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 이제 저희가 주인공입니다
  • 조용신│뮤지컬 평론가 ()
  • 승인 2015.06.0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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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중심으로 한 ‘백설공주’ 창작 뮤지컬 인기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화 중에는 공주가 나오는 이야기가 많다. 동화 속 착한 공주들은 특유의 모험심과 자애심으로 세상을 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나쁜 사람들의 모략으로 잠시 위기에 처하지만, 그때마다 나타나는 백마 탄 왕자로부터 구원을 받게 된다. 급기야 그 왕자들과 사랑에 빠져 ‘행복하게’ 산다는 해피엔딩 스토리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착한 대표 공주를 뽑는다면 아마도 백설공주일 것이다. <백설공주>는 16세기 독일의 귀족 여성 마르가레테 폰 발데크(1533~1554년)를 모델로 신화적인 이야기가 덧붙여져 만들어진 설화다. 마르가레테는 계모와 함께 탄광촌에 살았던 아름다운 처녀였다. 16세가 되던 해 브뤼셀에 가게 됐다. 뛰어난 미모로 인해 남자 귀족들뿐 아니라 국왕 펠리페 2세로부터 청혼을 받았지만 갑자기 독살됐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졌다. 그녀의 나이 불과 21세였다. 마르가레테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그녀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긴 대중들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설로 재탄생하게 됐다. 공주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잠에 빠졌다가 백마 탄 왕자에 의해 깨어나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이다. 독일의 그림 형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이름을 말해주는 ‘거울’을 추가로 이야기에 설정했다.

의 한 장면.
탄광촌 살던 처녀가 백설공주로 재탄생

친어머니가 사망한 백설공주는 계모에게 구박받다가 여러 차례 죽을 위기를 넘긴다. 산속으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난쟁이들을 만나 함께 생활하게 된다. 마술 거울을 통해 그녀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된 계모가 자객을 보내 여러 번 살해하려 한다는 플롯으로 재탄생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됐다.

아름다움의 화신인 백설공주는 동화의 대표 캐릭터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영화·연극·무용 등을 통해 아름다움 자체를 권력으로 본 새엄마 캐릭터의 이면을 찾는 패러디 작품도 많이 나왔다. 최근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에서도 백설공주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무대에 많이 오르고 있다. 특이한 것은 백설공주를 타이틀 롤로 설정하지 않고 주변 인물인 난쟁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잘생긴 왕자와 아름다운 공주를 제치고 무대를 장악하게 된 이 호빗 같은 난쟁이들의 매력은 무엇일까.

연극과 뮤지컬로 공연된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에서 막내 난쟁이이자 주인공인 반달이는 백설공주를 사랑하는 자신을 철저하게 지우고 그녀를 위해 헌신하는 캐릭터다. 반달이는 독 묻은 사과를 먹고 영원한 잠에 빠진 백설공주를 키스로 깨울 왕자를 직접 찾아 나선다. 자신이 아닌 왕자님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백설공주의 행복을 위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헌신한다.

의 한 장면.
희생의 아이콘인 난쟁이 캐릭터를 강화시키기 위해 배우들을 청소년 느낌이 나는 사람들로 구성했다. 특히 남자 배우가 아닌 여자 배우가 연기하게 함으로써 남녀 간의 안타까운 로맨스보다는 조건 없이 희생하는 난쟁이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즉, 이 작품은 백설공주의 세세한 성장 스토리나 권선징악의 교훈보다는 공주를 향한 난쟁이의 배려와 희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왕자와 공주, 계모가 아닌 난쟁이들을 작품 전체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스토리텔링이다. 이 작품은 2001년 5월 연극으로 초연돼 2014년까지 3000여 회 공연에 85만 관객이 관람한 스테디셀러로, 음악이 강화된 뮤지컬 버전으로도 선보이고 있다.

올해 초에는 아예 난쟁이들만을 제목으로 한 코믹한 창작 뮤지컬이 초연돼 큰 인기를 얻었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난쟁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시대적인 배경을 인어공주, 신데렐라, 이웃나라 왕자 등 동화 주인공들이 공존하는 세계로 잡았다. 여기서 주인공 난쟁이 찰리는 더 이상 타인을 위해 헌신하며 살려고 하지 않는다. 스스로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자 모험을 떠나고, ‘돈을 써서’ 눈앞의 어려움을 타개해가는 현실 풍자적이고 실리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파티에서 이웃나라 왕자를 만나 팔자를 고치려는 백설공주는 이름에서부터 성적인 은유가 충만하지만 백설공주에 대한 짝사랑을 키워 온 할아버지 난쟁이 ‘빅’과 오랜만에 뜨거운 재회를 하고 격렬한 섹스를 한다. 동화에서는 순수한 동반자였던 둘의 사랑이 뒤늦게야 ‘마음’뿐 아니라 ‘몸’을 통해서 결실을 맺는다는 내용이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한바탕 유쾌함을 선사한다.

의 한 장면.
난쟁이 내세운 창작 뮤지컬 잇달아 선보여

이 작품은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익숙한 고전 동화가 아니다. 동시대 관객이 웃을 수 있게 서구 B급 코드로 무장한, 작고 강한 뮤지컬 코미디다. 특히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의 경우 비장미는 있지만 위트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이 작품은 기존 뮤지컬에서 놓쳤던 웃음의 미학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창작 뮤지컬의 다양화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14년 제3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 앙코르 최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돼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그런가 하면 서울시뮤지컬단에서는 ‘백설공주’를 새롭게 각색한 순수 창작 가족 뮤지컬 <마법에 걸린 일곱 난쟁이>를 선보였다. 앞선 두 작품은 백설공주보다 난쟁이들에 더 큰 비중을 뒀다. 이번 작품은 두 가지 모두에 비슷한 비중을 두고 있다. 백설공주의 타고난 미모를 질투해 계모가 되는 마녀가 독이 든 사과로 그녀를 혼수상태에 빠뜨리게 된다. 영원히 잠든 줄 알았던 백설공주는 이웃나라 왕자에 의해 다시 살아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원작의 뼈대는 백설공주를 중심으로 충실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여기에 난쟁이들을 새로운 전사로 추가했다. 그들은 사실 백설공주의 아버지인 왕의 호위 병사들로 7인의 수호기사로 불렸지만 마녀 젤리의 저주에 걸려 기억을 잃고 시골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이다. 따라서 길을 잃은 백설공주를 이들이 따스하게 받아주는 원작에서 왜 그토록 난쟁이들이 ‘헌신 DNA’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나름의 근거를 마련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서울시뮤지컬단에서 직접 제작한 공연으로 볼거리도 풍성하게 갖추었다.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리드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매 장면마다 배치돼 풍성한 사운드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뮤지컬이다. 특히 일곱 난쟁이가 무대에 한꺼번에 등장하는 장면이 관객의 큰 호응을 얻는다. 저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를 가진 난쟁이들이 모여서 익살스러운 수다를 떨고 일터에 나가는 모습이나 저주에 걸려 얼음 동상으로 변한 왕자를 탈취해오면서 들려주는 재미난 비트의 합창곡이 난쟁이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뒷받침한다. 난쟁이들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백설공주 심장에 따뜻한 마음을 모아 생명을 불어넣는 장면은 ‘양심’이라는 교육적인 효과도 준다.

이 작품에서 난쟁이들은 일견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김리를 연상케 한다. 무거운 도끼 한 자루를 짊어지고 당당하게 반지 원정대에 합류하는 선하고 우직한 모습이 일곱 난쟁이와 비슷하다. 프리퀄 격인 ‘호비트’에서는 그 난쟁이보다도 작은 종족인 ‘반만 자란 호비트’도 등장한다. 다정하지만 호기심이 왕성한 빌보가 난쟁이들과 함께 잃어버린 금을 찾아 용을 퇴치하러 떠나는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 난쟁이들의 모험과도 정서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

백설공주 대신 난쟁이 주인공 내세운 까닭

마르가레테가 살았던 16세기 독일의 탄광촌에서는 난쟁이처럼 작은 어린이들이 갱도에 들어가 일을 하는 아동 노동착취가 광범위하게 벌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비극적인 요소도 동화 속에서는 쉽게 미화되곤 하는데, 동화 속에서 난쟁이들은 신성한 노동을 수행하고 만물을 포용하며 백설공주에게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준다. 이러한 ‘작은’ 난쟁이들의 모습은 무대 위에서도 특별한 비주얼 방식으로 표현돼야 한다. <마법에 걸린 일곱 난쟁이>에서 난쟁이들의 역할을 맡은 성인 남자 배우들은 시종일관 오리걸음으로 난쟁이를 연기한다. 재미있는 점은 <난쟁이들>의 배우들은 무릎으로 걷는 방식으로 난쟁이들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에서는 백설공주가 키높이 구두를 신고 등장한다. 세 방식 모두 난쟁이들과 백설공주의 키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인데 그 방법이 다르게 표현돼 비교해보는 재미도 선사한다.

동화나 신화를 재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할리우드에서 주로 백설공주의 계모를 재조명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주변인 중에서도 가장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난쟁이에게 유독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마도 대다수 한국인이 난쟁이들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 평범하지만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 사회는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지 않고 있다. 그것이 마음이든 금전이든 섹스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난쟁이들에게 보상을 해주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포함돼 있다는 평가를 낳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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