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향군 전 회장 측에 11억 갖다 바쳤다”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5.08.10 12:51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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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 정 아무개씨, 박세환 전 향군 회장 상대 금품 제공 등 폭로…조남풍 현 회장 비리 의혹 이어 파문 일 듯

지난 4월 재향군인회(향군) 회장으로 선출된 조남풍 회장이 선거 과정에서 대의원을 매수하고 매관매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향군 임직원들이 조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조 회장이 연루된 비리 의혹 사건을 바라보는 향군 안팎에서는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향군 주변에서는 향군 고위층을 중심으로 검은 비리 커넥션이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향군이 수행하는 사업을 노리는업자들과 향군 고위층이 결탁된 부패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정씨 “박 전 회장에게 2억2천만원 직접 전달”

시사저널은 그동안 향군 비리 복마전의 실체를 탐사 취재하며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전임 향군 회장이던 박세환 전 회장 측이 부적절한 돈거래를 두고 분쟁을 빚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포착했다. 기자는 향군 전·현직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탐문을 벌였고 분쟁과 관련한 녹취록·계약서·각서 등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시사저널은 박 전 회장 측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컨설팅업체 V사의 실소유주인 사업가 정 아무개씨의 소재를 확인하고 추적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기자는 서울 서초동의 한 커피숍에서 정씨를 만났다. 하지만 정씨는 말문을 쉽게 열지 않았고, 1시간여 동안의 긴 설득 끝에 그는 자신과 박 전 회장 측의 관계를 털어놓았다. 정씨는 “향군 박 전 회장과 측근들이 2007년부터 사업 대가를 조건으로 내걸어 11억원에 달하는 돈을 가져가고도 이제는 나를 사기꾼으로 몰아가고 있다”면서 “나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협박을 받는 상황에서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전 회장 측은 "박 전 회장이 정씨로부터 돈을 일절 받은 적이 없으며 사실무근의 이야기"라면서 "금품 제공 주장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반박했다.

정씨의 주장에 따르면, 박 전 회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박 전 회장이 향군 수석(육군)부회장으로 일하던 2007년 7월 무렵이다. 당시 독일의 친환경 건축 자재 생산업체의 국내 독점 대리점을 운영하던 정씨는 박 전 회장의 지인 주선으로 만남을 가졌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비례대표 국회의원 출신인 박 전 회장은 당시 강남 수서동에서 사조직 ‘피플소리전국포럼’ 총재를 맡고 있었다. 정씨가 박 전 회장을 만난 곳도 포럼 사무실이었다고 한다. 정씨는 “박 전 회장에게 향군이 수행하고 있던 ‘향군회관(서울 송파구 잠실 소재) 신축 공사의 내·외장 하도급 공급 계약을 성시시켜달라’고 부탁했다”면서 “그러자 박 전 회장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사람’이라며 측근인 한 아무개씨(2011년 사망)를 동석시키고는 ‘향후 모든 재향군인회 관련 사업은 반드시 사전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정씨는 박 전 회장과 측근들로부터 박 전 회장을 지원할 수 있는 금품과 편의 제공 등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피플소리전국포럼 운영비와 활동비가 필요하다는 요청에 따라 같은 해 8~12월 박 전 회장 측에 현금 5000만원, 양복 티켓 1000만원 상당을 제공하고, 9인승 승합버스 1대를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2012년 5월24일 재향군인회 주최로 열린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국가안보’를 위한 향군 율곡포럼에서 당시 박세환 회장(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씨의 주장을 종합하면, 2007년 7월부터 2011년 4월까지 4년여 동안 박 전 회장의 사조직 운영비와 총선 출마를 위한 선거 경비, 향군회관 건설 사업 및 향군 관련 사업체 운영 경비 등 총 11억2500만원가량을 박 전 회장 측에 전달하거나 박 전 회장 측을 위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11억여 원 중 약 2억2000만원은 박 전 회장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게 정씨의 주장이다.

박 전 회장과의 긴밀한 관계는 2009년 9월 박 전 회장이 향군 회장으로 취임한 전후에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정씨는 박 전 회장으로부터 2009년 말 무렵 컨설팅 사업을 제안받았고, 기존 사업을 정리한 후 컨설팅업체인 V사를 설립했다. 앞선 2008년 말 그는 박 전 회장으로부터 신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산업용 식물성 천연세제 및 세척제 사업을 하기 위해, 서울 강동구 성내동 올림픽공원 인근에 257㎡(78평) 사무실을 임차했다.

하지만 순조롭게 보였던 세제 사업은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했다. 박 전 회장의 취임 후 향군은 수익 사업에 세제 사업을 추가하는 정관 개정을 하고, 2009년 12월 정씨가 임차한 올림픽공원 사무실에서 재향군인회 산하 녹색산업개발사업소를 설립했다. 설립 법인의 대표는 박 전 회장으로 등재됐다. 그런데 향군이 관리·감독 부처인 보훈처와 사전 협의도 없이 세제 사업을 수익 사업으로 추가한 것이 화근이었다. 보훈처가 상이군경회와 수익 사업이 중복된다는 이유로 정관 개정을 취소한 것이다. 정씨는 “세제 사업이 취소된 이후에도 박 전 회장 측이 시간을 끌면서 사무실도 폐쇄하지 않은 채 운영비만 지불해야 했다”면서 “박 전 회장 측에서 다른 사업들도 제안해보라고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박세환 전 향군 회장과 사업가 정씨의 분쟁 관련 자료.© 시사저널 이종현

박 전 회장 측 “사기꾼이 돈 뜯어내려는 주장”

하지만 정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박 전 회장 측은 정면으로 반박했다. 박 전 회장 재임 시절 향군에서 비서실장과 사업본부장 등을 지내고 정씨와 교류해왔던 예 아무개 전 본부장은 “정씨가 (주변인들과 짜고) 박 전 회장의 명성을 이용해 공갈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정씨가 전직 대통령의 친인척이라고 하면서 박 전 회장을 팔아서 돈을 챙기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씨가 사업을 해보겠다며 잠실 향군회관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했지만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불가능해 안 해준 것”이라면서 “정씨 측이 1인 시위를 벌여 박 전 회장의 명예를 훼손해 민사 소송을 제기했고 500만원의 배상금 결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소송은 정씨가 결과에 불복해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예 전 본부장은 ‘형사 고소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박 전 회장이) 고소를 하면 언론에 알려질 수 있고 (사기꾼들과) 상대를 하면 점잖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정씨가 형사 고소를 하면 우리도 (법적 조치 등)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기자가 입수한 정씨와 박 전 회장, 예 전 본부장 간의 대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에는 박 전 회장 측이 정씨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시한다거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취지로 말하는 내용등이 들어 있다.

박 전 회장은 2011년 9월 무렵 두 차례 정씨와 만난 자리에서 정씨가 박 전 회장 측에 돈을 준 행위를 질타하고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 회장한테 고마운 건 지금도 내가 잊을 수가 없어”라면서 “내가 아는 사람 소개해주면 그 사람하고 접촉을 해서 일을 따라는 얘기지, 그걸 내가 입찰까지 다 책임지고 해준다는 (말로 오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 전 본부장도 2011년 11월 정씨와 만나 “내가 보면 (사업이) 될 만한 것들이 있단 말이야. 그럼 (정씨에게) 던져주면은 거기서 해가지고 좀 다듬어가지고 이렇게…”라고 말했다.

정씨는 “7년 동안 향군 박 전 회장 측의 말만 믿고 진행을 해왔는데 오히려 나를 ‘뇌물공여죄’로 처벌하겠다는 식으로 협박을 하고 있다”면서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법적 처벌을 받겠지만 박 전 회장 측도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현재 박 전 회장 측에 전달한 11억원(피해배상액 포함 14억여원) 중 7억원가량을 지급받았지만, 나머지를 배상받기 위해 박 전 회장에 대한 대여금 반환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박 전 회장의 자택에 대한 가압류 신청을 한 상태다. 정씨는 향후 박 전 회장 측에 대한 고소·고발을 진행하고, 자신이 돈 거래 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했다면 자수를 하고 법적 처벌까지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부 비리 불거지자 건설사 자금 이용해 무마하는 ‘편법 동원’

사업가 정 아무개씨가 시사저널을 통해 폭로한 내용 가운데는 향군이 내부에서 빚어진 비리를 편법적으로 처리한 사례도 포함돼 있다. 지난 2011년 9월 말 최 아무개씨 등 향군의 태양광발전 사업 관련 투자자 3명이 박세환 당시 향군 회장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최씨 등은 내용증명에서 “향군 녹색사업단장인 오○○ 단장이 ‘향군 내 녹색사업단 설립 자금이 긴급히 필요하다. 이를 향군 회장에게 전달하고 사업이 성사되면 변제해 줄 것이다’라고 하고 2009년 1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총 3억7000만원을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2011년 10월4일까지 지급 의사를 밝히지않으면 향군 회장을 상대로 민·형사상 법적 절차를 진행한다는 의사도 밝혔다.

정씨는 이와 관련해 “2011년 11월 무렵 박세환 전 회장의 측근인 예 아무개 전 본부장이 나에게 ‘중견 건설업체인 A사의 고위 임원을 찾아가 (투자자 3명에게 변제할) 돈을 받아오라’고 지시했다”면서 “이후 A사를 직접 찾아가 고위 임원을 만난 후 (자신이 설립한) 컨설팅업체인 V사와 4억3200만원(세금 포함)의 용역 계약서를 작성했고 이 돈을 법인 계좌를 통해 받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급받은 용역비를 최씨 등 투자자 3명에게 변제해주고 ‘사후 법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각서를 받았다. 정씨는 이러한 사실을 예 전 본부장에게 보고하고 자신이 받아온 각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기자가 입수한 변제 각서 하단에는 정씨의 이름과 함께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귀하’라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회장과 예 전 본부장은 2014년 7월 정씨 측에 보낸 내용증명에서 A사의 용역 체결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예 전 본부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정씨가 찾아와서 자신이 변제해야 할 문제가 있는 데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부탁을 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했던 것”이라면서 “A사가 우리(향군)와 사업을 하고 있고 A사 고위 임원과 잘 아는 사이라 부탁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박 전 회장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후 정씨가 (자신의 변제 문제를) 잘 해결했다고 알려와 그 이후로 잊어버렸다”면서 “그런데 V사가 A사와 용역 계약을 체결한 것은 2013년쯤에야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A사 관계자는 “고위 임원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예 전 본부장에게 사전에 ‘정씨의 몸값이 대략 3억원 정도 하니 돈을 주라’는 말을 듣고 정씨를 만나 용역비를 지급한 것”이라며 “용역비가 본래 취지가 아닌 다른 곳에 사용됐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사업 수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용역 계약을 체결한 것이지만 이후 사업 추진이 된 것도 없었다. 우리도 사기 피해를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A사는 당시 향군과 영남권의 한 도시에서 대형 빌딩 건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를 놓고 볼 때 향군 내부 비리 문제로 박 전 회장이 곤경에 처하자, 박 전 회장 측이 향군과 거래 관계에 있던 건설사를 이용해 무마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중견 건설사가 철저한 확인도 없이 거액의 계약을 체결한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향군 정상화 모임’ 관계자들이 7월4일 서울중앙지검에 선거법 위반 및 배임 수재 등의 혐의로 조남풍 회장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지난 4월 치러진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회장 선거 당시 조남풍 현 회장 측이 대의원을 매수한 의혹 등을 다룬 시사저널의 단독 보도(본지 1342호 ‘1인 500만원’ 대의원 매수 의혹) 이후 한 달 만에 조 회장이 검찰에 고발돼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향군 이사 대표와 노조 등으로 구성된 ‘향군 정상화 모임’은 7월4일 서울중앙지검에 조 회장을 선거법 위반, 배임수재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향군 정상화 모임은 고발장에서 “조 회장은 향군에 790억원의 막대한 손해를 입힌 세력으로부터 선거 자금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이 돈으로 수백명의 대의원에게 돈 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조 회장과 관련한 금권 선거와 매관매직 의혹 등을 규명해달라고 촉구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향군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 인사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고 향군 직원 임용을 모두 취소했다. 하지만 대의원 매수 의혹 등 핵심적으로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서는 감사가 이뤄지지 않아 ‘봐주기 감사’라는 비판을 받았다.(본지 1344호 선거 부정 의혹 ‘덮었나, 못 밝혔나’) 이에 향군 정상화 모임은 보훈처 감사가 부실하다고 판단하고 조 회장을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향군 정상화 모임의 고발장을 접수하고 사건을 조사1부(부장검사 조종태)에 배당했다. 검찰은 대의원 매수 의혹 외에 노조 측에서 제기한 매관매직 의혹에 대해서도 집중 수사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향군 안팎에서는 조 회장 측이 지난 5월 초 특정 산하 업체장 임명을 앞두고 ○○지회장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았지만, 산하업체장이 다른 사람으로 선정되자 6월 초 교대역 부근 커피숍에서 ○○지회장에게 이를 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향군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시작된 만큼 차분히 임하겠다”고만 말했다.

한편 조남풍 회장에 대한 검찰 고발로 내분 사태는 더욱 격해지는 양상이다. 향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조 회장은 향군 정상화 모임의 검찰 고발당일인 지난 7월4일 오전 11시쯤 부서장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주간 정례회의에서, 검찰 고발을 언급하면서 “이런 재향군인회가 되겠는가. 그런 ××들이 판치게 하는 대한민국이 되겠느냐”면서 욕설을 하고 “까불지만 이 ××들, 가만 안 두겠어요”라고 협박성 발언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향군은 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 고발을 주도한 노조위원장을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벌여 보복성 감사 논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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