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쉬운 수능은 망국의 지름길이다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5.11.19 19:12
  • 호수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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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11월12일 2016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이 실시됐습니다. 영어듣기평가 시간 동안 비행기 이착륙도 올 스톱시키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으레 그랬듯이 앞으로 몇 주 동안 입시 기사가 최대 관심사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나라의 수능 기조는 쉬운 수능 이른바 ‘물수능’이었습니다. 어쩌다 출제진의 실수(?)로 ‘불수능’이 되면 정권 차원에서 나서서 이듬해는 반드시 물수능으로 원상복귀시킵니다. 이번 수능은 불수능으로 평가되는 분위깁니다. 수험생들은 정부가 물수능 출제 약속을 해놓고 불수능으로 내서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개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약속을 어긴 것은 공신력 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국민이 정부를 불신하는 것이 한국의 최대 취약점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수능 시험 난이도가 해마다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수능은 사상 최악의 물수능이었습니다. 정부가 수능을 쉽게 내야 사교육을 잡는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탓입니다. 다만 지난해에는 정도가 지나쳐서 비판 여론이 비등했고, 이에 부담을 느껴 올해는 당초 약속과 달리 다소 어렵게 출제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우리는 수능 시험이 쉬워야 한다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시험은 변별력 있게 적당히 어렵게 내는 것이 맞습니다. 난이도 부문에서 쉬움과 어려움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어렵게 내는 것이 타당합니다. 시험을 보는 근본 목적이 뭔가요. 인재를 가려내는 것입니다. 시험을 쉽게 내면 성적이 실력 순이 아니라 요행 순이 됩니다.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한국이 맨파워를 기르기 위해서는 시험을 좀 어렵게 내는 것이 정도(正道)입니다.

과거 사례를 살펴볼까요.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을 시작하던 1960년대 초의 한국은 세계 최빈국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향학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시험은 당연히 어렵게 냈습니다. 대학 본고사가 있던 1960~70년대 서울대 본고사 수학 문제는 어렵기로 악명 높았습니다. 당시 서울대 교수들이 나라는 일본보다 가난하지만 입시 문제 수준이 낮을 이유는 없다며 도쿄(東京)대 입시 수학 문제보다 어렵게 내려고 용을 썼기 때문입니다. 영어도 수준이 높았습니다. 덕분에 공부를 빡세게 한 본고사 세대들은 기초 실력이 막강하고, 1970~80년대 고도성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사교육의 원인은 한국이 처해 있는 특수한 환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한국은 사실상 인구 밀도가 세계 1위입니다. 이런 나라에서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완전 고용이 어렵습니다. 당연히 좋은 대학을 가려는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수급의 문제인 것입니다. 시험을 쉽게 내도 사교육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수많은 통계는 이런 현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고 영어 등 외국어와 소프트웨어 교육을 대폭 강화해 한국에서 일자리를 못 구하는 인력들이 글로벌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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