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5.07.1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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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희고 날렵한 손가락으로 배를 몇 번 두드려 보고는 알 수 없는 영어를 처방전에 쓱쓱 써내려가는 모습이 상상된다. 과연 의사의 업무 환경과 생활 패턴은 상상만큼 멋지고 안락한가? 수많은 TV 드라마에서 신물 나게 그려낸 수련기 의사들의 혹독한 생활 모습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박봉에다 비정규직이다.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로 이어지는 긴긴 수련 기간을 마치면 30대 중후반을 훌쩍 넘긴다.’ 우리나라 1호 여성 정형외과학 교수인 김현정 전문의는 자신의 저서 <의사는 사라질 직업인가>에서 의사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그의 표현처럼 주변에서 보는 의사들의 실제 모습은 우리가 막연히 알던 것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이 없어 밥도 제대로 먹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하거나, 심지어 환자들에게는 음주를 자제하라고 권하면서 스스로는 술도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겠느냐며 두주를 불사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기에 생과 사가 밤낮없이 엇갈리는 현장을 지켜야 하는 현실을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힘들게 하는 대형 사건·사고들은 대부분 두 개의 큰 키워드로 기억 속에 남겨집니다. ‘잘못’과 ‘헌신’이 그것입니다. 그런 결과를 불러온 누군가의 잘못이 있는 반면, 그것을 대신 메워주고 갈무리하는 누군가의 희생도 있습니다.

지금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메르스 사태의 이면에도 그 두 개의 키워드가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불안을 키운 정부의 ‘잘못’과 그 잘못이 일어난 자리에서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으로 불철주야 움직였던 사람들의 ‘헌신’이 그것입니다. 일을 저지른 장본인은 따로 있는데 단지 의료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뒷일을 책임져야 했던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메르스 전파자로 공공연히 낙인까지 찍힌 악조건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을 내던지지 않았습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묵묵히 할 일을 해냈습니다. 자신들의 소중한 자식들이 유치원에서 혹은 학교에서 메르스를 옮길지 모른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책무를 마다하지 않고 온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도 한 병원장은 대통령에게 불려가 고개를 숙여야 했고, 대통령도 하지 않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결국 책임과 사과마저 모두 그들의 몫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전체 확진 환자 중 의사·간호사·간병인 등 병원 관련 종사자는 모두 36명이라고 합니다. 이 수치는 그들이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었고, 얼마나 큰 두려움과 맞닥뜨렸을지를 있는 그대로 알려줍니다. 그들의 희생을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그런 그들에게 우리가 박수를 보낼 차례입니다. 고마움의 인사를 전할 시간입니다. 고맙습니다. 대통령은 여전히 높은 곳에 계시고, 문만 열렸다 하면 ‘봉숭아 학당’을 만들어버리는 정치는 쉴 새 없이 막장으로 치닫고, 삶은 늘 팍팍하기만 한 이 땅에 그래도 여러분이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의 희망이 되어주었습니다. 여러분의 헌신과 열정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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