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 깊이 숨은 진실이 어느 날 말문을 터뜨린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11.19 19:46
  • 호수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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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인문학 아울러 ‘뼈 있는 이야기’ 들려주는 진주현 인류학 박사

“가야 예안리 고군분에서 나온 여자와 아이들의 뼈에서 작은 샘플을 잘라 동위원소 분석을 했더니, 그 당시 아기들은 만 서너 살이 될 때까지 모유를 먹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갓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뼈와 매우 비슷한 성분을 가지고 있어 엄마가 임신 중에 먹었던 음식이 그대로 전해지는데, 모유를 먹기 시작하면 동위원소 비율이 엄마보다 더 높게 나오고, 엄마 젖을 끊고 다른 것을 먹기 시작하면 그 비율이 다시 바뀌는 원리를 이용해 알 수 있는 놀라운 결과였다.”

오랜 옛날 사람의 뼈에조차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며 <뼈가 들려준 이야기>라는 책을 펴낸 진주현 박사. 그는 현재 하와이에 있는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기관(DPAA)에서 전쟁 때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해 분석한 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법의(法醫)인류학자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법의인류학’은 고고학·생물학·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뼈를 분석해 사망한 사람의 나이, 키, 성별, 사망한 시점, 사인(死因) 등을 밝히는 학문이다. 법의인류학자는 죽은 사람의 뼈뿐 아니라 동물 뼈와 사람 뼈를 비교 분석하기도 하고, 살아 있는 사람의 뼈의 상태를 엑스레이로 관찰해 범죄의 증거를 찾아내기도 한다.

ⓒ 푸른숲 제공

뼈에 한 생명의 삶과 진화의 역사 담겨

“지금은 미의 상징이 된 쇄골이 우리 몸속에서 가장 먼저 생겨나 가장 늦게 성장이 끝나는 뼈라는 사실을 아는가? 쇄골은 정자와 난자가 만난 지 불과 5주 만에 생겨나, 서른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다 자란다. 빗장뼈라고도 불리는 쇄골은 아주 오래된 물고기 화석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긴 역사를 지녔지만, 동물이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면서 쇄골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말이나 사슴에게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나 원숭이, 곰처럼 팔을 많이 쓰는 동물과 새같이 양쪽 날개를 움직여야 하는 동물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뼈다. 이러한 쇄골은 죽은 사람의 나이와 신원을 확인하는 단초가 된다. 우선 우리 몸의 뼈 중에서도 가장 늦게 붙기 때문에 쇄골이 붙어 있는 상태에 따라 죽은 사람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 또 몸의 움직임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다른 뼈와 달리 우리 몸에서 평생 뼈 밀도나 모양이 그대로 유지되어서 생전에 찍어놓은 엑스레이와 뼈를 대조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동아프리카에서 열린 고고학 필드스쿨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참가하며 본격적으로 ‘뼈’의 세계로 들어선 진주현 박사는 지난 10여 년간 세계 각지의 발굴 현장에 참여해 인류의 진화와 기원, 사람과 동물 뼈대를 연구해왔다. 수백만 년 전의 뼈를 분석하는 고인류학 연구에서 시작해 지금은 수십 년 전의 뼈를 분석해 신원을 밝히는 법의인류학자가 된 것이다.

뼈는 시간이 흐르면, 땅속에 묻혀 화석으로 남는다. 따라서 5억년 전의 척추동물 뼈, 300만년 전 인류의 조상 뼈를 통해 뼈대 있는 동물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뼈는 무서운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의 삶과 진화의 역사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역설하는 진 박사는 뼈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쳐나가는 데 일조해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엮었다.

“뼈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는데, 많은 분이 잘 모르니까 알려드리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고학 유적에서 뼈가 발견되어도 문화재로 분류되지 않아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냥 버린다고 해도 아무런 법적 제재가 없다. 뼈 역시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된다는 걸 알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늘 뼈와 함께 숨쉬고, 먹고, 움직이는 인간

뼈 또한 사람의 몸속에서 오래된 세포가 없어지고 새로운 세포로 바뀌는 살아 있는 조직이다. 그래서 누구나 늘 뼈와 함께 숨 쉬고, 먹고, 움직인다. 뼈가 이렇게 우리 몸속에서 한 사람의 역사를 그대로 담아내기에 죽은 사람의 뼈만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주로 먹었는지, 움직임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생전에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도 추적해볼 수 있다. 특히 뼈는 억울하게 죽은 이가 남긴 마지막 말과도 같다. 부모가 아이를 때려서 죽인 다음 사고사였다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죽은 아이의 뼈를 분석해 사망 시점과 원인을 밝혀낼 수 있다.

“아이들의 뼈 회복 속도는 무척 빨라 부모에게 맞아서 뼈가 부러져도 금세 다시 붙어서 의사들이 엑스레이만으로 골절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뼈 전문가들은 뼈 주변의 연조직(軟組織)이 없는 상태에서 뼈만 들여다보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뼈에 남은 미세한 자국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의사 표현이 서툰 아이들을 대신해 ‘저 좀 구해주세요. 엄마 아빠가 때려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뼈가 바로 갈비뼈다.”

한국 여성들이 백인 여성들보다 출산의 고통이 더할 거라는 인식이 있다. 다른 인종보다 골반이 작아서 출산이 더 힘들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겠는데, 이에 대해 진 박사는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보려고 이런저런 자료를 들춰봤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아시아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골반이 작다는 연구 결과는 없었다. 골반 크기만 놓고 본다면 체구에 비례해 더 작기는 하겠다. 그런데 아이들의 머리 크기를 비교해 보면 아시아인이 더 작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산모들의 골반은 작은 데 반해 아이의 머리는 커서 출산이 힘들다는 건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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