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끼리 ‘밥그릇’ 싸움 하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5.12.24 18:26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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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회, 자유총연맹 회장 자택 앞 집회 신고…“회원 수 늘리려다 충돌”

한국의 우익단체를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곳이 있다. 한국자유총연맹(자총, 회장 허준영)과 대한민국재향경우회(경우회, 회장 구재태)다. 자총은 우파를 대변하는 대표적 관변 단체다. 경우회는 경찰 퇴직자 모임이다. 두 단체는 우파 단체의 행사나 집회에 나란히 모습을 내비친다.

비슷한 목적과 동선(動線)이다. 얼핏 두 단체는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야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두 단체 사이에 갈등 기류가 감지됐다.

복수의 보수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1월 말께 경우회는 서울시 용산의 허준영 자총 회장 자택 앞에 집회 신고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경우회 고위 간부는 “그냥 모른 체 해달라. 언론에서 알 만한 게 아니다”라며 답을 꺼리다가 재차 묻자 “경우회 일부에서 허준영 자총 회장 행태와 관련해서 조금 섭섭한 게 있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이 항의 방문을 하기 위해서 집회 신고를 했었다”면서 “실제로 집회는 안 했다. 항의 방문을 하려던 사람들도 하지는 않고 현재는 관망하는 상태다. 그렇다고 마찰이 해결되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갈등설이 불거진 허준영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왼쪽)과 구재태 대한민국재향경우회 회장. ⓒ 연합뉴스

‘구재태-허준영’ 경찰 선후배 출신

우익단체 관계자들은 두 단체의 갈등 이면에 자총과 경우회 수장 간의 견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경우회의 한 임원은 “허 회장 집 앞에 경우회가 집회 신고를 한 데 대해 구재태 경우회장이 모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둘은 모두 경찰 고위직 출신이다. 경우회 구 회장은 충남경찰청장을 지냈다. 자총 허 회장은 구 회장보다 후배지만 경찰청장까지 올랐다.

자총의 한 임원은 “구 회장이 젊은 허 회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허 회장이 지난 2월에 자총 회장 선거에 나와서 당선된 것에 대해서도 마뜩찮게 생각했다”면서 “허 회장 당선 당시 불법 선거 논란이 있었던 부분이 있기에 더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수단체 회장도 “경우회 회원들이 허 회장 집 앞에서 집회를 시도했다는 것은 뜻밖이었다”면서도 “허 회장과 구 회장이 같은 경찰 출신인데도 속사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우회와 자총이 서로 산하 단체를 많이 소속시키려다 갈등이 불거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자총의 경우 회원 단체와 회원 수 늘리기에 전력투구하는 상황이다. 허 회장은 2017년 대선 전까지 ‘1000만 회원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50만 회원’이라고 단체를 소개하던 자총은 올 9월에 회원이 300만을 넘어섰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자총의 현 지도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자총의 고위 관계자는 “회원이 300만이라는 것은 과장된 수치다. 몇몇 단체 지도부와 협약을 맺는다고 해서 그 회원이 모두 자총 회원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그런데도 이런 방식으로 다른 보수단체를 끌어들이려 한다”고 말했다.

12월5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민국재향경우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자총, 취약한 경제력 극복 위해 전력투구

자총이 회원 수에 집착을 보인 이유는 경우회에 비해 취약한 경제력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 지원금과 회비로 운영되는 자총에 비해 경우회는 이권 사업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경우회가 대우조선해양의 고철 매각 사업권을 수의계약으로 획득해 8년간 246억원의 이득을 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우회의 ‘아동안전지킴이’ 사업은 연간 예산만 200억원대다. 경우회는 이권 사업을 바탕으로 우파 단체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경우회는 야당 의원을 비난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을 해체하라”는 광고를 주도적으로 유력 일간지에 싣기도 했다. 또 시민단체의 집회가 예상되는 곳에 미리 집회 신고를 해서 방해하는 사례도 많다. 2013년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따르면, 경우회는 하루 평균 9.3회의 집회를 연 것으로 조사됐다.

자총의 한 임원은 “경우회는 자총에 비해 이권 사업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자총은 회비도 잘 걷히지 않고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도 부족한 측면이 있다”면서 “표면적으로 회원 수를 늘리면 회비도 걷힐뿐더러 장기적으로는 총선이나 대선 국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내면서 이권 사업 획득이나 지원 확대도 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수단체 관계자는 “최근 자총은 집회 참여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경우회가 단발성 집회 참여를 많이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면서 “이 차이가 경제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자총이 회원 수 늘리기에 골몰하는 동안 경우회도 가만있지 않았다. 경우회 역시 최근 ‘국회개혁범국민연합’을 주도하며 보수 세력 끌어들이기에 주력했다. 결국 경우회와 자총이 동시에 세력 강화에 나선 것이 ‘충돌’의 계기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경우회의 한 회원은 “자총과 경우회가 우익 유권자 관련 단체와 서로 협약을 맺으려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총 임원도 “자총과 경우회가 경쟁적으로 세력을 키우지만 영입할 수 있는 우익 단체는 한정돼 있다. 영입 대상은 일정 부분 겹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재태 경우회장과 허준영 자총 회장 측은 갈등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구 회장은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허 회장 집 앞 집회 신고는 경우회 소속 산하 지역회에서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신경 안 쓴다. 아마 어떤 사람이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집회를 하려다 말았을 것”이라면서 “집회 신고를 하는 산하 단체가 집회를 한두 곳에서 하는 게 아니다. 더구나 그들이 회장 결재를 받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세세히 알 수 없다. 그 이상은 답변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자총의 허 회장은 본지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정경진 자총 홍보팀장은 이에 대해 “자총은 민생 경제를 위한 국회 정상화 촉구 활동만 추진했다. (갈등설에 대해서는) 우리가 확인하고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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