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송곳’ 현실판...삼성전자 前 간부 리베이트 혐의로 유죄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5.11.02 18: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심 이어 2심도 리베이트 혐의 인정...상고 가능성 남아
10월 30일 대전고등법원 제1형사부(유상재 재판장)에서 열린 ‘삼성전자 간부 리베이트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피고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 사진 = 시사비즈

웹툰 원작의 Jtbc 드라마 ‘송곳’이 인기다. 드라마는 갑과 을, 협력사와 본청 간의 부조리를 담는다. 평론가들은 드라마 인기요인으로 ‘기시감’을 말한다. 드라마 속 각종 비리들이 현실 속 어딘가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을 법하다는 느낌이 몰임감을 높인다는 분석이다.

실제 드라마 속 이야기는 현실이 됐다. 지난달 30일 국내 굴지 대기업 간부가 협력사 사장들에게 뇌물을 받고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가 법원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

피고는 지역 굴지의 변호사를 써가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피고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다수의 협력사 간부로부터 관습적으로 부당이익을 챙긴 점이 인정 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 “매출 늘었으면 인사 해야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장착 검사를 담당하던 김모 수석은 대외적으로 평판 좋은 간부로 통했다. 대기업 간부로 고액의 연봉을 수령하면서도, 겸손함은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낮과 밤은 달랐다. 낮에는 대기업 간부로서 서무를 보고, 밤이 되면 그의 ‘수금 활동’이 시작됐다.

김씨는 회사 주요부품을 하청업체에 발주할 수 있는 지위를 악용,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주기적으로 금품을 상납받았다. “매출이 늘었으면 그에 대한 인사를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김씨의 다그침 앞에, 협력사 사장들은 수천만원에 이르는 현금을 상납했다.

김씨는 이 외에도 회사 장비를 통상가격보다 높게 발주해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았으며, 테스트용 IT기기를 외부로 반출해 판매하기도 했다.

이에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2013년 9월 김 수석을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김씨는 협력사로부터 4억7000여만원 상당을 리베이트 명목으로 받고, 회사에 수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재판에 섰고, 1심 결과 징역 3년, 추징금 4억795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삼성전자가 나에게 유리한 증거들을 제외시켰고 수 억원의 금액을 수령하지도 않았다”며 판결 직후 항소했다.

◇ 재판부 “김씨 그 어떤 피해회복도 반성도 없어”

김씨는 항소 과정에서 1심 변호사 대신 재판 관할지역인 대전출신 변호사를 2심에 내세웠다. 1심 추징금 액수가 과하고 업무상 배임 혐의를 벗겨내겠다며 삼성전자와 검찰에 맞불을 놨다.

김씨 변호인은 9월 23일 최후 변론에서 “검찰이 제시한 5억 이상의 피해라는 것은 사측이 제시한 견적서에 따른 것”이라며 “견적서는 객관적 자료가 될 수 없으며 검찰이 그 외 증거를 제출할 수 없다면 이는 유죄를 증명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최후 발언에서 김씨는 “무고함을 증명해줄 동료들도 회사의 압박에 등을 돌려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30년을 다닌 회사가 나를 마치 그물에 걸린 고기 취급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2심 판결 역시 김씨의 무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은 협력사 대표들이 일관되게 김씨의 유죄를 주장한 점이 인정됐다. 김씨는 삼성전자가 협력사 대표들과 본사 직원들은 회유했다고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모든 정황이 김씨의 유죄를 가리킨다고 판결했다.

10월 30일 오후 2시 대전고등법원 제1형사부(유상재 재판장)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유 재판장은 “김씨는 자신의 무고만을 주장하면서 김씨에게 뇌물을 상납해야 했던 협력사 대표들, 그리고 삼성전자에 대한 피해는 외면했다”며 “계속된 변명으로 반성이 의문시 되며 자익을 위해 타익을 해친 혐이가 인정된다”고 1심 형량대로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이 끝나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협력사대표들은 유유히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재판장을 빠져나갔다. 이들은 더 이상 지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 이직이나 재창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재판장을 빠져나가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참관하러온 김씨 아내와 모친은 “이 재판은 잘못됐다”며 “모든 것이 삼성전자와 협력사 대표들의 음해”라고 주장한 뒤 김씨 뒤를 따라 법원을 나섰다.

삼성전자는 김씨 사건에 대한 공식 대응을 거부했다. 일개 직원 비리로서 재판에 대한 사측 대응은 삼가겠다는 입장이다. 재판부가 김씨의 보석신청을 허한 가운데, 김씨가 끝까지 무고를 주장할 시 일주일 안에 상고할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