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나도 속았다”
  • 김원식│국제문제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12.03 21:11
  • 호수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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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격퇴 총괄 미군 중부사령부 보고서 조작 의혹 파문

“정보를 제공받는 사람으로서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장밋빛의 낙관적인 보고만 받은 것이 아닌지…. 최소한 내 수준에서는 분명하고도 냉정한 분석을 했다고 느꼈었는데….”

IS(이슬람국가) 격퇴를 진두지휘하는 미국 총본산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가 IS 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발생하자, 11월22일 말레이시아를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서 고개를  떨구며 내뱉은 말이다. 뉴욕타임스를 시작으로 최근 미국 언론들이 연이어 지난해부터 중부사령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IS에 관한 상황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폭로 보도가 줄을 잇자,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이 입을 연 것이다. 오바마는  “백악관에 입성할 때부터 어떠한 정보의 왜곡 보고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며 이날 철저한 진상 파악과 조사를 지시했다. 하지만 재임 이래 가장 크게 자존심과 얼굴이 구겨진 날 중 하루가 되고 말았다. IS 격퇴 작전을 총괄하는 중부사령부의 보고서 조작 의혹은 지난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IS가 불과 수천 명의 병력으로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모술까지 함락하며 세력을 확대해갔지만, 미군 총사령관인 오바마 대통령은 잘못된 허위 보고를 받고 IS의 세력 확장에 대해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1월22일 말레이시아에서 ‘중부사령부 보고서 조작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 EPA 연합

대통령에게 매일 보고되는 백악관 ‘일일보고(PDF)’를 작성하는 중부사령부가 이라크 현지 부대를 잘 훈련시키지 않아 함락당한 책임을 모면하고자 이를 단순히 “이라크 군대의 재배치” 정도로 보고하고 “IS는 조만간 다시 격퇴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리는 바람에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오바마 대통령도 속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불과 2000여 명으로 추정되는 IS 무장대원들이 6일 만에 모술로 진격해 함락했지만, 이 과정을 취재한 종군기자들에 의하면 이라크군은 전투다운 전투 한 번 해보지 않은 채 도망쳤고, IS는 이 과정에서 미군이 이라크군에 준 최신 무기까지도 고스란히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함에도 미국 국방부와 오바마 대통령은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여 그 당시에도 무언가 정보가 잘못 전달되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파다했다.

오스틴 사령관 “IS 축출될 것” 과거 발언도 논란

더 큰 문제는 그동안 국방부 내부 감사관이 이 문제를 수차례 지적한 끝에 최근에야 중부사령부의 보고서 조작에 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중부사령부 핵심 관계자들이 해당 사실을 은폐하고자 관련 파일을 삭제하고 있다는 등 은폐 의혹까지 폭로되면서 그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IS에 의한 프랑스 파리 테러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수 시간 전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방송 인터뷰에서 “IS는 봉쇄되고 있다”는 낙관론을 견지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지만, 그는 테러 발생 후에도 “지상군 파병은 절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IS 격퇴에 관한 낙관론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IS 세력에 관한 잘못되고 조작된 보고서에 의한 판단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오바마로서는 치명타를 입을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보고서 조작 파문이 커지자 오바마의 기존 입장을 두둔하며 중부사령부를 총괄하고 있는 로이드 오스틴 사령관의 과거 발언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미국 의회 하원 군사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에 출석해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아도 IS를 어렵지 않게 격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난 7개월간에 걸친 미군과 연합군의 공습 작전 이후 IS는 이라크와 시리아 내에 확보한 지역을 통치·유지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면서 “IS는 결국 이라크와 시리아의 대리 무장 세력에 의해 축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오스틴 사령관의 낙관적인 전망과 달리 IS는 그 이후에도 세력이 약화되지 않았다. 파리 연쇄 테러까지 발생하는 등 실상과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이 과정에서 중부사령부의 보고서 조작 의혹이 불거지면서 중부사령관의 과거 발언과 전망은 완전히 신뢰를 상실하고 말았고, 그 여파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대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다. 오바마는 파문이 확대되자 뒤늦게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이 된 첫날부터 정치성이 개입된 정보와 좋은 이야기로 꾸며진 아부성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왔다”면서 “정확하고 냉정하고 분명한 정보가 없으면 좋은 정책도 만들 수 없다”고 역설하면서 조작 의혹에 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고 밝혔지만, 이미 빛이 바래고 말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1월22일 말레이시아에서 ‘중부사령부 보고서 조작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 EPA 연합

최악의 위기 직면한 오바마의 중동정책

IS에 관한 정세 보고서 조작 파문이 불거지자 백악관과 민주당 고위 지도부는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자조 섞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중부사령부의 이러한 조작 의혹이 이미 예전에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미국 국방부 국방정보국(DIA)의 한 민간 분석관이 중부사령부의 정세 분석 결과가 수차례 부적절하게 수정된 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내부 고발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올해 초 조사에 착수했고, 최근 중부사령부 고위 관계자들이 고의적으로 IS 전력을 과소평가했다는 1차 조사 결과 보고서를 하원과 국방부에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중부사령부 고위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IS의 세력이 확대됐다는 구체적인 현지 보고 내용은 보고서에서 빼거나 삭제하라고 지시한 이메일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파문이 더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잘못된 정세 보고서를 기초로 그릇된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IS 격퇴를 위해서는 지상군 파병이 필요하다며 오바마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온 공화당은 갑자기 찾아온 이런 호기를 놓치지 않고 있다. 당장 의회 하원 정보위 데빈 누네스(Devin Nunes, 공화당)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IS에 관해 성공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그것은 틀렸고 이제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IS는 격퇴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중부사령부의 보고서 조작 의혹에 관해 의회가 태스크포스(TF)팀을 발족해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회는 물론이고 오바마 대통령이 지시한 행정부의 대규모 감사를 통해 중부사령부의 정보 보고서 조작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그동안 IS 격퇴에 지상군 파병은 필요 없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IS 대응 전략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특히, 야당인 공화당이 그동안 제기해온 ‘IS를 소탕하려면 공습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지상군 파병을 통해 지상 작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공습을 포함해 그동안 IS 격퇴 작전을 총괄하고 이를 대통령에게 일일 보고하고 있는 중부사령부의 정보보고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상실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IS 대응 전략은 물론 중동 전략 전체에도 크나큰 차질과 변화가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당 의혹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최근 뉴욕타임스 등 언론의 폭로로 이번 파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과 관련해 중부사령부의 정보보고 조작 자체에 백악관 관계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의혹마저 불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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