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 사람을 맞추라고?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12.17 18:48
  • 호수 136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같은 치수인데 실제로는 20cm 차이 나기도… 브랜드마다 제각각인 의류 사이즈로 소비자 혼란

 

 

온라인 쇼핑몰과 TV홈쇼핑 등을 통해 산 옷이 몸에 맞지 않아서 당황했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30대 주부 이수정씨도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 남방을 사고 TV홈쇼핑에서 치마를 구입했지만, 실제로 옷을 입어본 후 모두 반품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치수 표기를 잘 보고 샀는데도 남방은 크고, 스커트는 작아서 수선하지 않으면 입지 못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같은 크기인데도 브랜드마다 표기법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슴둘레 90㎝짜리 여성 셔츠라도 브랜드에 따라 90, 55, 36(S), 00S 등 다양하게 표기돼 있다. 허리둘레 67㎝인 스커트도 67, 55, 36(S), 00S 등으로 판매된다. 수입산 의류는 생산 국가의 치수 표기법이 그대로 표기된 채 유통된다. 이처럼 의류업체들이 국가 표준을 따르지 않고 있어 정부가 계도에 나서기로 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근거 없이 30년 통용된 44·55·66 표기법

올해 7월 소비자문제연구소 컨슈머리서치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파는 의류업체 5곳의 24개 브랜드를 조사했더니 사이즈 표기 방식이 제각각인 데다, 같은 치수로 표기됐어도 실제 크기에서 차이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55’라고 표기된 여성 의류의 가슴둘레는 브랜드에 따라 86~108㎝로 최대 22㎝나 차이를 보였다. 같은 사이즈를 표기한 스커트도 허리둘레가 68~76.2㎝로 8.2㎝ 차이가 났다. ‘100’으로 표기된 남성 셔츠도 브랜드에 따라 116㎝까지 제각각이었다. 신세계백화점 의류 담당자는 “같은 크기의 남방이라도 일반형과 슬림형 등 형태가 다양하고, 유행도 바뀌기 때문에 실제 치수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며 “국가가 정한 옷 치수 기준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국가가 정한 KS 의류치수 규격이 있다. 그러나 의류 담당자도 모를 정도로 그 존재감이 없다. 국가기술표준원은 2009년 12월 개정한 KS 의류치수 규격에 따라 옷에 사이즈를 표시하도록 권장한다. KS 규격에 따르면, 성인 남녀 정장의 상의는 가슴둘레를, 하의는 허리둘레를 ㎝로 표기하는 것이 기본이다. 캐주얼·운동복 등 조금 헐렁하게 입어도 무방한 옷은 치수와 함께 S(작은)·M(중간)·L(큰)과 같은 문자 호칭을 병행 표기하게 돼 있다. 문자 호칭은 치수 범위를 넓게 잡은 개념인데, 예를 들어 80~90㎝를 S로 표기하는 식이다. 김윤근 국가기술표준원 화학서비스표준과 사무관은 “KS 의류치수 규격은 의무 사항이 아니라 권장 사항으로 규정돼 있어 의류업체가 기준에서 벗어나 임의로 표시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며 “의류는 개인의 신체 크기, 패션, 유행과 관련 있는 공산품이어서 정부가 정한 표기법을 의무화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시중에서 판매되는 여성 의류의 표기는 브랜드마다 들쭉날쭉하다. 흔히 44·55·66 표기법을 사용하는데 1981년 20대 여성 평균 사이즈(키 155㎝, 가슴둘레 85㎝, 허리둘레 25인치)를 기준으로 정한 것이다. 이는 이후 정부가 의류치수를 미터법으로 표준화하면서 사실상 근거가 없는 표기법이 됐다. 공산품의 공식 표준을 잡는 국가기술표준원은 44·55·66 표기법을 권장하지 않는다. 또 여성의 신체 크기가 과거보다 커졌기 때문에 이 표기법은 현실성도 떨어진다. 국가기술표준원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평균 키는 160.5㎝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넓이를 미터법 대신 ‘평’을 사용하는 것처럼 이 표기법은 관성적으로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의류업체도 이 표기법을 버릴 이유가 없다. 같은 55 사이즈의 옷이라도 20㎝ 이상 차이를 둘 수 있어 원가 절감, 관리 측면에서 유리하다. 또 마케팅에 활용할 수도 있다. 여성은 의류 매장에서 자신을 ‘마른 55’나 ‘통통 55’라고 표현하면서 55 사이즈의 옷에 자신을 맞추려는 경향을 보인다. 의류업체는 옷 치수를 실제보다 작게 표기해서 날씬하고 싶은 여성의 지갑을 열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옷을 표기보다 약간 크게 만들어 소비자가 날씬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기법이 배니티 사이징(vanity sizing)이다. 55 사이즈는 국가 표준으로 바꾸면 가슴둘레 90㎝에 해당하지만 의류업체는 실제 크기를 110㎝까지 늘려 잡는 것이다.

서울의 한 백화점 의류 행사장에서 소비자들이 옷을 고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의류업체에 국가 표준 준수 독려할 예정”

남성과 아동 의류는 비교적 KS 규격에 맞게 가슴둘레와 허리둘레를 호칭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95, 100, 105 등으로 표기하지만 실제 크기는 다른 경우가 왕왕 있다. 셔츠는 가슴둘레 실측 사이즈가 100㎝로 호칭과 동일하지만, 호칭 100인데도 실측 사이즈는 116㎝인 브랜드도 있다.

최근 국내외 인터넷 홈쇼핑 등 온라인을 통해 옷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어 소비자들의 혼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교환이나 환불이 번거로워 옷을 수선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매장에서 옷을 구입할 때도 브랜드마다 크기가 다르므로 매번 입어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최현숙 컨슈머리서치 대표는 “온라인 의류 구매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브랜드마다 사이즈 표기 방식이 달라 반품 민원도 같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의류업체가 되도록 KS 규격을 사용하고 실측 치수도 정확히 표시해야 불필요한 소비자와의 마찰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옷에 사람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의 체형에 맞춰 치수를 개선하고 통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윤근 사무관은 “의류치수 표기와 실제 크기가 다른 경우를 모아 사례집을 만들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의류업체들과 간담회를 해 국가 표준 준수를 독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입 의류 표기법도 국가마다 가지각색 

외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의류를 구입하는 사람도 많다. 국내에 없는 디자인·브랜드·색상 등 다양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산 의류의 표기도 생산 국가마다 다르다. 미국의 여성 의류는 2부터 2단위씩 올라가는 표기법이고, 남성 의류는 14부터 1 또는 0.5단위씩 증가한다. 영국과 호주는 4~6, 8~10과 같이 두 숫자로 표기하며, 프랑스는 여성이 34부터, 남성은 46부터 각각 2단위로 늘어나는 표기법을 사용한다. 일본은 여성의 경우 44·55·66 단위를 사용하며 남성 의류는 36을 시작으로 2단위씩 증가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