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후덕 딸 특혜 채용 파문 일파만파
  • 유재철 시사비즈 기자 (jyc@sisabiz.com)
  • 승인 2015.08.27 10:43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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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인터넷 경제매체 ‘시사비즈’ 단독 보도 후폭풍

8월17일 오후 2시쯤 취업 준비생 10여 명이 여의도 국회 도서관 지하 세미나실 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당시 이곳에서는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회가 ‘대학생·고시생들이 희망하는 법조인 양성제도’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었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소속이라고 밝힌 시위자들은 손에 피켓을 들고 있었다.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로스쿨 면접교수 왈: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문재인 왈: 사람이 먼저다. 윤후덕 왈: 내 딸이 먼저다.”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다음 날인 18일에는 법무법인 청목의 나승철 변호사를 포함한 724명의 청년 변호사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변호사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대기업에 딸 취업을 청탁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윤후덕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나승철 변호사는 “윤 의원의 행동은 국회의원이 그 지위를 남용해 직위의 취득을 알선한 것”이라며 “헌법(제46조 3항)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헌법은 국회의원이 지위를 남용해 국가나 공공단체, 기업체와 계약에서 재산상 권리, 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할 수 없고 타인을 위한 알선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공장이 있는 파주는 윤후덕 의원(사진 왼쪽)의 지역구여서 특혜 채용 논란이 일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한상범 사장에게 딸 지원 알린 건 사실”

비판의 칼날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로 향했다. 나 변호사는 “앞에서는 개혁, 뒤에서는 청탁. 이 모순에 대해 문재인 대표는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수 언론은 시사저널 인터넷 경제매체인 ‘시사비즈’ 보도를 인용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여론은 국회의원 한 사람의 몰지각한 행위에 그치지 않고 제1야당, 나아가 국회의원들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시사비즈는 8월13일 ‘윤후덕 의원 딸, 대기업 변호사 채용 특혜 의혹’이란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당시 윤후덕 의원은 시사비즈 기자를 만나 2013년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대표에게 전화해 딸이 지원한 사실을 알렸다고 시인했다. 윤 의원은 “부탁한 것은 아니고 딸의 지원 사실을 알렸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LG디스플레이는 청탁 전화를 받은 후 법무팀 채용 정원을 늘렸다. 당초 회사 대외협력팀은 공정거래 분야 경력 변호사 1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2명이었다. 한 명 더 채용한 것이다. 윤 의원의 딸은 법무팀에 합격했다. 당시 LG디스플레이는 법무팀 변호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내지 않았다. 회사가 법무팀에 없던 자리를 만들어 윤 의원의 딸을 입사시켰다는 주장이 회사 내부에서 나오는 이유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법무팀은 경력 변호사를 채용할 계획이 없었다”며 “느닷없이 윗선에서 변호사 한 명을 추가로 뽑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경기도 파주에 대규모 공장을 갖고 있다. 파주는 윤후덕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구에 공장을 가진 기업 대표에게 자녀의 지원 사실을 알리는 행위 자체가 취업 청탁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 대관(對官) 담당자는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구의 기업 대표에게 인사 청탁을 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고 말했다. 윤 의원의 입장은 달랐다. “오해를 받지 않을까 걱정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우리 애는 워낙 우수하다. 충분한 자격과 역량을 갖고 있다”고 답변했다.

시사비즈 보도가 나가자 비판 여론이 쏟아졌다. 최근 가중되는 청년 실업 탓에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딸을 위해 대기업 취업을 청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 여론이 폭발했다. 시간이 갈수록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급기야 서울지방변호사회는 8월17일 윤후덕 의원을 국회 윤리위에 회부할 것을 촉구했다. 변호사회는 성명서에서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하고 직권을 남용한 행위”라며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간지·방송사·인터넷 등 주요 매체가 윤후덕 의원의 몰지각한 행동을 비판하고 나섰다. ‘뇌물·막말에 딸 취업 청탁까지, 제 얼굴에 오물 끼얹는 野(조선일보)’ ‘윤후덕, 딸 대기업 취업 특혜 의혹…윤리위에 회부해야(중앙일보)’ ‘지역구 대기업에 딸 취업 청탁한 친노 윤후덕 의원’ ‘대기업 대표에게 딸 취업 청탁한 국회의원(매일경제)’ 등 주요 매체가 사설까지 동원해 윤후덕 의원을 비판했다. SBS·KBS 등 지상파 방송도 앞 다퉈 보도했다.

윤후덕은 ‘을지로위원회’ 핵심 멤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윤후덕 의원은 고개를 숙였다. 윤 의원은 8월15일 개인 블로그에 “저의 부적절한 처신을 깊이 반성한다. 딸은 회사를 정리키로 했다”고 사과했다. 윤 의원의 사과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윤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을(乙)’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모임인 ‘을지로위원회’의 핵심 멤버라고 알려지면서 비난은 거세졌다. 윤 의원은 그동안 을지로위원회에서 “중소 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를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갑을 관계에서 갑의 힘이 너무 세다. 기득권 구조에서 을이 이겨낼 방법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8월19일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실에서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었다. 을지로위원회가 주최한 행사였다. ‘윤후덕 후폭풍’ 탓인지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총 46명)은 우원식 위원장과 홍익표 의원 2명뿐이었다. 이날 위원회 관계자는 “윤 의원의 행동이 사실이라면 을지로위원회 간판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윤후덕 의원에 대한 비판이 당 전체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문재인 대표가 진화에 나섰다. 문 대표는 당 윤리심판원에 윤후덕 의원에 대한 직권조사를 요청했다. 안병욱 새정치민주연합 윤리심판원장은 “당 대표가 직권조사를 요청했기 때문에 심각하게 사건에 대응할 것”이라며 “이달 31일 회의에서 징계 절차가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에 이어 갖가지 비난 섞인 풍자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청년 실업자는 SNS나 블로그에서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인사 청탁을 할 곳이 없어 실업자 자녀를 지켜봐야 하는 아버지들은 이유 없이 미안해해야 했다. 8월17일 국회 도서관 세미나실 앞에서 열린 사법시험 준비생 시위엔 중년의 시위자가 중앙에 자리했다. 그는 ‘아버지가 후덕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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