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호준 대신경제硏 지배구조연구실장
  • 김병윤 기자 (yoon@sisabiz.com)
  • 승인 2015.09.23 09:48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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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성 의심 받을 때 외로움 느낀다”

“대신경제연구소 지배구조연구실은 처음 문을 열 때 행동하는 연구소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서비스 콘텐츠 질을 높여 시장 영향력을 키울 생각입니다.”

23일 시사저널 경제매체 시사비즈는 김호준 대신경제연구소 지배구조연구실장(사진)을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에서 만나 그동안 해온 일과 향후 목표를 들었다.

대신경제연구소 지배구조연구실은 지난해 7월 설립됐다. 사람으로 치면 갓 돌이 지난 셈이다. 우스개로 돌잔치는 했는지 묻자 김 실장은 웃음으로 답했다.

“지난 3월 이 자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기억하시죠? 당시 저희가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되는 기업 몇 군데를 언급했는데 그중 하나가 롯데쇼핑이었습니다. 그 후 롯데쇼핑에 대한 문제는 잠시 가라앉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설립 1년쯤 지날 때 롯데그룹 경영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배구조 이슈가 본격적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신경제연구소 지배구조연구실은 지난 3월 롯데쇼핑 사내이사가 겸임을 과다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순자산 대비 저평가된 시가총액, 높은 내부지분율, 낮은 배당 등이 주주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롯데쇼핑 경우처럼 저희의 의견이 시장에 반영될 때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 선임 안건을 두고 주주 측과 경영진 측이 충돌한 사례가 있습니다. 저희는 이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고, 주총에서 해당 안건이 주주 측 의견으로 모아졌습니다. 저희가 주주권익 실현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업지배구조 문화가 폐쇄적인 여건에서 한살배기 증권사 연구실이 이뤄낸 성과는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흥행까지 뒷받침된 진짜 성과물은 따로 있다. 바로 삼성물산-제일모직, SK-SK C&C간 합병 이슈다.

“SK와 SK C&C 합병 당시 반대 의견이 전혀 나오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SK의 자사주 처리와 공시 관련 절차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국민연금이 수용한 점을 뜻 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건은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희는 주주가치 측면 뿐 아니라 자본시장의 공정성·신뢰성·효율성 등을 고려해 선도적으로 찬성 의견을 냈습니다. 아직 문제는 남아있지만 그래도 잘 진행됐다고 판단됩니다.”

지배구조연구실 문을 열 때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장 걸리는 것은 바로 ‘대신’이라는 이름이었다.

“저희가 외부 기업들이 내놓은 안건에 반대 의견을 내면 당연히 해당 회사들은 싫어합니다. 그와 별개로 대신증권과의 관계상 독립성을 의심받거나 이해관계로 오해받을 때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대신증권과 대신경제연구소 지배구조연구실은 별도 법인이다. 차이니즈월(chinese wall· 중국 만리장성을 의미하지만 최근 들어 기업 내 정보교류를 차단하는 장치나 제도를 의미)와 준법감시인 역시 별도로 두고 있다.

“저희가 독립적인 의견을 내놓을 때면 가끔 그룹 내에서 컴플레인을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일례로 저희가 SK와 SK C&C 합병 건에 반대 의견을 내놨을 때, 대신증권이 SK D&D 기업공개(IPO)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는 대신증권 영업에 치명적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점을 시장에 알릴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김 실장이 토로하는 또 다른 어려움은 바로 지배구조 자체 문제다.

“지배구조 문제는 서로 얽혀 있고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사정이 많아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주주, 오너, 경쟁자, 정책 당국 등 다양한 주체 입장에 서보고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지배구조 문제는 어렵지만 대신 얻은 것도 많다. 특히 연구소 성격 상 이론에만 그칠 수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곤 한다는 게 김 실장의 설명이다.

“지배구조 이슈를 다룰 때 현실적인 사정을 배제하고 단순 수치나 법 규정 만으로 판단하면 전체를 그르칠 수 있겠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저희는 다각도로 접근하려 하고, 직원들 역시 실무 경력을 가진 사람들을 충원해 나가고 있습니다.”

김 실장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보다 국내 기업들의지배구조 개선이다. 김 실장은 이를 위해 시장 참여자 모두의 역할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1위인 반면 지배구조 순위는 28위입니다. 그 이유는 법과 규칙이 그 취지에 맞게 제대로 시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도 수립과 제도 시행에 큰 괴리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정책 당국 역할만으로는 지배구조 개선이 해결될 수 없습니다. 기관투자자 등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주주 권익을 행사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김 실장은 연내 도입이 예상되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필요성도 강조했다.

“국내 기업 문화가 아직 지배구조에 대해 성숙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만 도입 만으로 한계가 있어 권위 있는 정부기관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주주와 기업 스스로도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이 있어야 실행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봅니다.”

대신경제연구소 지배구조연구실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기틀을 잘 잡으면 그 위에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우선 목표는 의안분석 서비스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보다 전문적이고 입체적인 관점에서 지배구조 이슈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한편으론 주체를 확장시켜 의안분석 경쟁사나 관계 당국과 협업을 이루고 싶습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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