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국회’ 전쟁 뇌관은 유승민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6.2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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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안 정국 김무성 ‘발 빼기’···홀로 박 대통령과 맞서

6월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으로 ‘어버이연합회’ 등 보수단체 회원 100여 명이 몰려와 시위를 벌였다. 평소 정부·여당에 우호적이고 야당에 비판적인 보수단체들이었지만, 이날의 공격 대상은 여당의 원내 사령탑인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이들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야권의 꼼수를 읽지 못하고 국회법 개정안을 그대로 받아줬다”며 “야당의 ‘볼모 정치’에 한없이 이끌려 다니는 유 원내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손에는 ‘유승민 OUT’이라고 적힌 알림판이 쥐어져 있었다.

취임 4개월을 넘긴 유 원내대표는 지금 ‘당·청 갈등’과 ‘국회 와 청와대 충돌’ 정국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의 상대는 최고 권력자인 박근혜 대통령이다.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파상 공격을 퍼붓는 청와대와 친박(親朴)계의 노골적인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거부권 정국’이라는 거센 파도가 ‘정치인 유승민’을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유 원내대표가 지금 기댈 곳은 없다. ‘비박(非朴) 지도부’ 투톱 체제의 한 축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거부권 정국에서 발을 빼는 형국이다. 유 원내대표와 김 대표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게 국회법 개정안 파동으로 확인되고 있다.   

6월18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유승민 원내대표(맨 왼쪽)가 발언을 하는 사이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김 대표, 청와대 편 들어주며 돌연 입장 선회

정부의 시행령 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 시한이 6월30일로 다가오면서 국회가 술렁이고 있다. 6월19일 현재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이야기가 청와대 내부에서 나오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청와대의 강경한 입장이 ‘메르스 확산’ 파문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실제 거부권 행사라는 초유의 사태가 점차 현실화되면서, 권력에 민감한 여당 내부는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 논란 초기 때의 기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 기폭제가 된 것이 바로 김무성 대표의 돌연한 입장 선회다. 김 대표는 6월18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다수의 헌법학자들이 국회법에 위헌성이 있다고 얘기를 해서 난감한 상황”이라며 “대통령 입장에선 (법에) 위헌성이 분명한데 결재를 할 수도 없는 입장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듯한 그의 발언은 국회법 개정안 논란 초기 때 입장과는 180도 바뀐 것이다. 김 대표는 6월3일 당 공식 회의석상에서 청와대가 문제 삼는 국회법 개정안의 강제성 여부에 대해 ‘강제성이 없다’는 근거를 조목조목 거론하면서 “위헌성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거론한 김 대표의 발언은 사실과 배치되는 부분도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6월8일부터 15일까지 공법학자 46명을 대상으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82.6%가 “위헌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법학계 내부에서도 찬반 양론이 갈리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위헌성이 없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김 대표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리얼미터가 6월17~18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이 47.7%로 ‘반대한다’(26.4%)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이 44.8%로 ‘바람직하다’(33.4%)보다 11.4%포인트 높았다. 

정치권 일각에는 김 대표가 거부권 정국으로 인한 당내 유혈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책을 내놓은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국회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을 존중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논란도 일단락 짓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거론하면서도 “국회법 개정안 문제는 모두가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 서로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무성-유승민, 전략적 연대 균열 보여

하지만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가 현실화하면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해석도 나온다. 김무성 대표가 자신의 정치 행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걸림돌을 사전에 제거하는 한편, 이후 정치 행보에 탄력을 더하기 위해 청와대의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과 한 배를 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유 원내대표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도 더 남은 상황에서 몸조심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회법 개정안 논란은 의회권력과 행정권력 간의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당권을 두고 벌이는 친박계와 비박계의 진영 싸움이 당·청 갈등의 발현을 부추겼다면, 국회법 개정안 논란은 입법권과 행정권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급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정의화 국회의장과 유 원내대표, 반대편에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있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당 대표 취임 이후 당·청 갈등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결정적 순간에 청와대에 몸을 낮추는 태도를 보여왔다. 계파 중도 성향의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의 김 대표에 대한 평가다. “김 대표는 스승인 YS(김영삼 전 대통령)로부터 옛날식 정치를 배운 사람이다. 그만큼 노련하다. 힘의 역학 관계에서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바라는 바를 위해 몸을 낮출 수도 있다. 김 대표에게 국회법 개정안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소모적인 논쟁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언행으로 청와대와 빈번히 갈등을 빚는 유 원내대표가 부담스러운 면도 있을 것이다.”

당초 김 대표는 청와대가 주문한 공무원연금 개혁안 등 주요 개혁 과제를 6월 전에 마무리하고, 내년 4월에 실시될 총선에 대비하는 데 ‘올인’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김 대표는 친박계와의 갈등이 정점에 이를 총선을 자신의 진정한 싸움터로 여기고 있다. 그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을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수장으로 내정했다가, 친박계의 거센 반발에 무릎을 꿇은 전례가 있다. 향후 실질적인 총선 체제를 이끌 사무총장 인선을 앞두고 있는 김 대표로서는 당·청 갈등이 깊어질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들 수밖에 없다는 상황 판단을 했을 개연성이 크다.

김무성 대표가 어떤 계산법에서든 청와대 편에 서는 태도를 보이면서 유승민 원내대표와의 전략적 유대 관계에도 일정 정도 균열이 드러났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는 김 대표에 대적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유 원내대표의 당내 지지 기반은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쇄신·소장 그룹이다. 김 대표가 유 원내대표의 소신과 정면 배치되는 친(親)재벌 성향의 김종석 홍익대 교수를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임명하자 경실모를 중심으로 한 쇄신·소장 그룹 일부가 반발하고 나섰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실제 김 대표의 입장 선회를 전후로 친박계 의원뿐만 아니라 이재오·김성태 의원 등 비박계 진영 내부에서조차 국회 재의결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도 당내 역학 구도에서 김 대표와 맞설 수 없는 유 원내대표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서 언급한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로서도 국회법 개정안 논란을 겪으면서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라며 “그동안 김 대표가 바람막이 역할을 했는데 그게 없어지면 당내 입지가 급격히 좁아든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6월1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정의화 국회의장과 야당 “재의결” 입장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를 늦추거나 아예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메르스 정국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무시하기 힘들 것이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동안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는 점에서 거부권 행사 입장을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반론이 우세하다.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하더라도 새누리당이 당장 재의결로 맞서기보다는 가을 국회로 미루는 식의 출구 전략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재의결을 위해서는 과반수 이상 출석이 있어야 하는데, 여당이 출석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휴전(休戰)일 뿐 종전(終戰)은 아니다. 

뇌관의 버튼은 재의결 가능 정족수의 키를 쥔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있는 셈이다. 국회법 개정안 논란 초기만 하더라도 유 원내대표 측근 그룹에서는 청와대와 친박계의 노골적인 퇴진 압력에 맞서 저항하다가 장렬히 전사하자는 강경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 원내대표가 일정 정도 상처를 입더라도 실익이 없는 전면전보다는 전략적인 후퇴가 필요하다는 온건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원내대표가 재의결에 나서지 않을 경우 야당의 반발이 불을 보듯 빤한 상황이라 이래저래 생채기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소신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깨지면서 자칫 정치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의 거부권 시한이 다가오면서 유승민 원내대표는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의회권력의 또 다른 한 축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6월18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여야 합의가 안 되면 헌법에 정해진 원칙대로 재의결에 부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자칫 국회의장과 야당 원내대표 사이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혼자만 길을 잃고 헤매는 우스운 꼴이 연출될 수도 있다. 유 원내대표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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