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차 경찰 주무관 손에 쥔 월급 126만원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09.09 16:21
  • 호수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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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신분 무기계약직의 고달픈 삶…밤샘 작업 해도 수당 못 받아

A씨(여·47)는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주무관이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8월 월급 명세표를 꺼내보였다. 총급여 178만원에서 각종 세금 등 52만원을 공제한 126만원이 그가 손에 쥔 돈이다. 그 경찰서 구내식당의 밥값은 3000원이다. 주 5일 근무여서 월 6만원이 점심값이지만, 이 돈을 아끼기 위해 그는 한 달 동안 이틀에 하루꼴로 점심을 걸렀다. 그는 “점심 대신 물을 마셔 허기를 달래야 그나마 한 달에 120만원을 받을 수 있다”며 “연 2회 지급되는 정근수당(봉급의 50%)과 명절휴가비(봉급의 120%)를 합해도 연봉 170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연봉으로 따져보니 5년 동안 약 5% 인상된 게 고작”이라고 밝혔다.

A씨는 민간인 신분의 무기계약직이다. 무기계약직은 기간을 정하지 않고 근로계약을 맺은 비(非)공무원을 말한다. 이론상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으므로 정부는 이들을 정규직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무기계약직 직원들은 자신들을 비정규직으로 본다. 경찰공무원이 아닌 데다 임금과 처우가 공무원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계에 놓인 어정쩡한 신분이다.

경찰서에는 경찰공무원뿐만 아니라 민간인 직원도 있다. 그러나 월급도 제때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경찰서 민원실 모습.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 시사저널 임준선

경찰 조직에는 13만여 명의 경찰관과 3800여 명(일반직·기술직)의 공무원이 정원으로 분류돼 정상적인 공무원 임금을 받는다. 전국 250개 경찰서와 기타 경찰 조직에 있는 무기계약직 1600명은 같은 연차의 경찰공무원에 비해 4분의 1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A씨와 비슷한 연차의 경찰공무원(경사급)의 월급은 252만원이다. 무기계약직이 받는 급여는 경찰관, 일반·기술직 공무원들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2014년 주무관 보수표준안과 경찰관 봉급표를 비교하면 월 최소 4만원에서 최대 143만원의 차이가 난다.

각 경찰서에는 무기계약직이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18명 있다. 사무보조원, 시설관리원, 전기관리원, 건물관리원, 환경미화원, 조리종사원, 차량관리원, 안전관리원, 구내매점원, 주차정산원, 위생관리원, 간호보조원 등의 일을 한다. A씨는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으로 포장된 비정규직”이라며 “주무관이란 직함도 수없이 싸워서 얻어낸 것이고 그전에는 미쓰 리, 아줌마 등으로 불렸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경찰서 사무보조원으로 채용돼 경찰청 소속 비정규직 생활을 시작했다. 정부가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을 해소한다며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고 2008년 그의 신분도 무기계약직으로 바뀌었다. 그는 “처음엔 민간인 신분의 비정규직으로 채용됐지만 나중에 정규직 공무원으로 전환된다는 말에 경찰서에서 일하게 됐다”며 “그러나 아직 비공무원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퇴근 후 아르바이트로 생계 꾸려

그는 오래전에 이혼한 후 아들과 딸을 키워왔다. 120여 만원으로는 생활을 할 수 없었다. A씨는 “딸은 전문대를 졸업한 후 다른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아들은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며 “생활이 힘들어 친정에서 도와주고, 아이들도 아르바이트하고, 나도 퇴근 후 식당 등에서 일해 겨우 입에 풀칠해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급여가 제때 지급되지 않은 적도 있다. 다른 경찰서의 B씨(37)는 “몇 해 전 연말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경남, 경북, 광주, 울산 등 여러 지방 경찰서에서 월급이 지급되지 않아 이듬해 1월에야 받을 수 있었다. 자주 월급 지급을 미루는 경찰서도 있다”며 “체불된 이유를 물어보니 예산이 없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무기계약직은 경찰서 정규 인원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인건비가 잡혀 있지 않다. 각 경찰서의 사업비에서 이들의 급여가 지급된다. 사업비 예산이 줄어들면 이들의 급여가 제때 지급되지 못한다. B씨는 “무기계약직 임금을 인건비가 아니라 사업비로 책정한 것은 사실상 정부가 우리를 정규직으로 보지 않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상여금은 고사하고 연장 근무, 야간 근무, 휴일 근무, 특수 업무(민원 업무) 등의 수당도 이들에겐 언감생심이다. 규정상 시간외근무수당은 시간당 7104원, 야간근무수당은 2368원, 휴일 일당은 5만7109원이다. A씨는 “한번은 마감할 업무가 많아 두 아이까지 동원해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밤샘 근무를 했지만 수당은 받을 수 없었다”며 “민원실에서 근무하는 경찰공무원은 수당 3만원을 받지만 우리는 민원실에 근무해도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3년 10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통해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급여 및 수당에 차별을 두는 관행을 금지했다. 지난해 4월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무기계약직 보수 기준에 따라 공무원 또는 공무원에 준하는 인건비를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정작 법 집행 조직인 경찰이 정부의 지침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경찰청 소속 무기계약직은 2011년 주무관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조는 2012년 그동안 받지 못한 수당이라도 지급해달라는 공문을 경찰청에 보냈다. A씨는 당시 공문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경찰청은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받지 못했다”며 “체불된 1인당 1년 치 수당만 1000만원대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국회·기획재정부·행정자치부 등에 자신들의 실정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왔다. 그러자 경찰청 측에서 회유와 협박이 들어왔다. B씨는 “경찰청은 무기계약직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면 기재부에 찍혀서 예산이 줄어 급여가 깎일 수 있다는 말로 우리를 협박했고, 국회·언론·정부 등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면 임금을 5% 인상해준다고 회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시사저널이 단독으로 입수한 경찰청 문건에도 ‘(기본금 5% 이상은) 노조가 외부 기관에 노조 입장을 일체 어떠한 요청이나 요구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함’이라고 게재돼 있다.

단체행동은 꿈도 꾸지 못한다. B씨는 “전경들이 경찰서에서 방패를 가는 모습을 봤고 경찰이 시위 현장에서 잡아온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봤다”며 “무서워서 단체행동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돈보다 사람을 더 서럽게 만드는 것은 매일 같은 부서에서 얼굴을 보며 근무하는 경찰공무원의 천대다. A씨는 “한번은 부서 직원 모두 버스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길래 나도 따라갔다. 막 신발을 벗고 식당으로 들어서려는데 한 경찰관이 나에게 왜 따라왔느냐고 했다. 무안해서 다시 신발을 신고 경찰서로 돌아왔고 점심시간이 빠듯해 굶은 채 오후 업무를 봤다. 부서 회식을 해도 끼워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봉급과 처우가 낮다고 해서 업무가 편한 것도 아니다. 경찰공무원이 하기 싫은 일을 떠맡아 한다는 게 무기계약직 직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예를 들어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한 과태료 부과는 경찰공무원의 일이다. 그러나 민원인들과 늘 말씨름을 해야 하므로 경찰공무원이 꺼리는 업무이기도 하다. 그 일은 고스란히 무기계약직에게 돌아간다. 지방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C씨는 “폐쇄회로 TV 영상을 판독하고 법 조항을 따져 벌점과 범칙금을 매기고 통고하는 등 경찰공무원이 할 일을 무기계약직이 한다”며 “또 경찰공무원이 교육·훈련·육아휴직 등의 이유로 자리를 비우면 그들의 업무를 우리가 고스란히 떠안는다. 이처럼 경찰공무원과 같은 일을 하고도 급여는 정규직의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고 강조했다.

ⓒ 경찰청주무관노동조합 제공

개인정보·총포 관리까지 떠안아

이런 탓에 이들이 자칫 각종 범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A씨는 “각종 개인정보를 다루며 심지어 총포 관리도 우리가 한다”며 “만일 악의적으로 개인정보나 총을 빼돌리려고 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2003년까지만 해도 전국에 5800명이던 무기계약직은 현재 1600명으로 줄어들었고,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업무가 없어지면 이들은 언제든지 직장을 잃을 수 있다. A씨는 “말이 좋아 무기계약직이지 사실상 ‘무기한’ 계약직이고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파리 목숨”이라며 “건강이 좋지 않아도 해고당할 수 있으므로 아파도 티를 내지 않고, 성추행을 당해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경찰서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A씨는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없어서 여기에 붙어 있다. 그렇지만 먹고살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겪어야 하는 삶이 고달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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