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머니’ 무장한 중동 항공사, 우리 하늘 장악한다
  • 송준영 기자 (song@sisabiz.com)
  • 승인 2015.10.06 14:10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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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 항공대 교수 “항공 협정 개정 등 정부 차원 대응 필요”
중동을 대표하는 3개 항공사 에미레이트항공·카타르항공·에티하드항공이 빠르게 성장하며 국내 장거리 노선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 사진= 각 항공사 홈페이지

‘오일 머니’를 등에 업은 중동 항공사들이 미국·유럽 장거리 시장을 잠식하고 있지만 정부와 항공업계는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자국 항공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항공 협약 개정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에미레이트항공·에티하드항공·카타르항공 등 중동을 대표하는 3개 항공사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거점 공항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공항을 이용해 환승객을 흡수하고 있다.

두바이공항은 지난 5월 여객수 623만1135명으로 전년대비 23.3%상승했다. 1~5월 누적 여객처리 수는 3217만1218명으로 전년대비 6.6% 증가했다. 8월 기준 국제공항협의회(ACI) 국제선 여객 처리 1위다.

국내에서도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이들 항공사의 지난해 국내 수송객은 68만5388명으로 2011년 50만5142명에서 35%나 늘었다. 이들 중 87%인 59만4000여명은 인천을 출발, 중동을 경유해 미국과 유럽으로 가는 승객이었다.

중동 항공사들의 급속한  성장은 자국 정부 보조금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중동지역 3개 항공사가 자국 정부로부터 무상대여금과 대출보증, 공항세 면제, 공항인프라 무상제공 등으로 420억 달러(약 49조7000억원) 가까이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중동 항공사들은 이러한 오일머니를 등에 업고 저가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국내 항공사 인천-로마 직항 왕복 운임 총액은 170만원 선이지만 중동 항공사를 이용하면 중동공항 경유 포함, 운임 총액이 120만원밖에 안된다. 스페인 마드리드도 카타르항공을 이용하면 최저 80만원대 특가로 갈 수 있지만 우리 국적 항공기를 타면 2배인 160만원이 든다.

이는 국내 대형 항공사에 타격이 될 전망이다. 중단거리 노선을 저비용항공사에 내주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미국 등 장거리 노선 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특히 장거리 노선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 등 프리미엄 좌석은 항공사 여객 수입의 20~40%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 시장을 지키는 것이 급하다. 더구나 아랍에미레이트는 두바이 노선을 기존 주 7회에서 주 21회까지 대폭 늘려 달라고 요구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 항공사들과 관련 부처의 대응은 미지근하다. 정부 관계자는 “중동 3사는 미국·유럽 주장과 달리 자체적인 노력으로 가격 경쟁력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며 “조사를 할 근거가 충분치 않다”고 밝혔다.

국내 항공사와 항공업계도 중동 항공 3사에 대한 불공정 거래 조사 요청이나 국내 항공사 운수권 보호 등 정부의 대응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과 유럽이 항공자유화협정에 손대면서까지 중동항공사들을 견제하는 것과 비교된다. 미국과 유럽은 중동 항공 3사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을 잠식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대처하고 있다.

미국 3대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델타항공·유나이티드항공은 중동항공사들이 불공정 보조금을 지원받았다며 오바마 정부에 중동항공사들의 미국시장 진출을 제한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 행정부는 중동 국가들과 맺은 항공 협정 재검토를 시사하는 등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EU) 항공사들도 중동 국가와의 항공 협정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올해 5월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자국 공항에 중동 항공사가 취항하는 것을 제한한 상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럽으로 가는 국내 항공사 평균 탑승률은 60% 미만인데 반해 중동 항공사 탑승률은 80%에 이르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미국과 유럽 장거리 노선까지 잠식당할 위험이 있어 항공협정 개정과 같은 정부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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