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취소됐는데 카드 수수료 ‘꿀꺽’
  • 유재철 시사비즈 경제팀 기자 (yjc@sisabiz.com)
  • 승인 2015.08.05 18:04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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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 환급돼도 못 돌려받아…지방세는 카드 수수료 아예 없어

조선 중기 상인이 백성을 대신해 나라에 공물(세금)을 대납하는 방납(防納) 제도가 성행했다. 상인은 막대한 이자를 붙여 그 대가를 받아냈다. 폐단이 끊이지 않았다. 많은 백성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 상인은 더 많은 돈을 편취하려고 악덕 관원과 결탁하기도 했다. 21세기에도 방납 같은 제도는 존재한다.

신용카드사는 가만히 앉아 수수료 챙겨

국세청은 2008년부터 세금을 신용카드로도 내게 했다. 납세자는 카드사에 납부 금액의 1%를 수수료로 물어야 한다. 카드사는 이 거래에서 어떠한 위험도 떠안지 않는다. 일반 상거래와 달리 가맹점으로부터 돈을 떼일 염려가 전혀 없는 것이다. 신용카드 대납제가 도입된 2008년 이래 카드사들은 6년간 수수료 명목으로 783억원을 벌었다. 모두 납세자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 honeypapa@naver.com

서울 강남구에 사는 김 아무개씨는 지난해 아파트 한 채를 처분했다. 관할 세무서에 양도소득세 2000만원을 신용카드로 납부했다. 김씨는 규정에 따라 카드 수수료 20만원을 함께 냈다. 얼마 후 김씨는 세무사로부터 내지 않았어도 될 세금이란 말을 들었다. 김씨는 조세심판원에 세금을 취소해달라고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결국 김씨는 비과세 요건이 인정돼 납부했던 세금 2000만원을 전액 돌려받았다. 하지만 카드 수수료 20만원은 포기해야 했다.

국세청이 세금을 잘못 부과했다면 납부한 금액을 돌려받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국세청 관계자는 “신용카드로 세금을 납부했다면 카드 수수료는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납세자는 신용카드로 세금을 납부하면 납부 금액의 1%, 체크카드는 0.7%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신용카드 납부 취소나 환급 시 카드 수수료 반환 규정이 없어 납세자와 국세청·카드사 간에 분쟁이 잦다.

신용카드 납부액은 2008년 도입 이래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신용카드로 납부한 국세는 2008년 407억원에서 2013년 2조6225억원으로 늘었다. 5년 새 63배나 불어났다. 이 기간 신용카드 납부 건수는 4만7000건에서 152만1000건으로 증가했다. 국세 수납액에서 신용카드 납부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0.03%에서 1.16%까지 커졌다. 카드 납부가 증가한 만큼  납세자가 부담하는 결제 수수료 금액도 늘어났다. 국세청이 지난해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납세자가 부담한 카드 수수료는 지난 6년간 총 783억원에 달했다.

 도입 당시 국세청은 신용카드 납부 한도를 1000만원으로 제한했다. 올해 초 납부 한도가 폐지됐다. 이로 인해 올해 카드 수수료는 이전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카드사는 국가를 상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큰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은 현금 일시납이 어려운 납세자를 위해 신용카드 납부제를 도입했다. 납세자는 수수료 부담이 있지만 편리하게 세금을 낼 수 있고, 국세청은 제때 세수를 확보할 수 있어 양측 다 유용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씨처럼 불복(이의신청·심판청구 등)으로 세금이 취소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수수료는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세금을 잘못 매겨서 생긴 일인데 납세자가 엉뚱하게 피해를 보는 것이다.

관련 업계 변호사는 “내지 않았어야 할 수수료를 낸 것이니 돌려받는 게 당연하다”며 “지금 상황에서 카드 수수료를 돌려받는 유일한 방법은 소송뿐인데 이마저도 소송가액이 적어 실효성이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세 카드 납부 수수료 없애야”

서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씨는 “일반 상거래에서 고객이 카드로 결제한 금액을 취소하면 수수료까지 같이 들어온다”며 “취소한 세금을 돌려받는데 수수료를 못 받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신용카드 결제를 강제한 것이 아니다”며 “현금 일시납과 함께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세금이 취소됐더라도 수수료까지 국가가 나서 돌려줘야 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세는 어떨까. 자동차세·재산세·취득세 등 지방세를 신용카드로 납부해도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납세자 입장에선 똑같은 세금인데 중앙정부에 낼 때와 지자체에 낼 때가 다른 셈이다. 지방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신용카드사와 계약을 맺고 수수료를 없앴다. 대신 신용카드로 납부하는 세액을 카드사들이 최장 40일까지 운용하도록 했다. 납세자들이 낸 세금을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의 재원으로 활용해 수익(신용공여 방식)을 내도록 한 것이다.

 과거 자치단체들은 신용카드사와 따로 계약을 맺고 카드 결제를 지원했다. 납세자가 부담하는 수수료율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2012년 행정자치부가 카드사와 단일 계약을 맺으면서 카드 수수료를 폐지했다. 행정자치부 지방세 관계자는 “행자부가 직접 나서 시중은행 22곳, 카드사 13개사와 계약을 맺고 카드 수수료를 없앴다”며 “현재 모든 지방세목에 대해 카드 수수료 면제가 적용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납부 수수료를 없애기 위해 지방세처럼 국세도 카드회사가 납세자가 낸 세금에 대해 ‘신용공여’ 방식으로 운용하도록 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국세에 대한 카드 수수료도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국세 카드 수수료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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