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대망론’, 1년 전부터 시작됐다
  •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
  • 승인 2015.10.07 17:44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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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세론’ 허물기 위한 ‘친박 후보론’의 실현 가능성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이 본격화된 것은 1년 전이었다. 돌이켜보면 우연한 계기였다. 우연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공교롭게 필자가 그 과정의 중심에 있었고, 의도와는 다르게 사태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6일. 국회 ‘친박계’ 의원들이 주도해 결성된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의 간사인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현 해양수산부장관)실에서 필자에게 전화가 왔는데, 월말에 있을 포럼의 발제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주제는 필자가 알아서 자유롭게 정하라고 했다. 주제를 고민하다 섭외를 받은 지 열흘 후인 10월15일, ‘2017 차기 대선 지지도 판세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출마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을 유 의원 보좌관에게 문자로 보냈고, 포럼은 10월29일 연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오른쪽)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9월26일(현지 시각) 유엔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뉴시스

그로부터 이틀 후인 17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유기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반기문 총장의 차기 대선 출마설과 관련해 반 총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전했는데, “반 총장은 ‘나는 정치에 몸담은 사람도 아니다. 몸을 정치 반, 외교 반 걸치는 것은 잘못됐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 발언이 오히려 반 총장을 정치권에 몸을 ‘걸치게 하는’ 효과를 낳아, 종편을 비롯한 많은 언론에서 큰 조명을 받게 되었다. 유 위원장 발언의 취지와는 다른 ‘역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물론 그 ‘역효과’를 예상하고 발언했을 수도 있겠지만.

‘반기문 카드는 아껴둬야 한다’는 분위기

그로부터 12일이 지난 10월29일.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하려고 국회에 온 날,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필자가 예정대로 발제를 했다. 이전에 같은 포럼에서 발제했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가 필자를 기다리고 있어 무척 당황스러웠다. 거기서 필자는 당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반기문 현상에 대해, 여론조사 방법론적인 관점에서 ‘반기문 총장 지지율에 다소 거품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그러한 발제 내용과는 상반되게 마치 ‘반기문 현상을 조장하기 위해’ 친박 의원들과 필자가 입을 맞춘 것으로 오해받았다.

필자는 분명 그 포럼의 질문 과정에서 “반 총장이 만약 2017년 대선에 출마한다면”이라는 표현으로 그의 대선 출마에 대한 가정이 질문 자체에서 단독으로 강조되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반 총장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더 높게 나오는 사례를 거론했다. 즉 ‘반기문 대망론’이 섣부를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포럼 발제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일부 언론은 필자가 포럼 주최 측과 반 총장을 띄우려고 주제를 선정한 것으로 잘못 보도하기 시작했다. 실제 한 석간지는 포럼 행사를 스케치하며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 거론되는 차기 대선 주자들이 김무성·김문수·정몽준 등 모두 반박(反朴) 비주류 인사들이란 점에서 친박계는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한다. 차기 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는 비박계에 맞서기 위한 친박계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배경 설명을 하기도 했다.

당시 포럼에는 서청원·김태환·유기준·윤상현·정우택·홍문종·안홍준 의원 등이 참석했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모두 친박의 핵심들로 김무성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또 ‘김무성 대세론’을 흔들고 있는 의원이 대다수였으므로, 그러한 배경 설명도 무리는 아니었다. 안홍준 의원은 그날 “반 총장 임기가 2016년 12월31일까지고 대선은 그다음 해 12월이다. 시기적으로 딱 맞다. 당내 인사로 정권 창출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반 총장 카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포럼 말미에 김태환 의원은 “우리가 이 문제를 가지고 너무 심각하게 토론하는 건 옳지 않다. 더 이상 토론을 안 했으면 좋겠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몇몇 의원도 “그게 바람직한 것 같다”고 가세했다.

그런데 필자가 현장에서 느꼈던 당시의 분위기는 ‘반기문 카드를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가 아니라, ‘반기문 카드를 벌써부터 만지작거리면 안 된다. 아껴둬야 한다’는 쪽에 가까웠다. 최근 여권 핵심 관계자가 반기문 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유엔 사무총장 퇴임 후 해외에서 국제 재단을 만들어 체류하라’고 제안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 같은 맥락으로 보였다. 즉, 여당 내 주류 혹은 야권의 공격으로부터 반기문 총장을 ‘보호’하려는 취지인 것이다. 사무총장 퇴임 후, 해외에서 국내 정치 상황을 지켜보다가 결정적 국면에 등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제 반기문은 대선에서 변수 아닌 ‘상수’

실제 반기문 총장의 지지율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유엔 방문을 통해 더욱 상승했다. 때마침 친박 의원들의 ‘김무성 흔들기’ ‘친박 후보론’ 등과 맞물려 그 상승 폭이 예상보다 훨씬 컸다. 리얼미터가 머니투데이 의뢰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반 총장은 지난 6월 조사에서는 국가 과제 실현 전반적 적합도 조사에서 16.6%로 문재인, 김무성에 이어 3위를 기록했는데, 이번 조사(9월30일~10월1일)에서는 28.5%로 12.1%포인트 상승하며 1위로 올라섰다.

국내 정치권에서 오픈프라이머리 불가론,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갈등, 선거구 획정 난항 등의 소식이 전해지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해외 주요국 정상들과 악수하는 사진이 계속 보도되면서 반기문 총장의 대망론이 ‘실질적’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과거 다른 조사들과 달리 ‘보조 인지도’ 성격의 질문 방식, 즉 ‘반기문 사무총장이 출마한다면’이라는 표현이 질문에 포함되지도 않았는데, 큰 폭으로 앞서기 시작한 것이라, 반기문 대망론이 ‘실질적’으로 본격화된 것으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이제 반기문이라는 이름은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변수’가 아니라 점차 ‘상수’가 되어가고 있다. 박 대통령 다음 대통령이 반 대통령이 될지, 아니면 다른 성씨의 대통령이 될지는 내년 총선이 지나면서부터 윤곽이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 왜냐하면 총선이 지나면 차기 대선으로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고, 반 총장을 향한 정치권의 러브콜이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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