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앵커들, 권력자의 정부<情婦> 되다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5.08.05 18:07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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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CCTV, 잇단 섹스 스캔들로 ‘권부의 후궁’ 오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7월21일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제출한 처벌안을 통과시켜 링지화 전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장이 정식 체포돼 조사받고 있음을 공표했다. 이로써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에 도전한 것으로 알려진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시 당서기,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 ‘신4인방’에 대한 처벌이 일단락됐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링지화의 혐의에는 정치기율·정치규범·조직기율·비밀준수 위반, 거액의 뇌물 수수 등과 함께 간통 혐의가 추가됐다. “다수의 여성과 간통하고 권색거래(權色交易·권력과 섹스의 거래)를 했으며, 부부가 타인의 재물을 취득했고 부인은 경영 활동으로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이것은 다른 세 사람의 범죄 혐의에는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다. 400여 명의 여성과 간통해 중화권 언론 매체로부터 ‘백계왕(百鷄王·100명의 암탉을 거느린 왕)’이란 칭호를 얻었던 저우 전 상무위원도 범죄 혐의에서 간통은 제외됐었다.

ⓒ 일러스트 정찬동

링지화 부부, CCTV 남녀 앵커와 맞바람

이는 중국 공직사회에 권색거래가 숨기기 힘들 정도로 만연해 있다는 위기감을 방증한다. 7월23일 인민일보는 흥미로운 기사 한 편을 실었다. 사정·감찰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의 ‘수사 통지문’을 분석해 부패한 관료들이 얼마나 많이 간통했는지 알아봤다. 중앙기율위는 부정부패 혐의가 있는 고위 당·정 간부에 대한 조사 착수나 종료 사실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인민일보는 “중앙기율위가 당원의 간통 혐의를 공개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6월5일부터로, 조사됐던 부패 관리 45명 중 25명(55.6%)이 간통 혐의를 적용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중국 누리꾼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모든 부패 관료가 축첩(蓄妾)을 한다’는 세간의 추측을 부정하기 위해 사실보다 축소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 누리꾼은 “이런 추악한 결과에 대해 변호하는 것은 낯 두꺼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같은 날 중국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는 딸이 공직자인 아버지의 불륜을 제보하는 글이 떠돌아 주목받았다. 이 글을 올린 누리꾼은 허베이(河北)성 닝진(寧晋) 현 공안국 부당서기인 루샤오리(路小利)의 친딸이었다. 그녀는 “부친이 가족 장례식을 빌미로 뇌물을 수뢰했고, 1996년부터 내연녀와 간통을 저질러 2001년 아들까지 낳았다”며 관련 증거도 제시했다.

이런 ‘딸의 반란’은 7월21일에도 일어났다. 후난(湖南)성 화이화(懷化) 시 기율검사위 부순찰조장 텅수치(?樹旗)의 딸이 SNS에 “아버지가 오랫동안 방탕하게 살면서 정부(情婦)를 여러 명 뒀다. 다섯 살짜리 아들까지 낳았다”고 폭로한 것. 이 글이 공개되자, 중국 누리꾼들은 인육수색(人肉搜索·특정인의 신상정보를 검색해 인신공격을 하는 행위)을 벌여 텅수치의 비리 행각을 잇달아 폭로했다.

중국 공직자들의 축첩문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인민(人民)대학 국가발전전략연구원이 발간한 ‘국가 운영 현대화 원년’은 과거의 실상을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4년 3월 말까지 부패로 낙마한 국장급(廳局級) 고위 관리는 367명에 달했다. 이 중 47%인 172명이 정부를 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결과도 사법 당국의 수사를 통해 드러난 것만 추산했다는 점에서 더 많은 부패 관리가 축첩했으리라 추측된다. 중국공산당은 창당 초부터 고위급 당원들의 사생활에 대해 관대했다. 이에 따라 ‘아랫도리 일은 간섭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오랫동안 지켜졌다. 마오쩌둥(毛澤東)은 4명의 여성과 정식 결혼을 했고, 말년에 수많은 내연녀를 뒀다. 국방장관과 전인대(全人代) 위원장을 역임했던 예젠잉(葉劍英)은 무려 7명의 여성과 결혼했고 3명의 정부를 뒀다. 중국 법률에는 간통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고, 공산당 내규도 그 내용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사정 당국이 당원들의 간통 행위를 엄격히 처벌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이전에는 부패 관료의 범죄 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망신 주기’ 차원으로 간통 문제를 언론에 흘렸다.

이번에 간통 혐의로 처벌받는 링지화의 정부로는 CCTV 시사뉴스부 펑줘(馮卓) 부주임이 지목되고 있다. 펑 부주임은 1998년 CCTV에 입사한 후 불과 2년 만에 시정뉴스부로 자리를 옮겼다. 시정뉴스부는 CCTV 뉴스센터 시정국의 핵심 부서로, 최고 지도자들의 동태와 중대 외교 사안을 다룬다. 보통 4~5년간 시정국 기자로 일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현재 시정국에는 300명, 시정뉴스부에는 40~50명의 기자와 직원이 있다. 2008년 펑줘는 시정뉴스부 2인자로 고속 승진했다. 지난해 9월부터 펑 부주임은 행방불명 상태에 빠졌고, 그 후 그녀의 승진 가도가 링 부장의 후광 덕인 것으로 드러났다.

링지화의 부인 구리핑(谷麗萍)은 CCTV의 유명 남성 앵커였던 루이청강(芮成鋼)과 맞바람을 피웠다. 지난해 7월 간첩 혐의 등으로 체포된 루이는 심문 과정에서 화려했던 여성 편력을 자백하면서 구리핑과의 관계도 털어놓았다. 루이는 2009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구리핑을 처음 만난 후 구리핑의 강요로 불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주장했다. 구리핑 이외에도 여러 고위 관료의 부인과 내연 관계를 맺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중화권 매체는 루이를 ‘CCTV의 공공 정부(情夫)’로 이름 붙였다.

언론인의 책임과 사명감 망각

저우융캉의 편력은 더욱 화려하다. 밝혀진 정부 28명 중 예잉춘(葉迎春)·선빙(沈?) 등 CCTV의 유명 아나운서가 포함됐다. 특히 선빙은 1999년 대학을 졸업한 후 신문기자로 일하다 2001년 CCTV로 이직했는데, 이듬해부터 스포츠와 경제 채널 앵커를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아나운서팀을 이끈 뒤 TV에서 사라졌다가 2012년 8월 중앙정법위원회 정보센터 부주임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했다. 당시 중앙정법위 서기가 바로 저우융캉이었다. 저우융캉이 2001년 재혼한 자샤오예(賈曉燁)도 CCTV 경제 채널 기자였다.

이렇듯 CCTV 방송인들이 부패 관료 섹스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CCTV는 권부의 후궁(央視後宮)>이라는 책이 홍콩에서 출판돼 인기를 끌었다. 또한 언론인으로서 책임과 사명감은 망각한 채 권색거래로 입신양명만 추구하는 CCTV의 민낯이 중국인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각종 추문으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자, 지난 4월 공산당은 후잔판(胡占凡) CCTV 회장을 퇴임시키고 그 자리에 녜천시(?辰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부국장을 앉혔다. 녜천시 신임 회장은 권색거래의 부패 고리를 끊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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