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세계 제국의 기반을 구축하다
  • 김경준 |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
  • 승인 2015.12.10 16:53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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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스 2세,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패권자로 등극시켜

그리스 반도에서 기원전 1000년께부터 500년 동안은 지역별로 1500여 개의 다양한 폴리스가 생겨나면서 지중해와 흑해 전역으로 확장하던 아르카이크 시대였다. 동일한 신화를 공유하고 공통된 언어와 문자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경쟁과 협력 구조를 이어가면서 기원전 776년에는 최초의 올림픽 경기를 개최해 공동체 의식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이 같은 그리스 세력권의 확장으로 인근 거대 제국이었던 페르시아와의 충돌은 불가피하게 됐다. 기원전 499년, 당시 페르시아 세력권에 있었던 그리스 계열 식민지 이오니아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은 팽팽한 긴장에 불씨를 던졌다. 이후 기원전 492년과 480년의 두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스파르타의 육군과 아테네의 해군은 반(反)페르시아의 그리스 동맹 중심점이었다.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서 델로스 동맹을 결성한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 스파르타 간에 주도권 다툼이 격렬하게 전개됐다.

ⓒ 일러스트 유환영

이후 기원전 431년 발발해 30년간 진행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승리했고 뒤이어 기원전 371년 테베가 스파르타를 무찌르고 패권국이 됐다. 그러나 전사 집단이었던 스파르타와 테베는 전쟁에서 이길 수는 있었으나 그리스 세계를 운영할 사회·경제적 역량이 부족했고, 그리스 세계는 절대강자가 없는 힘의 공백 상태로 빠져들었다. 필리포스 2세(기원전 359~336년 재위)는 그리스 계열이면서 북쪽 변방에 위치해 미개인 취급을 받던 마케도니아를 제도 정비와 경제·군사력 강화를 통해 그리스 세계의 패권자로 올라서게 했다. 나아가 아들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에 나서 숙적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인도까지 진출하게 하는 기초 체력을 육성했다.

마케도니아는 기원전 12세기에 도리아 민족이 남하해 현지 주민을 정복하면서 성립됐다. 그러나 남쪽 그리스 반도의 도리아 민족들이 폴리스를 만들고 해외로 진출할 때까지도 국가적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왕권이 미약한 느슨한 부족연합체 성격에 머물러 있어 그리스 계열이면서도 변방의 야만족 취급을 받았다.

‘아테네→스파르타→테베→마케도니아’ 패권

마케도니아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그리스 반도가 혼란 속에 빠져 있던 시기에 즉위한 아르켈라오스 왕(기원전 413~399년 재위)이 왕권 강화, 제도 정비에 대대적으로 군사력을 확충하면서 도약의 기반을 닦았다. 특히 철저한 그리스화를 지향해 많은 시인과 학자들을 초청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일신했으나 기존 질서 변화에 반대하는 귀족들에게 암살돼버린다.

40년 후 24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필리포스 2세는 아르켈라오스의 개혁 정책을 계승한다. 필리포스는 귀족과 대지주를 견제하면서 왕권을 확립했는데, 당시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중앙 집권 왕정은 오히려 예외적인 사례였다.

내부 정비를 마친 필리포스는 인근 트라키아와의 경계에 있던 판카이온 금광을 점령해 재정을 안정시키고 그리스 폴리스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막대한 금광 수입을 기반으로 군사력 확충에 나서서 중장(重裝) 보병 밀집대를 창설하고 기병 집단을 증강시켰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접한 칼키디케 반도 32개 동맹의 중심 도시 올린토스를 기원전 348년에 공략해 해당 지역을 복속시켜 영토를 확장했다. 그리스 반도 패권 장악을 목표로 해 남하하는 필리포스의 마케도니아와 아테네의 충돌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패권국 테베와 연합한 아테네는 기원전 338년 결전을 벌였으나 승자는 마케도니아였고, 이 전투에서 18세의 왕자 알렉산드로스는 기병대를 지휘해 테베의 정예군을 격파하는 군사적 재능을 선보였다. 마케도니아의 승리는 그리스의 패권이 아테네-스파르타-테베-마케도니아로 이양되는 차원을 넘어선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전까지 그리스 세계는 반도 남부로 간주됐고 마케도니아는 변방의 국외자로 취급됐지만, 국외자인 절대 군주가 그리스인을 노예로 삼은 것과 다름없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스 역사에서 이른바 고전기가 막을 내리고 필리포스-알렉산드로스가 막을 여는 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됐다.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원정

승자 필리포스는 그리스 세계의 국제정치적 질서를 재편했다. 테베를 맹주로 하는 보이오티아 동맹을 해체하고 모든 도시에 독립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테베를 무력화시켰다. 아테네에 대해서는 모든 포로들을 조건 없이 귀국시켰고 전사자의 유골을 반환하면서 아테네를 침략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관대하게 처리했으나 자신의 주도권만큼은 분명히 하면서, 마케도니아가 중심이 된 동맹 결성을 추진했다. 스파르타를 제외한 모든 폴리스의 대표들을 소집해 코린토스 동맹을 결성해 동맹의 군 통수권을 장악하고 주도권을 공인받은 기원전 337년의 1차 회의에서 필리포스는 소아시아 그리스 계열 도시들의 해방을 명분으로 페르시아 원정을 선언했다. 이듬해에 전초전을 위해 1만명의 마케도니아 병력을 소아시아로 파견했고, 뒤이어 필리포스가 직접 거느리는 본진이 출정할 계획이었지만, 출발 직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원정은 전면 중단된다. 같은 해 여름 딸의 결혼식에서 암살돼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필생의 숙원이었던 그리스 세계의 지배자로 공인된 삶의 정점에서 그야말로 어이없이 세상을 떠난 필리포스의 유업인 동방 원정은 아들인 알렉산드로스가 이어받는다.

그리스 반도에서 발달한 폴리스들은 경제 권역을 지중해로 확장해 고대 문명을 발달시키고 동맹을 이루어 강대국 페르시아 침공까지 막아냈으나,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패권 경쟁과 뒤이은 혼란으로 분열 상태를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스 북부 변방에서 전제 왕권의 효율성을 기반으로 급성장한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문명의 대표 주자가 돼 동방 원정에 성공하면서 그리스 문명이 그리스 반도를 벗어나 세계 문명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알렉산드로스의 빛나는 승리에 가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아버지 필리포스가 제도 개혁과 군비 확충에 따른 영토 확장으로 기반을 닦았기에 가능한 대서사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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