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 아직도 피 뽑고 돈 버는 ‘마루타 알바’ 누명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12.10 17:12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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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참가자의 안전성 더 높여야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 ‘마루타 알바(아르바이트)’가 주요 관심사다. 제약사가 의약품 판매 허가를 받기 전에 시행하는 임상시험(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포함)에 참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2박 3일 동안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고 10여 차례 피를 뽑는 일이 생체실험의 마루타와 같다. 한편으로는 비싼 등록금과 극심한 취업난에 허덕이는 학생들에게 ‘꿀 알바’로도 통한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며칠 만에 수십만 원을 손에 쥘 수 있다. 그런  마루타 알바에서 최근 들어 약 부작용과 윤리 문제가 배어나왔다. 이에 대해 국민·정부·제약사·병원이 함께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민수 세브란스병원 임상시험센터 소장은 “과거 매혈이 현재 헌혈로 바뀐 것처럼 임상시험에 대한 인식 변화와 제도 보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문했다.

임상시험이란 신약이 안전하고 효과적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성 시험)은 신약을 복사한 복제약이 본래 약과 효능이 같은지 검증하는 작업이다. 이런 절차들을 거쳐야 비로소 약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참여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생동성 시험은 약을 복용하고 피를 뽐아 성분 농도를 측정한다. 사진은 채혈 장면. ⓒ 시사저널 박은숙

2박 3일에 55만원 버는 알바의 유혹

이를 마루타 알바로 부르는 배경에는 임상시험의 급격한 증가가 있다. 서울은 세계에서 임상시험이 가장 많은 도시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의 임상시험 정보 등록 자료를 보면, 서울은 2011년부터 뉴욕·런던·베를린 등 전통적으로 임상시험을 많이 하는 미국과 유럽 도시들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2000년 33건이던 한 해 임상시험 건수는 지난해 650건을 넘었다. 이 가운데 361건은 다국적 제약사가 한국에 의뢰한 임상시험이다.

세상에 없던 약을 처음으로 사람에게 사용하는 임상시험에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의 위험이 도사린다. 특정 의약품이 동물실험에서는 뛰어난 효과를 보였더라도 사람에게서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는 수년 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도 임상시험 과정에서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약 개발 100건 중 90건 이상은 중도에 폐기된다.

이런 이유로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보다 복제약 생산에 매달린다.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효능과 부작용이 검증된 약을 복사한 것이어서 위험 부담도 적기 때문이다. 물론 복제약을 시중에 판매하려면 본래 약과 효능이 같은지를 확인하는 생동성 시험을 거쳐야 한다.

제약사는 이들 시험을 식약처가 지정한 병원(전국 173곳)에 의뢰한다. 병원은 시험에 참여할 사람(환자 또는 건강한 사람)을 모집하는데, 환자는 몰라도 건강한 사람을 모집하기란 쉽지 않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참가를 독려하고자 불편함·시간 등의 보상 차원에서 생동성 시험 참가자에게 대가(돈)를 지급하는데, 이것이 마치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고 말했다.

임상시험 건수가 급증하면서 지하철과 버스에 임상시험 참가자 모집 광고도 늘어났다. 생동성 시험 참가자를 구하는 온라인 아르바이트 사이트도 많다. 여기에 대학생들이 몰린다. 참가 방법은 간단하다. 시험 1~2주 전, 병원에서 혈액·소변·심전도 등 각종 신체검사를 받는다.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판정된 40~50명은 시험 전날 병원에 들어간다. 대부분 20~30대다. 의료진으로부터 시험의 성격·부작용·보상 등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동의서에 사인한 후 병상을 배정받고 피검사를 받는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기상하고 8시에 약을 먹는 것으로 본격적인 시험에 들어간다. 이후 종일 30~60분 간격으로 채혈한다. 혈액에 약 성분이 얼마나 흡수되는지를 측정하기 위함이다. 병상에 눕거나 자거나 다리를 꼬거나 병원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정확한 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므로 금지돼 있다. 참가자들은 대개 병상에 앉아 TV·책·스마트폰 등을 보며 하루를 보낸다.

다음 날 오전 8시에 한 차례 더 채혈한 후 의사의 문진을 받고 이상이 없으면 병원에서 나온다. 이런 과정을 2회 반복한다. 대학 4년 동안 10차례 생동성 시험에 참가한 김기태씨(가명·27)는 “2박 3일 동안 병상에 앉아 약 먹고 피만 뽑은 대가로 55만원을 벌었다. 다른 알바로 한 달에 벌 수 있는 돈을 단 며칠 만에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큰 유혹”이라며 “부작용이 거의 없는 복제약이지만 혹시 어떻게 될까 봐 약간 겁이 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해서 받는 돈은 약 종류와 시험 기간에 따라 20만~100만원으로 다양하다. 생동성 시험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구토, 어지러움, 메스꺼움 등이다. 이런 점이 다소 우려되지만 등록금이나 생활비가 필요한 학생들은 목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대학생 1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중 16.3%가 고위험 알바를 경험했다. 고위험 알바 가운데 생동성 시험은 건설공사장과 물류창고에 이어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대학 2년생인 이고준씨는 “이 세상의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으며, 특히 복제약의 사소한 부작용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며 “등록금·방세 등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면서 의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보람도 있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에서 생동성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특정 사실과 무관함. ⓒ 뉴시스

3년간 임상시험 약물 피해자 476명

‘약은 독’이라는 말이 있다. 잘 쓰면 병을 고칠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꿀 알바’의 안전성이 최근 논란 거리로 부상했다.

임상시험과 생동성 시험은 보건 당국이 정한 과학적·윤리적 안전장치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예컨대 임상시험 전,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는 제약사로부터 계획서를 제출받아 인권·윤리·안전성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핀다. 만일에 대비해 제약사는 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보상 규모가 보험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는 제약사가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서울 지하철 내부에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하는 광고가 붙어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그럼에도 허점은 있다. 우선 신약보다 복제약 시험은 안전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문제다.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인하고 시판한 신약의 4%는 안전성 문제로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예를 들어 다국적 제약사 GSK의 당뇨병 약(아반디아)은 5년 전까지만 해도 의사가 처방한 치료제였다. 이후 심장질환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발견돼 시장에서 사라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약사는 “마약성 의약품의 생동성 시험 참가비가 다른 약보다 비싼 이유는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2년생인 강만구씨는 “세 차례 생동성 시험에 참가했는데, 고혈압 약, 고지혈증 약보다 전립선비대증 약 시험에서 돈을 더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임상시험 약물 피해자들은 476명에 달한다. 이들 중 376명은 입원했고, 7명은 생명에 위협을 느꼈고, 49명은 사망했으며, 나머지 45명은 다양한 부작용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졸업 후 2008~09년 생동성 시험에 4~5차례 참가한 경험이 있는 한성주씨는 “채혈 후 쓰러져 간호사의 응급처치를 받은 사람을 봤고, 어지럽고 메스꺼워하는 친구도 있었다”고 밝혔다. 대학원생 김승한씨는 “그나마 부작용이 덜할 것 같은 고혈압 약의 생동성 시험에 참가한 적이 있다”며 “부작용은 없어서 다행인데, 약을 먹은 후 실제로 먹었는지 입안을 검사받을 때는 나 자신이 마루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공익 위한 일로 느끼도록 계몽운동 필요”

공익을 위한 일이 마루타 알바로 변질되는 현상을 막으려면 국민·정부·제약사·병원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2013년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임상시험 승인 건수가 많은 서울 주요 대형병원들조차 참가자 동의 위반, 시험계획서 미준수 등 규정을 지키지 않아 행정처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국장(재활의학과 전문의)은 “시험 의뢰를 받은 병원은 지원자에게 예측 효능, 부작용, 위험성, 피해 발생 시 보상과 치료 대책, 신분 보장, 인권 보호 등에 관해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약사는 가장 저렴한 시험비용을 제시한 병원에 시험을 의뢰한다. 그러다 보니 안전성에 구멍이 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야간에도 참가자의 이상 반응에 대응할 수 있는 당직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참가자가 건강한 사람들이니 별문제 없을 것이라는 안전 불감증에 빠진 병원이 있는 게 현실이다. 박민수 소장은 “예상되는 부작용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하는 면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난다”며 “안전을 생각하는 병원은 당직 의사뿐만 아니라 안전 요원들도 따로 둔다”고 설명했다.

돈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참가자의 안이한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병원 측의 설명을 충분히 숙지하고 참가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항공기 승무원의 비상 시 요령 설명을 건성으로 듣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참가자의 건강과 시험의 정확성을 위해 만든 ‘3개월 규정’을 어기는 경우도 있다. 이는 한 시험에 참가한 사람은 약 성분이 몸에서 빠지는 석 달 내에 또 다른 시험에 참가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이다. 정부는 최근 3개월 이내 추가 임상시험 참가를 제한하기 위해 임상시험 기록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학생 김창선씨는 “주변을 보면 1~2개월마다 시험에 참가하는 사람이 있다”며 “같은 병원에는 기록이 남지만, 다른 병원에 신청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제약사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정형준 국장은 “한 달 치 약값이 웬만한 월급쟁이 봉급 수준인 경우도 있는데,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공익을 위한 임상시험이라는 제약사의 말은 모순”이라며 “또 임상시험이나 생동성 시험의 정보는 공익을 위한 의학 발전에 이용돼야 하지만 사실상 제약사가 공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국민들 스스로가 임상시험이나 생동성 시험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공익을 위한 일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박민수 소장은 “‘마루타 알바’라는 부정적 인식을 빨리 떨쳐내려면 국민 의식 변화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국가적인 계몽운동이 필요하다”며 “실제로 임상시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면 당초 돈을 목적으로 참가했던 사람도 보람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제안했다.

 

 

“정부, 국민 안전보다 제약사 배 불리는 일에 우선” 

다국적 제약사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사이트(www.pharmaphorum.com)에는 ‘한국은 정부가 나서서 임상시험 유치에 적극적이고 규제도 완화하는 등 임상시험을 하기에 좋은 국가’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처럼 다국적 제약사들에 한국은 임상시험 천국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세계적으로 임상시험 건수는 감소하는데 한국만 늘어나고 있다”며 “이것이 자랑스러운 일인지 한 번 따져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시민단체(참여연대·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세상네트워크·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는 11월 이런 현상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현장에 있던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국장(재활의학과 전문의)은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은 임상시험은 652건이며, 이 가운데 세계 여러 나라가 같이 시행하는 임상시험은 291건인 데 반해 한국에서만 진행되는 것은 361건”이라며 “다국적 제약사는 향정신성 의약품처럼 자국에서 하기 힘들거나 부작용 위험이 큰 약의 임상시험을 한국에 의뢰하는 현실”이라고 판단했다.

비용이 적게 들고 감시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국가에서 대규모 임상시험을 하려는 것은 제약사들의 속성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1996년 나이지리아 뇌수막염 사건이다. 나이지리아의 카노 주(州)는 6개월간 지속된 뇌수막염으로 집단 사망 사태를 맞았다.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는 신생아를 비롯한 100명의 아이에게 새로 개발한 항생제를 투여했다. 외신에 따르면, 병원윤리위원회의 허가서도 위조하는 등 사실상 불법 임상시험이었지만 그 사실을 숨겼다. 약 투여로 어린이 11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에게서 장애가 발생했다. 뇌나 폐 등 장기에 손상을 입은 어린이도 여럿 생겼다. 이 사실이 2000년 세상에 알려지면서 아프리카 주민을 상대로 한 생체실험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졌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희생자 가족들을 대신해 화이자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화이자는 소송에서 약품이 아니라 뇌수막염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화이자는 패소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한국을 세계 5위의 임상시험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7위다. 지난해 세계 임상시험 시장은 약 73조원 규모다. 이를 위해 임상시험 참가자 범위를 저소득층과 난치성 질환자에게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시험 전에 시행하는 신체검사 비용을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저소득층이나 노인들은 안전보다 돈을 보고 시험에 참여할 텐데 정부는 국민을 마루타로 삼아 제약사 배만 불리는 정책을 펴는 셈”이라며 “게다가 제약사가 부담해야 할 신체검사 비용을 국민 건강을 위해 쓸 세금으로 대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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