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사태와 빚
  •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 승인 2015.07.22 15: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월 5일 그리스는 국제 채권단이 제시했던 채무 조정안을 국민투표를 통해 부결시켰다. 이 투표 결과를 본 우리 국민 중 상당수는 마음이 착잡했다. 약 18년 전 우리 역시 외환위기를 맞아 비슷한 의사결정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IMF(국제통화기금)가 제시한 구조조정 정책을 찍소리 않고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제2의 국채 보상 운동’을 한다면서 금 모으기 운동을 했다. 필자의 집에 있던 몇 개의 돌반지도 그렇게 사라졌다. 이것이 오히려 금 투기만 조장할 수도 있다는 경제학자로서의 항변은 “선생님이 금 모으기 운동에 적극 동참하라고 했다”는 아이의 눈 부라림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때 금반지를 학교에 가지고 갔던 아이들은 지금 20대 중·후반의 청춘이 됐다. 그들은 그리스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들은 그때 금 모으기를 하라고 했던 ‘꼰대’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때 우리는 빚은 꼭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생각만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개념도 없다. 왜냐하면 채무자로서는 만기일에 빚을 갚지 않는 것이 빚을 갚는 것보다 기본적으로 더 좋기 때문이다. 이것은 큰 문제다. 그래서 사회는 ‘빚을 떼어먹는’ 사람을 처벌하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발명했다. 채무자를 잡아넣거나(혹은 채무자의 가족을 잡아넣거나), 신체 일부를 절단하거나, 심지어 노예로 팔았다. 지금도 우리는 파산자에게 신용불량자의 낙인을 찍어 그들을 처벌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빚을 떼어먹을 수 있다는 점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부도 소식을 접하고 크게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 채권자들이다. 그들은 부도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은행은 채무자의 부도 확률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대출 금리를 차등화한다. 즉 놀라는 표정을 하고 있는 그들은 사실상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채무자들이 높은 대출 금리를 통해 일종의 부도 보험료를 납부했음에도 정작 부도가 나면 채무자를 도울 생각은 하지 않고 ‘도덕적 해이’ 운운하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에 물든 것은 어쩌면 금융기관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은 1000조원 넘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않을 수 없도록 관련 제도를 더욱 채무자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는 부채 문제의 중요한

 

부분을 해결할 수 없다. 북풍이 나그네의 옷을 햇볕보다 더 잘 벗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채 문제 해결의 본질은 ‘사람들이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빚을 못 갚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그리스 사태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다만 그리스는 운이 없었다. 자국 중앙은행을 보유하고 있었더라면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었을 텐데, 중앙은행이 없으니 맘대로 돈을 찍어낼 수 없고 그렇다 보니 은행 부도를 막을 수 없었다. 그리스가 엄청난 긴축안을 제시한 것은 어쩌면 이런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