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고용 활성화 총대 멜까...’명문화된 목표’와 ‘의사결정에 반영’ 엄연히 달라
  • 류혜진 기자 (ryoo@sisabiz.com)
  • 승인 2015.08.17 14:29
  • 호수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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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태도 명부 부족... 학계 “거시경제변수 명민하게 고려한다면 할 수 있는 일 더 많다”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이주열(좌) 현 총재와 김중수(우) 전 총재 모습/사진=뉴스1

중앙은행에 대해 물가 안정 이상의 기여를 하라는 주문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행은 아직 기존 정책 틀을 넘어설 준비조차 하지 못한 상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희수 의원은 지난 8월 11일 한국은행법에 고용안정 책무를 추가하는 법률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이 3년 단위 물가안정 목표제 갱신을 앞두고 갑자기 불거진 ‘고용 확대’ 책무를 맡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이 문제에 대해 본지에 한국은행법 개정 사안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고, 이주열 총재는 신중히 검토해볼 문제라며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고용을 통화 정책의 한 지표로 삼자는 논의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우선 미국은 명시적으로 고용지표 변화에 맞춰 금리를 조정해 왔다. 다른 한 가지 배경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상황을 정치권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는 ‘가격을 움직이는 요인은 수요’라는 근본 문제를 짚었다. 고용을 늘려 소비 여력을 높여야 물가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게 논리다. 여기엔 금융위기 이후 금리 조정이 투자나 소비에 제대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짙게 깔려 있다. 기존 통화 정책의 효과가 실물 경제에 미치는 경로가 막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 한국은행법 제6조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조절하거나 국채를 매매하는 등 통화량 조절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도록 규정한다. 거시경제 여건에 맞추어 금리를 조정하면 가계와 기업의 투자, 소비, 임금이 변하면서 재화 가격까지 도달한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엔 금리와 물가 두 정책 수단이 제 기능을 하고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물가가 목표치를  현저히 밑돌고 있다. 2013년부터 목표 물가는 2.5~3.5%였다. 그러나 2013년과 2014년의 소비자물가는 1.3%였고, 올해는 0.5%까지 내려갔다.

물가는 실물 경기의 활황이나 불황 정도를 반영한다. 오랜 시간 1%대 저인플레이션이 이어져 저성장이 구조화됐다. 몇 년 째  고용이 안 되고 실질소득은 줄고 있다. 물가를 움직이는 수요도 형성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한은은 법 개정안이 나오기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당장 내년부터 시행할 물가안정목표제의 개선 방안 윤곽도 그리지 못했다.

물론 한은도 고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조사총괄팀 관계자는 "한국은행도 금리결정 과정에서 여러가지 거시경제변수를 모두 고려한다. 고용은 중요한 거시경제 변수다. 법에서 명문으로 고용안정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한은이 고용 목표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김정훈 박사와 이명훈 고려대 명예교수 등은 고용안정 의무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2014년 연구에서 한국 금통위와 미국 연준의 금리정책 내용을 비교해 한국 금통위가 거시경제지표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정도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실업률이나 중간재 및 소비재 등 실물 경기 흐름에 둔감했다는 것.

한은이 기존 경제 분석의 틀을 넘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경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고리타분한 이론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이는 것도 그래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우리는 통화를 일정 정도 조정할 뿐이다. 시장에서 실물 경제의 향방이 결정된다. 고용도 시장에서 결정되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강현주 한국경제연구원 국제금융실 연구위원은 “미국처럼 명시적으로 고용책무를 담당하는 곳이 없다.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지만 “고용 지표 호조가 미국 연내 금리 인상의 중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뭘 추가하든 한국은행이 일하게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 본래 물가안정 목표제에서는 물가만 잡으라고 명시했다. 물가도 제대로 잡지 않고 다른 거시경제 변수 악화를 핑계로 삼았다.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법제화한 목표를 다시 무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학계 “조심스러울 명분 없다. 기축통화국 아니라도 자본 변동 위험 피할 수 있다”

김정훈 박사와 이명훈 교수의 연구 결과도 “한국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결정이 FOMC보다 거시경제변수 변동을 면밀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2011년까지 십여년 간 한국과 미국 정책금리 결정 중 FOMC는 58% 동결, 한국은 80% 동결했다. 인상과 인하 횟수는 비슷한 비율로 나타났다. 각각 한국이 10%씩, 미국이 20%씩이었다.  논문은 주요국의 거시경제변수들이 동조화되는 현상을 감안하면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 결정에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엔 금리 결정의 명분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한국은행이 미국만큼 종합적인 거시경제 변수를 반영해 금리를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화량 증가는 2% 높고 국채발행액도 25%나 많았지만 고용과 소비라는 실물경제변수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지는 못했다.

금리 목표 외에 통화량이나 통화유통속도 등 다양한 변수를 목표를 고려하는 면에서도 한은은 떨어진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에 대해 조사총괄팀 관계자는 “위기 상황도 아닌데 금리를 0.5%포인트(P) 이상 큰 폭으로 혹은 자주 조정하기 힘들다. 금리을 소폭 조정했음에도 주택담보대출이 많이 늘어난 것을 보면 충분한 경기부양 신호가 된다 “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외화 유출과 부채 리스크를 탓하며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한은에 대한 학계와 정치권의 변화 요구는 거세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리인하가 실물 경제를 부양하는 때에는 자본 유출로 인한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성장이 정체하고 물가가 정체 또는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시기에는 신용의 공급을 통한 중앙은행의 “불씨 지피기” 기능의 중요성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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