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오바마 타이완 총통 선거 힘겨루기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5.07.0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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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민진당 후보 극진 대접…베이징은 국민당 지원 나서

#1. 지난 5월30일 오전(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한 타이완 여성 정치인이 도착했다. 그는 중화권 및 미국의 취재진 수십 명과 100여 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방미(訪美) 일성으로 “우리 당은 3년 전 총통 선거 때보다 충분히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저녁 그는 타이완 교민회가 주최한 만찬에서 에드 로이스(공화당) 미 하원 외교위원장을 만나 타이완과 미국 관계, 타이완과 중국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며칠 뒤 워싱턴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및 국무부 청사를 방문해 미국 정·관계 최고위급 인사들을 만났다.

#2. 6월 마지막 주에 발간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은 그를 집중 조명했다. 놀랍게도 메인 기사 제목은 ‘그가 중화권에서 유일한 민주국가를 이끌게 될 수 있다’였다. 인터뷰 기사 제목은 한 술 더 떠서 ‘차기 총통이 자신을 말하다’로 달렸다. 이렇듯 미국 정부와 정계, 언론이 타이완의 차기 총통 1순위로 극진히 대접한 이는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주석이다.

4월15일 타이완 제1야당 민진당의 차이잉원 주석(당 대표)이 타이베이에서 내년 총통 선거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밝힌 후 손을 흔들고 있다. ⓒ AP연합

차이잉원, 과격한 민진당 이미지 희석시켜

차이 주석은 민진당과 어울리지 않는 출신 성분과 경력을 지녔다. 그는 1956년 타이완 남부 핑둥(屛東) 현의 한 객가(客家)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부호인 아버지를 둔 덕택에 타이완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과 영국으로 유학 가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귀국해 불과 28세의 나이에 타이완정치대학 법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당시 같은 학교에는 지금의 마잉주(馬英九) 타이완 총통도 교수로 근무하고 있었다. 마 총통과는 같은 대학과 학과의 선후배 관계다. 차이 주석은 비주류 정치인, 인권변호사, 사회운동가 등이 주축이었던 민진당의 과거 지도부와 전혀 다른 타이완 주류 출신의 엘리트다. 차이 주석을 정계로 입문시킨 이도 국민당 주석이었던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다. 리 전 총통은 차이 주석을 1992년 경제부 고문, 1994년 대륙위원회 자문위원, 1995년 공평거래위원회 위원, 1999년 국가안전회의 자문위원 등에 임명했다.

2000년 타이완 역사상 처음 정권 교체가 이뤄져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집권하자, 차이 주석은 민진당에 입당했다. 대륙위원회 주임을 시작으로 2005년 입법원(국회) 위원, 2006년 행정원 부원장(부총리) 등 고위직을 거쳤다. 2008년 민진당이 총통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지지멸렬하던 당을 차이 주석이 되살려냈다. 2011년 말까지 치러진 9차례 선거 중 7번을 승리했다. 무엇보다 부정부패와 거리가 먼 청렴한 이미지, 솔직담백한 처신 등으로 국민들의 호감을 샀다. 또한 부유한 집안과 미혼이라는 배경은 민진당의 과격한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이런 정치적 자산을 등에 업고 차이 주석은 2012년 1월 총통 선거에서 마잉주 총통과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결과는 과반수를 간신히 넘는 51.6%의 득표율을 얻은 마 총통의 재집권 성공이었다.

이때만 해도 중화권 언론은 차이 주석의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으로 여겼다. 실제 차이 주석은 대선 패배 후 민진당 내 모든 직책을 내놓고 정계를 떠났다. 그러나 이후 민진당이 마 총통의 실정(失政)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부 분란만 일으키자, 지난해 초 컴백했다. 곧이어 5월에 치러진 당 주석 선거에서 쟁쟁한 남성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선됐다. 11월에 열린 지방선거에서는 시·현급 단체장 22석 중 13석(기존 6석)을 휩쓰는 대승을 거뒀다. 특히 전통적인 국민당 표밭인 타이베이(臺北)·타이중(臺中)·타오위안(桃園) 등 중·북부의 단체장 자리를 빼앗아오거나 친(親)민진당 무소속 후보로 앉혔다. 이런 성과를 발판으로 지난 4월 당내 경선에 단독 출마해 내년 1월에 열릴 제14대 총통 선거의 민진당 후보로 추대됐다.

민진당과 달리 현재 국민당이 처한 상황은 미묘하다. 마잉주 총통은 재선 이래 줄곧 낮은 지지율로 어려움을 겪었다. 2010년 중국과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발효해 양안(兩岸·중국과 타이완) 경제를 일체화한 ‘차이완(Chiwan)’ 시대를 열었지만 후속 협정인 서비스 무역과 상품 무역 협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극렬한 저항에 부닥쳤다. 지난해 3월에는 학생운동단체가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에 반대하면서 입법원 본회의장을 점거해 농성하는 초유의 사태마저 벌어졌다. 또한 같은 당의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과 크고 작은 마찰을 일으키면서 지지율이 한때 9%까지 떨어졌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국민당 잠룡들의 지지율이 차이 주석에게 크게 뒤처졌다. 이 때문에 기대를 모았던 왕 입법원장, 우둔이(吳敦義) 부총통 등이 잇달아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5월16일에는 주리룬(朱立倫) 국민당 주석마저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6월14일 훙슈주(洪秀柱·여·67) 입법원 부원장이 단독으로 당내 경선 후보 자격을 얻었다. 현재 경쟁자가 따로 없기에 오는 7월19일에 열릴 국민당 전당대회에서 총통 선거 후보로 확정될 예정이다.

5월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주리룬 타이완 국민당 주석이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 Xinhua연합

시진핑, 차이잉원 승리는 최악의 결과

이런 상황에 충격을 받은 나라는 다름 아닌 중국이다. 중국은 국민당 주 주석이 총통 선거에 나갈 것으로 기대했다. 5월 초 방중한 주 주석을 국가원수급으로 예우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검정 양복에 파란색 넥타이까지 매고 주 주석과 회담했다. 파란색은 국민당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국공(國共) 수뇌는 중국이 양안 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내건 ‘92컨센서스(九二共識)’에 대해 의견 일치를 봤다. 92컨센서스는 1992년 홍콩에서 중국과 타이완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면서 국호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 사용하기로 한 합의를 가리킨다.

중국 입장에선 내년 대선에서 차이 주석이 승리하는 것은 최악의 결과다. 중국과 타이완은 천수이볜 전 총통 집권 시 일촉즉발의 군사적 충돌 위기를 겪었다. 민진당은 당론으로 92컨센서스를 인정하지 않고, 당내 주류 세력은 타이완 독립을 추구한다. 무엇보다 민진당의 열렬 지지층은 독립 성향이 강한 남부 주민들과 친중(親中) 정책에 반대하는 2030세대다.

그렇다고 차이 주석이 마냥 중국과 거리를 둘 수는 없다. 타이완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너무나 밀착되어 있다. 타이완을 찾는 외국 관광객의 절반도 중국인이다. 이 때문에 양안 관계의 악화를 우려하는 민심이 요동치며 차이 주석과 훙 부원장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 6월9일 여론조사에선 차이 주석이 40.7%를 얻어 훙 부원장(30.5%)을 앞섰으나, 17일에는 훙 부원장이 41%를 얻어 차이 주석(38%)에 역전했다. 여기에 중국이 나서서 국민당을 노골적으로 돕고 있다. 이달부터 타이완인의 중국 방문 비자를 면제해주고,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타이완이 가입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 신호를 보내는 등 선물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예상과는 달리 내년 타이완 총통 선거에서는 국민당과 민진당 간에 피 말리는 초접전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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