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봄’은 여름으로 갈까
  • 김원식│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1.16 17:48
  • 호수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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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정치 보복 않겠다”…군부 정권과 타협에 나선 수치 여사
미얀마 제1야당인 NLD가 11월9일 총선에서 압승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는 결코 정치 보복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뉘른베르크(Nuremberg, 나치 전범 재판이 열렸던 독일 도시)와 같은 재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방식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가 그들이 지난 50여 년간 행했던 일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미얀마 제1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당수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최근 밝힌 입장이다. 그는 지난 11월8일, 25년 만에 실시된 미얀마 자유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다시 대권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수치 여사가 총선 압승 이후 내보인 첫 행보는 놀랍게도 그동안 약 반세기 이상 미얀마를 철권으로 통치해온 군부독재 세력과의 화해의 제스처였다. 그의 발언을 전하는 외신기자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역시, 25년 전의 수치가 아니다”라는 말이 튀어 나온 이유다. 1990년 5월 실시된 총선에서도 당시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가 전체 495석의 80%에 달하는 393석을 획득해 사실상 압승을 하며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내 군부 정권은 부정선거라는 핑계로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수치 여사를 장기간 연금하며 기나긴 독재 정치를 해왔다.

미얀마의 시련은 이제부터다

25년 전의 실패 경험이 있는 수치 여사가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말부터 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1962년부터 군부 쿠데타로 반세기 이상 철권통치가 이어져온 미얀마에서는 이미 군부 세력이 행정부는 물론 각 기업체까지 국가의 핵심 조직을 사실상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민의에 의해 총선에서 승리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대권을 손에 쥐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25년 전의 경험이 잘 말해주고 있으며, 수치 여사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군부 정권 역시 민주화 요구라는 시대의 흐름을 이미 파악했지만, 상·하원 의석의 25%는 무조건 군부 세력이 자치하게끔 헌법에 명시해놓았고 영국인과 결혼해 영국 국적의 아들을 둔 수치 여사는 대통령에 출마하지 못하게끔 나름의 안전판을 만들어 놓았다. 현실적으로는 NLD가 이번 선거에 걸린 의회 의석 491석 중 67%를 얻으면 1962년 이후 53년 동안 지속된 군부 지배를 끝내며 단독으로 집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개헌이나 주요 입법에 관해서는 의회 정원의 3분의 2의 동의를 얻도록 해 군부의 협력 없이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해놓았다. 또한 군부는 내무·국방·국경경비 장관 임명권도 확보하고 있다. 행정부는 대통령 산하지만 이들 3개 핵심 부처 장관은 군 최고사령관이 임명하며, 내무장관은 정부의 행정사항 전반에 광범위하게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대통령이 군 최고사령관과의 협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가 이미 정착된 것이다.

수치 여사가 BBC 방송 등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대통령직에 선출되지 못하더라도 사실상 ‘실질적인 통치자’로서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하게 얘기하면서도, 정작 국내 언론을 만나서는 “절대 정치 보복은 하지 않을 것이며 기존 군부 세력과 협력 할 것”이라고 밝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 집권 군부 세력 역시 NLD의 단독 집권이 가능할 만큼 민의가 나타난 이상 굳이 이를 외면하지 않고 수치 여사로부터 일정 부분을 보장받아 과거의 권력을 유지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듯 이번 총선 결과로 미얀마에는 이제 아웅산 수치 정권이 들어설 것이 분명해 보인다. 기존 군부 세력을 대표하는 테인 세인 대통령,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 슈웨 만 하원 의장 등 군부 세력의 핵심이 수치 여사의 승리를 축하하며 회담에 임하기로 했다. 이 회담에서 합의가 결렬돼 군부가 다시 이번 선거 결과를 무시하고 쿠데타를 자행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25년 전인 1990년과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마디로 이제 아웅산 수치 여사는 단순히 민주화 시위만 주도하는 상징적인 인물에서 벗어나, 군부의 존재와 그들의 권한을 인정하면서 권력을 잡을 수 있는 노련한 정치인으로 변모했다. 군부 역시 자신들의 기존 지분만 보장된다면 어느 정도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생각이어서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공산이 커졌다.

수치 여사의 NLD 측은 이번의 압승을 기반으로 아예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내년 3월전에 개헌을 통해 수치 여사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수치 여사가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대통령으로서 실권을 지닌 통치를 해나간다 하더라도 미얀마의 시련은 지금부터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얀마 국민들이 지금은 선거 승리 열기에 도취되어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반세기 넘는 동안 군부 철권통치에 억압받아온 국민들의 요구가 불을 뿜을 게 빤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억압된 구조에서 벗어나 좀 더 많은 경제적 자유와 공평 분배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수치 정권을 향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혼란을 이유로 군부가 다시 나설 수도 있는 것이다.

국민 욕구 분출과 군부 기득권 해결해야

NLD 당수인 아웅산 수치 여사 © 연합뉴스

내부적으로 이미 경제계에까지 확고한 기반을 다져놓은 군부 세력이 협력을 하지 않는다면 미얀마의 경제 개발이 성공하기 어려운 것도 수치 정권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요인이다. 현실적으로 미얀마 산업의 대다수를 이루는 비취와 루비 광산, 은행, 주류 등 이른바 노른자위 기업은 대부분 군 장교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화 달성에 따라 분출하는 국민의 욕구와 자신들의 지분을 지키려고 하는 기존 군부 세력 사이에서 어떠한 해법으로 이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가 수치 정권이 맞닥뜨릴 최대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이에 더해 이번 미얀마 선거를 참관한 ‘유럽연합(EU)선거감시단’은 “군부에 25%의 의석을 배정하는 것과 함께 이슬람교나 ‘로힝야족(Rohingya 族)’ 등 소수민족은 선거에서 원천 배제됐다”며 이번 선거가 공정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수치 정권이 집권을 하더라도 군부 세력뿐만 아니라 그동안 내부 갈등의 온상이 돼온 소수민족과의 화해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따라서 수많은 난제와 더불어 25년 만에 다시 찾아온 ‘미얀마 민주화의 봄’이 뜨거운 여름을 지나 수확의 가을을 맞을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차디찬 겨울의 나락으로 떨어질 지 세계인의 이목은 지금 군사독재의 상징국 중 하나인 ‘미얀마’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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