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유승민
  • 김태일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5.07.1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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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유승민은 빛났고, 대통령 박근혜는 초라해졌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둘러싼 소용돌이의 최종 성적표다. 그런데 유승민이 알아야 할 일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한때 빛났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라. 정치인 박근혜는 지금의 유승민 이상으로 원칙과 소신의 지도자였다. 국회의원 박근혜는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세종시특별법 수정안을 반대하는 데 정치적 생명을 걸고 나섰다. 현직 대통령에게 집권당 국회의원이 맞선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이 싸움으로 박근혜는 빛났고, 이명박은 초라해졌다. 박근혜는 이때부터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으로 각인되었다.

유승민이 주장하는 따뜻한 보수의 비전 역시 대통령 후보 박근혜가 이미 내걸었던 기치였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강화 공약은 대통령 후보 박근혜의 지지 기반을 확대시켜준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것은 냉전과 분단, 경쟁과 성장에 매달렸던 기존 보수와 다른 새로운 보수의 면모를 보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 박근혜의 모습은 어떤가. 원칙과 소신은 독선과 불통으로 변했다.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박 대통령의 인사, 정부조직 개편, 야당에 대한 정책, 당·정·청 협력, 대언론 관계, 국민에 대한 태도 등에서 소통장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죽하면 박 대통령은 공주라는 별명을 얻고 있겠는가. 따뜻한 보수라는 깃발도 빛바랜 지 오래다. 경제민주화의 수레바퀴는 거꾸로 돌아가고, 복지 공약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 이로 인해 정치적 대결과 분열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유승민의 정치적 존재감은 박근혜 정부의 이런 빈 공간 탓에 더욱 크게 보였다. 문제는 앞으로다. 유승민이 박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까라는 염려가 있다. 지금 유승민이 박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지만, 유승민 역시 한때 빛났던 박 대통령과 마찬가지일지 모른다는 불신이 있다.

유승민이 원내대표 출사표에서, 국회 연설에서, 그리고 원내대표 사퇴의 변에서 밝힌 새로운 보수의 길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특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말은 울림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유승민 원내대표를 공격하면서 ‘배신의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 지금 우리의 정치를 왕조 시대의 군신적 주종 관계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유승민은 그것에 대응해 이 시대가 ‘공화정’의 시대임을 천명했다. 유승민은 빛났고 박근혜는 초라해졌다.

이번 국면에서 유승민은 새로운 보수의 지평을 여는 정치 지도자로서 통찰력과 담대함, 그리고 설명 능력에서 상당한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가 그것에 덧붙여 조직적, 집단적 실천을 위한 정치적 힘까지 만들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유승민은 ‘한때 빛났으나 지금은 빛이 바랜’ 박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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