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자동차 강국 중 우리가 제일 늦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12.17 18:16
  • 호수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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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카 기술 선진국 비해 1~5년 정도 늦어…미래부와 산업부 간 주도권 싸움도 발목

삼성증권은 지난 10월20일 ‘VW(폭스바겐) 디젤게이트, 미래차의 주도권 누구에게로?’란 이름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미국과 독일 간 주도권 싸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VW의 디젤게이트는 디젤 차량의 수요가 3%에 불과한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중략) 중·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VW 사태는 압도적으로 보였던 독일 차 기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만한 사건이 되었으며, 미국 업체는 동 사태로 미래차 주도권 경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중략) 동 사태를 미국 IT Giant(거인)의 자동차산업 진입, 테슬라의 전기차 라인업 확대, GM의 전기차 배터리 원가 공개 등 미국 기업의 움직임과 연관 지어 볼 때, 미국은 미래차의 방향을 전기차와 스마트카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11월22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에서 실시한 현대차 자율주행차의 시험주행 모습. ⓒ 현대자동차 제공

미국과 독일 싸움의 의미

미국과 독일의 주도권 싸움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래 자동차 즉 스마트카 사업을 주도하는 미국 업체들은 완성차업체가 아닌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IT업체다. 이들은 삼성과 LG 같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쟁 업체이기도 하다. 미국 업체들이 미래 자동차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간다면 상대적으로 삼성이나 LG와 같은 우리 업체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또한 미국 IT업체들이 자동차 시장을 잠식할 경우 현대차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

결국 미국과 독일, 여기에 일본까지 가세해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는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조금만 개발을 게을리 할 경우 이는 대한민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스마트카 사업추진단’ 단장인 선우명호 한양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선진국 다섯 나라 중 우리나라의 스마트카 개발이 가장 늦은 상황”이라며 “우리나라 기업들이 개발하는 기술이나 제품도 결국 국내에서는 20%만 소화하고 80%는 외국에 내다팔아야 하는데, 제도적 뒷받침이 늦어 더욱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스마트카 관련 기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적게는 1년 많게는 5년 정도 늦다고 보고 있다. 배터리나 디스플레이, 인포테인먼트 등 개별 제품을 개발하는 기술은 있지만 이를 자동차에 적용하는 데에서는 다른 나라 기업보다 몇 년씩 늦다는 것. 이미 미국의 캐딜락은 내년부터 어느 정도의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지원도 선진국에 비해 떨어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스마트카의 상용화가 늦은 이유로 핵심부품인 센서를 대부분 외국 업체에 의존하는 데다, 삼성이나 LG 같은 업체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기에는 진입 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우명호 교수는 “스마트카 핵심 기술인 자동차 센서는 대부분 방위산업이 발달한 미국이나 독일, 이스라엘 업체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삼성이나 LG 등에서 이런 제품을 개발해주면 좋겠지만 간단치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교보증권 김동하 수석연구원은 “전체적인 설계 기술과 시스템 통합 분야에서는 선진국들과 유사한 수준”이라며 “다만 주요 핵심부품의 높은 수입 의존도와 자동차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등 안전 및 편의 기술의 기반이 되는 기술 수준이 미흡한 점이 기술 격차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 역시 다른 자동차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선진국들은 자율주행차 검증에 필수적인 도로 시험운행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네바다·캘리포니아 등 5개 주에서 시험운행을 허가했다. 영국은 가장 뛰어난 자율주행차 운영 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로 최근 런던 근교 4개 지역에서 시험운행을 허가했다. 독일은 내년부터 아우토반 일부 구간에서 공식 허가할 계획이고, 일본은 2013년에 이미 전용 번호판을 발급했다. 우리 정부도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제도와 인프라를 조기에 구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재 부처 간 주도권 싸움으로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카 추진사업단에 미래과학기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이 속해 있는데, 특히 미래부와 산업부 간 주도권 싸움으로 인해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의 자체적인 기술 개발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스마트카는 속도 싸움인데 이런 식으로 1년만 늦어져도 기업과 함께 우리나라 경제도 공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뉴시스

최근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스마트카 산업에 앞 다투어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존에 없었던 시장이 열리는 것이니까 기업들이 뛰어들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스마트카는 IT 기술의 집약체인 만큼 국내 IT기업들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 스마트카산업은 어느 단계인가.

평균적으로 보면 미국과 독일, 일본 등에 비해 2년에서 2.5년 정도 뒤처져 있다. 2025년에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될 것으로 본다.

세계적인 완성차업체와 IT업체를 갖고 있는데도 뒤처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센서의 외국 의존도가 높은 것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것은 현대차만 잘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센서 기술이 발달해야 한다. 삼성·LG에서 해주면 좋겠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이 기술이 없기 때문에 센서를 100% 해외에서 사온다. 센서 기술의 경쟁력이 곧 자동차 경쟁력이다. 현재는 미국과 독일, 이스라엘과 같이 방위산업 기술이 발달한 나라들이 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은 어떠한가.

내가 지금 스마트카 단장이기 때문에 정부에 대해서 평가하기는 좀 그렇지만, 지금보다 좀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스마트카가 도로에 다니기 위해서는 도로 표지판부터 다 글로벌 기준으로 표준화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필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가 지금도 돈 많이 벌고 있는데 무엇하러 여기에 더 투자하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업계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지금보다 투자 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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