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R&D, 양적 성장은 세계 최고...질적 성장은 제자리
  • 원태영 기자 (won@sisabiz.com)
  • 승인 2015.10.21 16:42
  • 호수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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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총 지출액 비중(OECD 및 주요 국가, 1995-2013)/자료=OECD제공

한국 과학기술 분야의 양적 성장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으나 질적 성장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지난 19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과학정상회의’ 에서 ‘OECD 과학기술산업 스코어보드’를 발표했다. 과학기술산업 스코어보드는 2년마다 한 번씩 주요 국가 과학기술 관련 주요 지표를 비교·분석한 자료다.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OECD 국가들 중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한국 R&D 투자 비중은 1995년 2.2%에서 2013년 4.15%로 2배 가까이 증가해 OECD 평균인 2.4%를 뛰어넘었다. 2013년 민간을 포함한 한국의 총 연구개발비는 59조 3009억 원으로 GDP 대비 4.15%를 기록해 이스라엘(4.21%)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가 국내에서 발표된 전체 과학논문인용색인(SCI) 논문을 분석한 결과 2013년 전세계에서 발표된 SCI 논문은 140만1663편으로, 이 가운데 한국이 발표한 논문은 5만1051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논문수 순위로 살펴보면 12위에 해당한다. 10년간 평균 순위도 12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R&D 투자 비중과 논문 발표 수만 보면 높은 양적 성장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OECD는 한국의 과학논문 영향력을 호주, 스페인 등과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OECD 국가 중 평균 정도로 보는 것이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각 7%, 4% 미만으로 국제협력을 수행하고 있어 글로벌 협력 수준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부가 조사한 2009년부터 2013년까지의 논문 피인용회수 역시 4.55회로 논문이 많이 인용되는 상위 50개국 중 32위에 그쳤다. 논문 피인용회수는 논문의 품질을 평가하는 척도다. 1위인 스위스(9.48)나 6위 영국(7.71), 7위 미국(7.70)에 한참 뒤처지는 것은 물론이고 50개국 평균(5.32회)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연구 논문을 내는 기업이 적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국내에서 발표되는 논문 10개 가운데 7개는 대학에서, 10개 가운데 1개 정도만이 기업과 민간연구기관에서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기술수출액에서 기술도입액을 뺀 기술무역수지도 적자폭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 31억4000만 달러였던 기술무역수지 적자는 2012년에 57억4100만 달러로 늘었다.

특히 2012년 기준 한국의 기술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OECD회원국 가운데 가장 크다. 반면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국은 기술무역수지에서 흑자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OECD가 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래 매년 기술수지 적자를 기록해 왔다.

전문가들은  R&D투자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는 원인으로 정부의  R&D투자 전략 미흡과 방만한 연구비 사용 실태등을 꼽는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발간한 정부 연구개발 관련 보고서에서 한국의 R&D 체계는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 R&D 전략이 미흡하고 R&D의 전략 방향과 실제 투자계획 간 연계도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또 부처 중심의 사업구조를 벗어나 프로그램 중심의 사업구조로 예산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도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한국R&D는  창의적·도전적 연구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대신 논문수나 특허수 등 양으로 성과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연구가 실패할 경우 후속 연구비 확보가 곤란하다는 이유 등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만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2011년 국가 R&D사업 과제 성공률은 98.1%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도 “정부의 R&D투자 정책을 살펴보면 자금을 모으는데만 집중할 뿐, 중장기 전략을 세워 자금을 운용하는데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연구비 부정 집행도 국내 R&D 실적을 악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감사원 감사결과를 살펴보면 총 548건의 비리가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연구비 비리가 387건으로 단일 유형 중 가장 많았다. 이 밖에도 기획부실 등 기획과정 문제가 45건, 부당한 선정 평가 64건, 기술료 관리 미흡 등 성과 관리도 52건으로 조사됐다.

또 잘못 집행된 연구비에 대해 환수조치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래부가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3∼2015년 환수 대상에 오른 R&D 금액은 1211억원에 달한다. 이중 실제로 환수된 연구비는 507억원으로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관련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애초에 R&D투자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이미 80%정도 완성된 제품을 가지고 뛰어들어 투자비용만 챙기는 경우도 많았다”며 “최근에는 정부도 R&D투자 관련 검토를 예전보다 깐깐하게 진행한다”고 말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R&D사업의 경우 공용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쓰는 등 연구비 횡령이 비일비재하다”며 “예산이 남아 반납하면 내년 예산이 삭감되는 경우가 많아 방만하게 운영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R&D 투자대비 실적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한국의 R&D사업은 단기성과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며 “성과를 내려면 중장기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한국에선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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