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세월이 지울 수 없는 참 성직자의 긴 울림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5.09.22 09:44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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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수환 추기경 다시 1위…10위권 내 개신교 성직자는 1명뿐

“그동안 많이 사랑받아서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2009년 2월16일, 고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김 추기경이 선종한 지 올해로 6년째를 맞고 있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여전히 우리 사는 세상에 큰 여운을 남기고 있다. ‘2015년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조사에서 김 추기경이 1위(지목률 20.1%)로 꼽혔다. 김 추기경은 선종 이듬해인 2010년 같은 조사에서 1위로 선정된 이후 내리 4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염수정 추기경에게 1위 자리를 양보했지만, 1년 만에 다시 1위로 올라서며 한국 종교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을 재확인해줬다.

고 김수환 추기경 ⓒ 시사저널 포토

‘인간 가치’에 주목한 교황, 영향력 10위

김 추기경은 군부독재와 고도성장이라는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추앙받아왔다. 1971년 유신 정권을 반대하는 입장을 담은 성탄절 메시지를 보내는 등 어두운 시대의 그늘에 한 줄기 햇살을 비추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종교 간 벽을 허물고 화해를 이끌어나가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소통과 화해보다는 갈등과 대립이 반복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김 추기경이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김 추기경의 1위 재선정에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영향력 있는 종교인 조사에서 10위권 내로 처음 진입한 것도 남다르게 해석되는 대목이다. 가난하고 낮은 곳으로 임하는 두 성직자의 이미지가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조사에서 지목률 2.7%를 얻어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10위에 선정됐다. 시사저널의 종교인 영향력 조사에서 외국인 성직자가 10위권 내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염수정 추기경 ⓒ 연합뉴스, 자승 스님 ⓒ 시사저널 포토, 프란치스코 교황ⓒ 시사저널 임준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3년 3월 266대 교황으로 취임한 이후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전 세계에 강한 울림을 던져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상징하는 프란치스코를 교황의 이름으로 선택할 정도로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새터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을 연이어 만나며 우리 사회의 약자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마음을 치유하려고 애썼다. 교황은 방한 첫날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불평등과 부패를 척결해 정의를 실현하려는 그의 거침없는 언행은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위한 삶은 절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며 “불평등은 사회악의 근원”이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교황 방한 당시 교황을 수행했던 이탈리아 일간지 기자이자 <따뜻한 리더, 교황 프란치스코>의 저자인 안드레아 토르니앨리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교황의 핵심 메시지는 종교적 믿음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며 “나라와 문화가 달라도 인간의 가치는 동등하게 중요하다. 교황이 노인·아이·빈민층에 주목하는 이유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 자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신념에 있다”고 말했다.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조사 결과에서도 천주교와 불교계 성직자들이 강세를 나타냈다. 천주교 성직자로는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지난해 1위로 꼽혔던 염수정 추기경이 한 계단 주춤했지만 2위(19.6%)로, 정진석 추기경이 뒤를 이어 3위(14.4%)로 선정됐다. 상위 1~3위에 모두 천주교 신부 출신이 선정됨으로써 한국 종교계에 미치는 천주교 성직자들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이어 지난해 영향력 3위로 꼽혔던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4위(11.1%),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이 5위(8.3%), 고 법정 스님(6.5%)이 6위로 각각 선정됐다. 불교 승려인 혜민 스님과 고 성철 스님도 각각 8위(3.3%)와 9위(2.9%)를 차지했다.

개신교계 성직자로는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가 유일하게 10위권 내인 7위(6.3%)에 선정됐다. 하지만 조 목사는 교회 재산을 배임한 혐의로 지난해 8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고, 교회 사유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빛바랜 영향력 순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10위권 내 인물 중 5명이 불교계, 4명이 천주교계로, 국내 3대 종교로 분류되는 개신교 출신 성직자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받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조사에서 10위로 선정됐던 고 한경직 목사는 11위를 기록했다. 한 목사는 생전 영락교회를 세워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참 종교인의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1992년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종교계의 노벨상이라는 템플턴상을 수상했다. 2000년 세상을 떠날 때는 휠체어와 지팡이, 몇 벌 안 되는 옷가지 등 생필품만 남겼다. 그의 청빈함은 교회 세속화 논란에 휩싸인 일부 종교인과는 달라 여전히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2010년 1월 암 투병 끝에 48세의 나이로 선종한 고 이태석 신부도 지난해보다는 다소 순위가 내려왔지만, 14위로 선정되면서 여전히 한국 종교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한 것으로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세월의 가벼움 뒤에서도 사랑과 봉사, 평화와 정의를 실천하고자 했던 종교인들의 정신이 사후에도 긴 울림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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