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배 정치’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5.12.10 16:41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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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추억이란 여러 기억에 대한 현재 자신의 다양한 반응이다.” 지난 11월22일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후 추모 열기가 크게 달아오른 것도 어쩌면 이 ‘현재 자신의 다양한 반응’의 폭발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곁을 떠나간 ‘민주 투사’에 대한 추념이 현재에 또다시 위태로워지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염려와 맞물려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외환위기 사태 등 YS를 기억하는 키워드는 제각각이겠지만, 그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미친 영향만큼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가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서슬 퍼런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했던 역사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반독재 투쟁이 이토록 오래 지워지지 않고 사람들의 추억 속에 각인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생전에 뜨겁게 외쳤던 ‘선명성’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의 투쟁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 ‘행동하는 양심’이 어떠한 의심도 받지 않을 만큼 확고부동한 의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3일간의 단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YS나, 정보부 요원에게 납치되어 대한해협에 수장될 위기에까지 몰렸던 DJ나 모두 죽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은 기개로 꺼져가는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온몸을 던졌습니다. YS가 남긴 말처럼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은 것입니다.

계파 정치의 전형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그들은 또한 강력한 카리스마로 야당을 이끈 지도자로 기억됩니다. 그 카리스마는 스스로 꾸며낸 권위가 아니라 목숨을 내건 오랜 투쟁으로부터 얻어지고, 대중으로부터 선사받은 권위입니다. 그처럼 고난과 맞바꾼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모진 탄압을 견뎌내면서 오랜 세월 야당 지도자로 군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카리스마는 그들이 소신을 지키고 선이 굵은 ‘대인배(大人輩)’의 정치를 펼치는 데 중요한 밑불이 되었습니다.

‘양김(兩金) 시대’의 카리스마가 새삼 그리워지는 것은 오늘의 정치에서 그런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정치판에서는 선 굵은 대인배의 지도자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좁은 틀 안을 헤매고 있을 따름입니다. 여당은 여당대로 청와대 눈치 보기에 바쁠 뿐 자신들의 정치를 전혀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청와대의 ‘OEM(주문자생산방식)’ 업체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복면 시위’를 강하게 비판하자 곧바로 ‘복면금지법’을 발의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야당은 또 어떻습니까. 양김과 같은 카리스마는 둘째 치고 낮은 정당 지지율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모습입니다. 역대 최약체 제1야당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모두 다  ‘소인배 정치’에 따른 귀결입니다.

정치가 마땅히 가져야 할 권위를 잃으면 국민을 지켜줄 방패막이 또한 덩달아 사라집니다. 그리하여 정치가 져야 할 고통을 국민이 지게 됩니다. 광화문광장에서 한 농민이 왜 물대포에 힘없이 쓰러져야 했는지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권위’를 지닌 불굴의 지도자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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