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이재용 파워’ 더 막강해졌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09.22 09:34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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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부자 ‘영향력 있는 경제인’ 1·2위 최경환·정몽구·최태원 3~5위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경제관료 포함)을 묻는 조사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시사저널은 해마다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를 벌여왔다. 경제인의 영향력을 묻는 조사에서는 항상 이건희 회장이 1위를 차지했다. 1989년 첫 조사 때부터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2013년에는 이 회장에 대한 지목률이 90%를 넘어서기도 했다. 2위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는 60% 이상 격차를 보였다. ‘이건희=경제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항상 10위권 밖에 머물러 있었다. 삼성그룹의 승계 1순위였지만, 이 회장의 그늘에 가려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5월 이 회장이 쓰러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해 조사에서 이 회장은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1위에 올랐지만, 지목률은 91.8%에서 75.8%로 16%나 하락했다. 대신 이 부회장이 최경환 부총리(39.8%)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28%)에 이어 4위(11.5%)에 올랐다. 재계 3세나 4세 중에서 10위권에 오른 인사는 이 부회장이 유일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

‘경제인 1위=이건희’ 공식 깨질 듯

올해 조사에서는 이 부회장의 영향력이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장은 올해도 1위를 차지했지만, 지목률은 41.9%로 전년 대비 33.9%나 낮아졌다. 2위 자리는 근소한 차이로 이재용 부회장(41.6%)이 차지했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조사에서는 이 부회장이 1위 자리를 꿰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삼성그룹이 실질적으로 이재용 체제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10일 밤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현재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세간에는 이 회장의 위독설이나 사망설 등 다양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그때마다 삼성그룹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이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9월9일 사장단 회의 후 브리핑에서도 “(이건희) 회장님은 변함없이 잘 계신다”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시사저널 포토, 최경환 경제부총리 ⓒ 시사저널 이종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시사저널 임준선, 최태원 SK그룹 회장 ⓒ 연합뉴스

와병 중인 이 회장을 대신해 1년 5개월여 동안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줄곧 ‘소통’과 ‘실용’을 강조해왔다. 출장이나 일정은 수행원 없이 혼자 다녀온다. 과거 이 회장이 해외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임직원이 공항에 총출동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시간이 촉박하지 않은 일정은 전용기 대신 민항기를 이용한다. 최근 삼성그룹이 전용기 3대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데도 이 부회장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올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주총을 통과하면서 그룹의 승계 과정은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한때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으로 주춤했지만, 압도적인 표차로 주총을 통과하면서 이재용 부회장 체제는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제일모직(현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해왔다.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하면서 삼성의 지배구조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해졌다. 복잡하게 얽혔던 지배구조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합치면서 정리된 것이다. 삼성물산은 현재 삼성생명 지분 19.34%도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또 다른 주요 주주인 삼성생명(7.21%)을 통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재계에서는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을 통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7.21%)을 어떻게 끊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억지춘향’ 식으로 조직 구조를 유지해왔지만 앞으로도 이 구조를 계속 유기하기는 힘들다”며 “현재의 조직 구조를 바꿀 경우 핵심 고리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다. 현행법의 제약을 준수하면서 삼성전자 지분을 이 부회장에게 넘기는 것이 삼성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주열·정몽준·구본무·허창수·임종룡, 6~10위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20.76%)과 삼성전자(3.4%) 지분을 이 부회장이 언제 승계할지도 관심사다. 이 부회장은 현재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 16.54%와 삼성SDS의 지분 11.25%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지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분을 넘겨받아야 승계 구도를 완성시킬 수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의 평가액을 10조원 안팎으로 평가한다. 이 부회장이 주식을 증여받기 위해서는 최소 5조원의 증여세가 필요한 셈이다.

이 부회장은 최근 삼성물산(옛 제일모직)과 삼성SDS의 상장을 통해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 스코어는 이 부회장의 주식 가치를 1년 전보다 5조9444억원 늘어난 8조3607억원으로 평가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주식이 어떤 식으로든 승계 자금에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조사에서는 경제관료들도 대거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최경환 부총리(3위)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6위),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10위), 진웅섭 금융감독원장(12위)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14위) 등 15위권에 5명의 경제관료가 포함됐다. 특히 ‘초이노믹스’로 통하는 최 부총리의 경우 지목률 31%를 얻으며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20.1%), 최태원 SK그룹 회장(7.2%),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4.2%), 구본무 LG그룹 회장(3.4%), 허창수 GS그룹 회장 겸 전경련 회장(2.6%),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1.5%) 등 쟁쟁한 재계 총수들을 누르고 3위를 차지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약진도 눈에 띈다. 최 회장은 2013년 회사 돈 수백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올해 8월15일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고 출소할 때까지 2년 넘게 옥살이를 해야 했다. 국내 재벌 총수로는 최장 기간 복역한 것이다. 때문에 지난해 조사에서는 최 회장이 1.5%(9위)의 낮은 지목률을 보였다.

8·15 사면 복권 이후 최 회장은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의정부교도소를 나온 직후 집 대신 서울 서린동 SK 본사에 먼저 달려가 사장단을 만났을 정도다. 이후 국내외 사업장을 오가며 계열사들의 경영 상황을 점검했다. 8월 말에는 반도체 분야에 46조원을 투자하겠다고도 밝혔다. 다른 재벌 총수들이 출소나 사면 복권 이후 여론의 눈치를 보며 경영 복귀를 저울질하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 같은 행보 때문인지 올해 조사에선 7.2%(5위)의 지목률을 보였다.    

 

 

대한민국 전문가 집단은 올해에도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으로 삼성그룹을 꼽았다. 1000명의 응답자 중 974명(97.4%)이 삼성그룹을 지목했다.

하지만 삼성 입장에서는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 우려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은 2011년 4분기부터 5조원대 이상을 유지했다. 2014년 2분기에는 스마트폰 사업부의 선전에 힘입어 7조원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4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어닝 쇼크’ 수준이었다. 영업이익률은 8.7%로 3년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4분기부터 영업이익이 5조원대로 복귀했지만 불안한 목소리는 여전하다. 1분기 5조9800억원과 2분기 6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7조원대 회복엔 실패했다. 3분기 전망은 더 암울하다. 주요 증권사들의 영업이익 전망치가 당초 6조8996억원에서 최근 6조6145억원으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이대로라면 6조5000억원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분기 실적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주가에도 반영됐다. 지난 3월만 해도 150만원을 웃돌던 삼성전자 주가는 9월18일 현재 119만원으로 20% 가까이 하락했다. 최근 3년간 주가도 11.52%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주가가 47.17%나 상승한 것과는 대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감원설이 나돌기도 했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총출동해 “인력 재배치 수준”이라고 해명했지만, 시장의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 내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매출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매년 삼성그룹에서 내는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삼성전자 한 곳에서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흔들릴 경우 작게는 삼성그룹, 크게는 한국 경제 전체에 여파가 미칠 수 있어 우려가 더해진다.

삼성그룹에 이어 영향력 있는 그룹 2위는 현대자동차그룹(58.4%)이 차지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165조6300억원의 매출과 12조712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 기준으로는 300조원대를 기록한 삼성그룹에 크게 밀렸지만,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현대차를 뺀 나머지 비금융 계열사의 실적에서는 오히려 삼성그룹을 추월했다. 이들 다음은 SK그룹(21.9%), LG그룹(21.0%), 롯데그룹(3.6%), 현대중공업그룹(3.2%), 포스코(2.5%) 순이었다. 올해 조사에서는 네이버(1.4%)와 다음카카오(1.1%)가 처음으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CJ·신세계·현대·두산·금호아시아나 등 쟁쟁한 재벌 그룹을 제치고 각각 8위와 9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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