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노는 것처럼 즐겁게 하라”
  • 윤영무│MBC아카데미 이사 ()
  • 승인 2015.05.1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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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현실로 이룬 보이찻집 사장의 조언

“행복과 불행의 차이를 아세요?”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있는 보이찻집 ‘차우림’의 주인이자 ‘차문화 박물관’ 관장인 이원종씨(56)가 필자를 전철역까지 차로 데려다주면서 물었다. 필자는 바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마비되는 듯 갑자기 생각의 조각들이 모자이크처럼 엉겨 붙었다. 개량한복을 입은 그가 편안하게 윈도브러시의 속도를 높이고 더 이상 필자의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행복은…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지요. 불행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혹은 그런 사람입니다.”

“맞네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째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거지요?”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저항이오?” 저항이란 단어를 이해할 수 없어 나는 말끝을 올렸다.  

“그렇습니다. 스스로에게 저항하는 겁니다. ‘나 같은 게 뭘…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하는 거지요.”

차문화 박물관 이원종 관장과 류인숙씨가 경기도 양주에서 운영하는 차우림은 중국 윈난성의 보이차를 고수할 뿐 아니라 차우림 두레음악회를 여는 등 문화살롱 역할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하고 싶은 일 하는 것이 진짜 행복”

그는 “사람들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며 온갖 핑계와 이유를 갖다 붙이기 시작하다가 평생 아무 일도 못한다”며 “마음속으로 설계도를 조정(調整)하면 우주가 변하니, 간절하게 원하는 일이 있다면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말대로 하고 싶은 일이면 무슨 일이든 도전하는 사람인 듯했다. 연세대 신학과를 나왔지만 불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다녔다. 지난 30년 동안, 그가 종교 업무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예를 들어 D제강의 기획실에 있다가 나와서 홍보기획사를 했다거나 판화 등 아트포스터 갤러리, 액자공장, 그리고 입시학원을 하는 데 20여 년을 보낸 것이 그랬다. 그가 그런 일을 차례로 그만두고, 지금의 보이차 전문가가 된 것은 부인이 아파서였다. 내과, 산부인과, 내분비, 중풍 클리닉, 갑상선, 위암 1기, 자궁 이상 등의 질환으로 서울대병원 6개 진료과를 다녀야 했을 정도로 심각했다. 부인이 교사를 그만두고 보이차를 상복하면서부터 몸이 좋아지자, 그는 보이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의 부인은 아직은 몸이 피곤하면 오른쪽 눈이 윙크하는 것처럼 경련이 일어나고, 성대는 결절돼 있는 상태다. 성대 결절 탓에 지난 10년 동안 립싱크로 노래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참을 만하다며 견디고 있다. 그가 ‘차우림’에서 한 달에 한 번 음악회를 여는 것도 연주자들의 피아노와 기타 반주에 맞춰 아내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부부의 보이차 가게 ‘차우림’과 ‘차문화 박물관’은 원목으로 지은 1층짜리 목조 건물로 지붕만 철제(鐵製)다. 찻집은 건평 150평, 박물관은 75평이다. 두 건물이 난간 통로로 쌍둥이처럼 이어져 있다. 10여 년 전인 2006년의 일이었다. 학원을 하고 있던 그는 차를 몰고 이 근처로 바람을 쐬러 왔다가 이 집에 들어와서 본 아름다운 석양 풍경에 반해 ‘내 집이면 좋겠다’고 기도했는데 우연찮게 집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집 주인은 ‘당신 같은 사람이 사야 된다’며 구입을 권유했지만 당시 그의 전 재산은 3억원에 불과했다.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했더니 집 주인이 나서서 은행 대출까지 받아줘 총 12억원에 매입할 수 있었다.   

1층 박물관에 들어가보면, 그가 중국 윈난성의 첩첩 두메산골 차밭에 가서 현지 농민들과 같이 만들어서 가지고 들어온 보이차와 보이차를 담은 자루가 천장까지 쌓여 있고, 보이차를 보관한 커다란 항아리 수백 개가 빈틈없이 바닥에 놓여 있다. 국내 여행객들이 중국에서 사가지고 온, 혹은 시중에서 유통되는 질이 떨어지는(그의 표현에 따르면 먹어선 안 되는) 보이차를 모아놓고 진짜와 비교할 수 있도록 해놓은 곳도 있다.

그는 중학교 때 전국 한문 고전 경진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갈 정도로(지금도 <대학> <중용> 등의 고전과 차에 관한 것을 동호인 모임에서 강의한다) 고전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차와 관련된 국내외 한문 서적을 모으고 완독했다. 항아리 수집은 이 땅에서 살았던 어머니들의 마음이 곧 장독대의 그것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는 필자에게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의 보이차를 따라주고 “보이차는 생잎으로 만드는 것이지, 익혀서 발효하는 것이 아니다”며 제조 과정을 설명했다. 

1. 찻잎을 그늘에 널어 말린다(시들리기 과정) 2. 솥에 덖는다(살청, 200도에서 20~30분) 3. 잘 비빈다(유념) 4. 멍석에 널어 햇볕에 말린다(모차·산차). 여기까지는 현지 농민들이 한다. 수집상들은 이것을 모아 고압 수증기로 축축하고 부드럽게 만든 다음, 베 보자기로 덮어 맷돌을 올려놓거나 사람이 올라가 골고루 밟아주고 햇볕에 말려 습기를 없앤 후 건조도가 88%에 이르면 댓잎으로 포장한다.

발효가 아닌 싱싱한 보이차를 마셔보니, 입안이 시원한 느낌이다. 중국에 갔다 온 사람들로부터 받아둔, 혹은 필자가 사가지고 와서 먹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발효 보이차의 색깔은 진한 흑색인데 진짜 보이차의 색감과 현격한 차이가 난다. 이 찻집의 보이차는 찻잎의 형태가 살아 있고, 빛깔이 부드러우며, 은은한 향기가 났다.

처음부터 돈 벌려고 찻집 창업하는 건 금물      

‘짝퉁이 활개 치게 내버려둬야 진짜 명품이 뜬다’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필자의 좁은 생각으로는 ‘진품을 갖고 있다손 쳐도 수도권에서 명품 장사가 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찻집과 박물관 운영비는 은행 이자 등을 포함해 한 달 1000만원 정도. 그는 지금까지 임차료와 (아내와 아들이 일을 하니) 인건비가 들어가지 않고 차와 관련되지 않은 비용을 쓰지 않는 것으로 버텨오고 있다며, 3년 내에 찻집 규모를 지금의 10분의 1 정도인 5평 이내로 줄여 예약 손님 위주로 운영하고, 손님이 주문한 보이차를 한 달 이내에 중국 현지에 가서 가져오는 시스템을 만들어 대출 원금을 갚아나갈 것이라고 했다.      

“찻집 창업이오? 처음부터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되지요. 그냥 노는 것처럼 즐겁게 해야 돼요. 재미를 붙이면 하는 일이 좋아지게 되고, 일이 좋아지면 에너지가 생겨서 하면 할수록 기운이 솟아나요. 그게 창업하기 전의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찻집을 하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있으면, 지금 하세요.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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