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괜찮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11.05 16:06
  • 호수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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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산하 국제암연구소, 가공육 ‘1군 발암물질’ 규정…매일 먹으면 대장암 위험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9월27일 가공육(소시지·햄·베이컨·육포 등)과 적색육(소·돼지·양고기 등)을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10개국 22명의 전문가가 육식과 암의 상관관계에 대한 800여 건의 연구를 검토한 후 “가공육이 암을 일으킨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며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발암물질은 4개 군(群)으로 나뉘는데 1군은 암을 일으키는 물질을, 2군은 발암 개연성이 있는 물질을 의미한다. 3군은 보류한 물질을, 4군은 암을 일으킬 개연성이 없는 물질을 뜻한다. 가공육은 1군에, 적색육은 2군에 포함됐다. 이로써 1군 발암물질은 흡연, 술, 디젤 배기가스 등을 포함해 모두 118종류로 늘어났다. IARC는 육류 섭취를 가급적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장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흡연이나 석면만큼 위험하다는 의미 아냐”

이 발표가 나오자 국내외 가공육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한국가공육협회는 즉각 자료를 내고 “적색육과 가공육이 단백질의 보고(寶庫)인 점은 무시한 채, 담배·술과 같은 1군 발암물질과 동급으로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도 이 점을 강조한다. 백형희 단국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이 분류는 가공육이 암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다는 의미이지, 위해(危害)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IARC는 발암물질을 규정하지만 특정 식품을 먹어야 할지 말지는 각 국가가 결정한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가공육의 섭취량과 조리법 등 실태조사를 통해 지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WHO 식품안전 자문위원인 정상희 호서대 임상병리학과 교수는 “IARC는 발암물질인지를 확인하는 선까지만 개입하고, 각국의 식습관과 섭취량이 다르므로 구체적인 지침은 각국이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IARC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 세계 1위 대장암 발생국이 됐다. 인구 10만명당 45명(남성 58명, 여성 33명)꼴이다. 일본은 20위다. 서양보다 육류 섭취가 적은데도 대장암 발생이 많은 이유는 과거보다 육류 위주의 서구식이 늘어났고,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대장내시경 검사를 많이 한 탓이다. 그렇다고 대장 검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핵심은 육류 섭취가 많은 사람들이 그 양을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위험(암)=요인(가공육)×노출(섭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공육 섭취를 줄이면 암 발병 위험은 줄어든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박사는 “가공육이 발암물질 1군으로 분류됐다고 해서 가공육 섭취가 흡연이나 석면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육류와 가공육을 많이 먹을수록 암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고 이해하면 된다”며 “일주일에 한두 번 가공육을 먹는다고 해서 암에 걸린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IARC가 문제로 삼은 가공육 섭취량은 50g 이상이다. 햄·소시지·베이컨 등을 매일 50g 먹을 때 대장·직장암 발생 비율이 18%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50g은 햄 1캔(200g)의 4분의 1 수준이고, 핫도그용 소시지 1개, 비엔나소시지 4개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IARC는 또 적색육은 매일 100g 섭취할 때 대장·직장암 발생 비율이 17%씩 높아진다고 했다. 100g은 작은 안심 스테이크 분량이다.

대개의 일반인은 이보다 적은 양을 섭취한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10~12년)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우리 국민들은 적색육을 하루 평균 56g 먹고, 가공육은 6g 섭취한다. 한국육가공협회는 국민 1명이 1년 동안 4.4㎏의 가공육을 소비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하루 12g 분량으로 비엔나소시지 1개(14g)보다 적은 양이며, 한 달 동안 햄 1과 2분의 1 캔, 비엔나소시지 1봉지에 해당한다. 권훈정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매일 고기를 먹는 사람은 육류 섭취를 줄일 필요가 있지만 일반 소비자는 암 발생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육류 섭취를 늘려야 할 사람도 있다. 최윤재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는 “한국인의 육류 섭취량은 미국인의 10분의 1 수준”이라며 “특히 여성과 노인은 충분히 육류를 섭취해야 영양 균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독성 전문가, 임상병리학자, 의약품 전문가, 식품영양학자, 농생명공학자 등이 10월29일 가공육 발암물질 지정과 관련해 긴급기자간담회를 열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채소와 같이 먹거나 직화구이 피해야”

IARC가 가공육을 발암물질로 규정한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적색육 자체에 있는 물질, 가공육에 첨가해 붉은빛이 돌게 하는 첨가제(아질산나트륨),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발암물질 등이다.

적색육과 가공육을 먹을 때 채소와 같이 먹거나 직화구이를 피하면 발암 가능성을 상당 부분 낮출 수 있다. IARC도 보고서에서 칼슘을 섭취하면 가공육이나 적색육에 의한 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IARC가 평가에 참고한 문헌에는 클로로필(엽록소)·폴리페놀·비타민C·비타민E 등이 암 발생을 차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걱정하는 부분은 가공육에 들어가는 첨가제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가공육의 첨가제 함량은 극히 적어 문제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윤재 교수는 “가공육에 사용하는 아질산나트륨 양은 외국에서 100~200ppm(백만분율), 한국에서 70ppm으로 제한하는데 현재 국내에서 유통하는 가공육에는 약 40ppm만 함유돼 있다”며 “가공육 제품의 절반에는 아예 이 물질이 들어 있지도 않다”고 밝혔다.

일반인이 고기를 먹을 때 신경 쓸 점은 조리 방법이다. 고기 기름이 숯불에 떨어지거나 불판에서 탈 때 발암물질이 발생한다. 쉽게 말해 고기를 구워 먹으면 자동차 매연가스를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김형식 성균관대 약대 교수는 “발암물질을 적게 섭취하려면 고기를 직접 불에 구워 먹지 말고 삶거나 쪄서 먹고, 열 온도도 될 수 있으면 낮추고 짧게 가열하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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