 김 PD에게 중국 진출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준 계기가 되었다. 국내에서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의 PD가 중국에 플라잉 디렉터로 일종의 기술 전수를 위해 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가수다>가 바통을 이어받은 신정수 PD에 의해 국내에서 방영되고 있을 때, 김 PD는 중국판 <나는 가수다>를 중국에서 제작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나는 가수다>가 성공하면서 김영희 PD가 기술 전수를 해주던 후난TV는 또 다른 프로그램의 포맷을 기획했다. 그것이 바로 <아빠 어디가>다. 김유곤 PD가 제작한 프로그램이지만 국내에서 계속 방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술 전수는 김영희 PD가 맡았다. 중국판 <아빠 어디가>가 대박을 터뜨리자 중국 내에서 김영희 PD의 위상과 신뢰도는 더더욱 높아졌다. 김영희 PD가 중국 진출을 선언한 데는 이런 뜻밖의 기회들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2013년 중국판 <나는 가수다> 시즌2를 제작할 당시 필자는  후난TV에서 김영희 PD를 만났다. 당시 받은 느낌은 이때 이미 어느 정도 그의 향후 행보가 그려져 있었다는 점이다. 후난TV의 리하오 부총재는 거의 삼시세끼를 김 PD와 같이 할 정도로 극진했다. 물론 이는 김 PD가 갖고 있는 제작 노하우 때문이었다. 식사 자리에서도 끝없이 던지는 질문은 사실상 노하우 전수에 목마른 최근 중국 방송사들의 입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김 PD 역시 이런 중국 측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쉽게 노하우만 알려주고 ‘팽’당할 수 있지 않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김 PD는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아직 일러준 노하우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 사실 방송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그 노하우를 모두 전수받기는 어려운 일이다. 김 PD는 중국 측의 목마름을 알고 있었고 또 그 속내도 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이라는 이미 확정된 미래의 파트너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내놓은 대안은 중국과 단순한 거래 관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관시’라고 불리는 중국의 문화적 관행을 꿰뚫어본 것이다.

“중국은 우리보다 더 자본주의적”

김영희 PD가 바라보는 중국 시장은 언제 어떤 규제가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또한 성공 기회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우리나라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다”라는 그의 말 속에는 이 상반된 중국 시장에 대한 우려와 가능성이 함께 들어 있다. 중국판 <아빠 어디가>를 보면 전체 방송 분량에서 상당 부분이 광고에 할애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돈 되는 일에는 열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류 콘텐츠 리메이크 러시가 이어지자 한 방송사당 1년에 한 편 이상의 리메이크를 못하게 만들어버린 정부의 규제가 존재하는 곳이 중국 시장이다.

이러한 우려와 가능성이 공존하는 중국 시장은 앞으로 우리와 무관할 수 없는 미래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 시장이 한때 한류의 중심으로 떠올랐다면 지금은 중국 시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류 예능이라는 분야는 투자 대비 효과가 좋은 시장으로 주목되고 있다. 우리네 중국 콘텐츠 한류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행보의 결과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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